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발톱과 베트남.
6. 발톱과 베트남.
불행하게도 왼쪽 발가락 안쪽에서 고름이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묵직하면서 불편한 고통이 밀려온 후로는 출혈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속살에 가려져 정확하게 어느 부위에서 발톱에 찔려 피가 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답답하고 아득했다.
여행까지 일주일 정도 남기고 있어서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서 신경이 많이 쓰이는 시작 했다. 틈만 나면 헤드렌턴을 쓰고 아픈 곳을 살펴보았지만 건들기만 하면 피가 나는 통에 그저 야슬이로 발톱의 가장자리를 갈아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어 보였다.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 고통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고 그리고 어느덧 나는 그 고통에 무뎌지고 있었다. 올무에 걸려들어 서서히 죽어가는 야생동물처럼 숙제를 풀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시일이 조금 지나자 신기하게도 발톱에서의 고통은 조금씩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피나는 것도 예전보다는 적게 나는 것 같았다. 상황이 그전보다 좋아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고통에 무뎌지고 그 고통의 크기가 작아졌을 뿐이지 완전히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더해 갈수록 왼쪽 엄지발톱 안쪽에서 올라오는 고통은 이제 나에게 완전히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막걸리를 한잔 하며 텔레비전을 보며 발톱을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 덕에 발톱의 모양이 기형적으로 보일 정도로 일그러지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더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이제는 아예 들춰 보지도 않고 야슬이로 아픈 발톱 주변을 갈기만 하는 날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저 습관적인 위안과 같은 행위였다.
장모님은 주사를 맞고 오신 후로 더 이상은 고통을 호소하지 않으셨고 거동하시는 것도 눈에 띄게 좋아지셨다. 기적같이 고통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었다. 마치 여행을 가기 위해 의사 선생님이 준 선물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나는 만성이 되어버린 발톱에서 전해지는 기분 나쁜 고통 때문에 발을 떼서 걷는 것도 신발을 신는 것도 고통 때문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여행을 계획한 지역은 베트남이었다. 정확한 위치는 다낭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이안이라는 곳이었는데 그곳에 위치한 5성급 호텔에서 5일 동안 묵을 계획이었다.
디데이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우리는 그렇게 여행지로 부푼 마음을 안고 출발했다.
나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하신 참전 용사셨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던 곳이라 그렇게 낯설지는 않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관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관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나는 경계에 가득한 세관의 시선을 통해 무거워진 공기를 느끼고 나서야 불현듯 망치에 머리를 맞은 듯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와 사회. 그리고 개인들까지도 정확하게 진실된 사과를 그들에게 한 적이 있던가?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납득할 만큼의 사과를 받았다는 제스처를 한 적이 있던가? 사실관계를 확인해 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를 상대하는 세관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분명 분노 같은 감정들이 일고 있음이 느껴졌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적어도 그는 우리의 진실한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 같았다. 진심된 사과와 용서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우리와 베트남의 관계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가 쇱지 않을까란 생각이 나를 잡아끌었다.
베트남은 승전국이기 때문에 사과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과연 그럴까? 전쟁에서 이겼다는 결과만으로 그 참혹하고 지난했던 고난과 상처가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양국의 관계가 과연 진심을 서로 나누지 않는 상태에서 봉합해 버려진다면 결국은 탈이 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그저 서로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맺어지는 양국 간의 관계라면 더욱 위태로운 것은 아닐까?
불만이 가득해 보였던 세관과는 다르게 택시 기사님은 친절하셨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직원도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직원들도 모두 우리를 밝게 웃으며 맞아 주었다. 불길했던 베트남의 첫인상과는 다르게 밝은 다른 사람들의 환대에서 그 어두웠던 감정이 누그러질 무렵, 나는 수영에 매진하고 있었다. 호텔에는 중앙에 멋진 뷰를 자랑하는 야외 수영장에 있었는데 인피니트 풀이었다. 나와 가족들은 그곳에서 수영과 일광욕을 즐겼다. 물속에서 오랜 시간 발을 담그고 있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면 발톱에서 보이던 고름도 피도 다 씻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에 불어 터진 발은 일그러진 발톱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언뜻 발을 봤을 때도 정상으로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