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성발톱 5

5. 엄지발톱.

by 번트엄버

5. 엄지발톱.


내 엄지발톱은 내성발톱이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공을 찰 때도 언제나 소극적이었고 발로 무엇을 하거나 뛸 때도 언제나 온 신경은 발톱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중. 고등학교를 관통하며 그 사실을 안 나는 줄곧 발톱을 일자로 자르며 관리해 오고 있었다.


내가 내성 발톱이 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 사건은 중학교에 입학을 해서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내내 축구를 아예 하지 않았다. 워낙 개발이었던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나는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진학을 하면서 새로이 친해진 친구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 어울리다 보니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에 월드컵 본선 진출도 나의 축구 입문을 종용했다. 그렇게 나는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종종 축구를 하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체육시간이었다. 축구게임을 하던 도중에 나에게 공을 힘껏 차야하는 순간이 찾아왔고 나는 있는 힘껏 공을 차게 되었고 나는 노란 하늘을 보았다. 그때 느꼈던 고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엄지발톱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발톱이 아파 더 이상 공을 차지 못하던 나는 그 사건이 이후로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축구를 그만두었다고 해서 교우 관계를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나에게는 농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와 농구 중에 농구에 더 소질을 보였던 나는 농구를 하며 친구들과 뛰어놀 수 있었기에 교우관계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이번 혈변 중환자실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새로 태어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은 웃기지만 죽음의 위기에서 다시 살아 돌아온 상황이 나는 이상하게 자극시켰다. 그 기분에 엄지발톱도 바짝 깎고 싶어졌다.

일자로만 깎던 발톱의 양 사이드에는 공간이 많이 생기는데 그곳에 때가 많이 끼는 경향이 있다. 열심히 관리를 하다가도 조금이라도 소홀해지면 악취가 나가 일쑤였고 양말에 구멍도 쉽게 낫다. 그리고 열거하지 않아도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발톱에 때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족욕을 하는 시간도 가져야만 했다. 이제는 이 번거로운 모든 것과 이별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25년 넘게 일자로만 깎아오던 엄지발톱의 내성발톱 봉인은 그렇게 풀리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린 것이었다.


어느덧 계절은 봄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장모님의 칠순이었다. 가볍게 친지들과의 식사는 이미 예전에 마쳤고 본 행사인 가족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장모님은 몇 해 전부터 무릎관절의 고통으로 힘겨워하시고 계셨다. 그러한 시일이 계속되다 보니 우리는 장모님께 수술을 하자고 권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장모님은 완강하게 수술을 거부하고 계셨다. 다른 방법으로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고통에 힘겨워하시면서 수술을 거부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자식의 마음은 그저 답답하고 애잔한 마음뿐이었다.

몇 년 전에 우리 엄마가 무릎 수술을 하셔서 이제는 완전하게 회복해 일상생활을 잘해오고 계셨는데 이제는 편안하게 생활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두 분의 모습을 모두 지켜본 나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했다.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무릎을 보는 것도 걸음마다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고통을 지켜보는 것도 나에게 있어서는 뭘 잘못 먹고 체해서 얹힌 것 같은 속의 답답함은 덤이었다.


고통 속에 시름하던 장모님은 여행의 일정이 정해지고 얼마 되지 않아 용하다는 의원을 수소문해서 무릎 주사를 맞고 오셨다. 장모님은 그 주사를 맞고 나서부터는 지난한 고통으로부터 해방이 되셨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극심했던 고통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처제의 계획 일정에 맞게 실행에 옮길 수가 있게 되었다.

사실 고통은 장모님의 것만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생각지도 못한 고통이 찾아왔다. 발톱을 자르고 한 달 정도 지나고 나서 양쪽 엄지발톱의 양쪽 사이드에서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별 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통증은 역시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발톱 옆에 있는 살을 힘겹게 제치고 살펴보니 살 쪽 방향으로 이상한 형태의 발톱이 괴이한 모양을 하며 자라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내성 발톱을 제거할 수 있는 니퍼가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관련 치료를 하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도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 중 하나였는데 치료 방법이 발가락 살을 잘라내는 방식이라 꺼려졌고 시간 역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가 치료를 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얼마 전 식도의 출혈도 나의 판단으로 멈추게 하지 않았겠는가? 이까짓 발톱 정도도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그 제품을 구입하고 그 니퍼를 활용해 세 귀퉁이는 성공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왼쪽 엄지발가락 안쪽이 말썽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성발톱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