3. 중환자실.
피도 뽑고 혈압도 재고 어디론가 데려가더니 큰 기계로 내 몸은 스캔하기도 했다. 아마도 ct 촬영을 하는 것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중병에 들어야만 받는 검사라는 생각을 해왔던 터여서 그랬나 싶었다. 그리고 아직 건강검진 조차도 한 번 받아 보지 않은 내가 ct 촬영을 하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날 벼락인가 싶기도 했다.
“ 환자분. 혈변을 며칠이나 보셨어요? 색깔은 기억나세요?”
분주하게 나를 옮기던 의사 중에 하나가 나에게 물어왔다.
“ 나흘쯤 된 거 같아요. 너무 어지럽네요. 똥 색깔은 검은색이었요.”
“ 짜장 같은 완전히 검은색이었나요? 아님 그냥 흙색 같은 검은색이었나요.”
“ 짜장 같은 검은색이요.”
의사 선생님이 질문을 해서 대답은 하고 있었지만 정신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 그렇다면 식도일 확률이 가장 높겠네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고는 한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 근대 환자분 당뇨 있던 거 아셨어요? 당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왔는데요.”
당뇨라? 간암이라면 모를까? 가족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질환이었다. 친척 어르신 중에 지병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간암 말고는 없었다.
“ 아뇨. 재본적도 없는데요.”
“ 환자분. 당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서 내시경 검사를 해봐야 하는데 당 수치부터 내려야 돼요. 임 선생님 인슐린 좀 놔줘요.”
500이 넘게 나왔다며 이상하다며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선생님은 잰걸음으로 다시 멀어져 갔다. 평소에 당뇨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던 나에게 500이라는 수치는 그것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 그리고 위험한지를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나는 중환자실로 옮겨지기로 결정이 되었다. 생각보다 내 몸 상태는 위태로운 상태였다. 금식이 결정이 되었고 물조차 마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난생처음으로 소변 줄을 차는 경험도 해야 했다. 그렇게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굴욕적인 느낌은 피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창피한 것은 창피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단 똥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피가 부족하다 보니 수혈을 많이 받아야 했다. 한 팩, 두 팩을 맞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어지러웠던 중상은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짬이 날 때마다 인슐린을 주사해 줬다. 형당 수치는 그때마다 많이 내려간다고 간호사들이 귀 뜸해 주었다.
중환자실에 소변 줄까지 차고 침대에 묶여 누워있으면서 나는 내가 자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형과 다르지 않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쪽 팔은 링거를 맞음과 동시에 고정됐다. 게다가 오른팔에는 한 시간에 한 번씩 혈압을 자동으로 재는 기계를 달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오르 팔 검지에는 심전도를 재는 것을 계속 달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간호사와 의사들이 오가며 피를 뽑아가기도 하고 링거를 계속 확인하며 뭔가를 적기도 한다.
수혈이 이루어지면서 조금씩 의식이 맑아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의 피인데도 내 몸은 점차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놀라움과 신기함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그렇게 병원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중환자실은 면회가 쉽지가 않다. 하루에 두 번 그것도 1시간 정도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고 했다. 면회 때마다 아내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의연한 척하고는 있었지만 큰 걱정을 하고 있는 아내의 눈망울을 보고 나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나마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 얼굴이 더 자세히 보이지 않은 것이 새삼스럽게 감사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나의 똥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지 않는 거 같았다. 링거를 통해 수분만이 주로 몸에 공급되다 보니 애면 소변만 속절없이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중환자 실의 밤은 조금 무서웠다. 유독 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환자부터 간호사까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존재들로 가득했다. 환자는 환자 나름대로 간호사는 간호사 나름대로 억울하고 비통해했다. 이상하게도 낮에는 잠에 취해 있다가 밤만 되면 의식이 또렸해 지다 보니 뜻하지 않게 그 소리를 다 들을 수밖에 없었다. 환자나 간호사 할 것 없이 우울한 병동이었다.
그 공간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고 나서 나에게 이상한 기운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