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번트엄버 Sep 14. 2022

55화. 전속작가.

55화. 전속작가.

55화. 전속작가. 


 꿈만 같던 일주일이 지나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서울로 올라와 보낸 일상들은 또 다른 도전들이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성공을 어떤 부분에서는 실패의 쓴맛을 봐야 했다. 열심히 달려온 만큼 다시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무턱대고 전시 작가 공모에만 매달려 오다 보니 선정이 많이 되어 일상이 전시로 꽉 차 있었다. 다시 작품에만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매일매일 출, 퇴근 왕복으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지금의 무 보증금에 관리비만 내고 쓰는 것도 좋은 해택이었지만 강남 한 복판에서 40여 평이나 되는 작업실은 나에겐 큰 짐이었다. 다달이 나가는 관리비는 60만 원에서 80만 원 상당이었다. 또다시 변화를 가져야 할 때가 왔다고 느껴졌다.  

 청담동 갤러리 대표님은 전시가 끝나고 일주일 만에 직원 둘을 대동하고 작업실로 방문했다. 전시 때는 보지 못했는데 그가 지니고 있는 물건들. 외제차에 고가의 명품 백은 누가 봐도 강남 부자로 보였다.

 작품을 보러 오기로 한 날도 나는 국전에 낼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 주민 씨. 작업실이 좋네요.”

 “ 네. 어떻게 잘 얻어서 쓰고 있는 작업실입니다. 들어오시죠.”     

 “ 앞쪽에서 보면 지하 1층인데 옆에서 보면 1층이네요.”

 “ 네. 그래서 작업실 이사할 때 너무 수월했어요. 물론 작품 나갈 때도 좋습니다.”

 “ 그렇겠네요. 작업실 위치랑 크기 너무 마음에 들어요.”

 “ 저쪽으로 앉으시죠.”

 “ 이분이 유주민 작가님이셔. 인사드려.” 

 “ 안녕하세요. 책임 큐레이터 최수진입니다.”

 “ 안녕하세요. 신입 큐레이터 김우진입니다.”

 대표님과 동행한 큐레이터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서양화가 유주민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저희도 말로만 들었는데 멋지시네요.”

 “ 만나서 영광입니다.”

 “ 저도 소개할 사람이 있는데 여기 저와 사귀면서 같이 그림 그리는 강주현 작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서양화가 강주현입니다. 유주민 작가님 만나는 자린데 같이 작업하다 보니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됐네요.”

 “ 아. 그러시구나. 어떻게 같이 작업하다가 만나셨나 봐요?”  

 “ 말하자면 깁니다. 커피 한 잔 하시겠어요?”

 “ 네. 비가 와서 그런가? 저녁인데도 커피가 마시고 싶네요. 호호.”

 밖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한 것보다 청담동 갤러리에서는 많은 일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단, 가장 고무적인 일은 중국 진출의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미술시장은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내의 많은 갤러리들이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리고 비단, 중국뿐 만이 아니라 인도까지의 진출을 엿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를 만났것인데 나를 한국 대표작가로 다른 나라에 소개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작품에 더 매진해 달라고 했다. 조만간에 인도와 중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과 단체전을 한 번 열자고도 제안해 왔다. 이런 제안은 내가 다시 학교를 복학하며 목표로 갖은것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외국과 한국의 컬렉터들의 상대로 한 번 기획전을 열자는 것이었는데 이번 전시가 청담동 갤러리의 개관 기획전인 것이었다. 계약서 같은 것은 쓰지는 않았지만 나를 청담동 갤러리의 젊은 작가 중에 대표작가로 쓰고 싶다고 했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제안을 받았기에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부담감이 많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기 때문인데 대표님과 큐레이터들은 내 작품에 거는 기대만으로도 나를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청담동의 전시가 끝나고 나면 베이징에 지금 갤러리 개관을 준비 중인데 그곳에서도 같은 전시를 하겠다는 말도 했다. 위치는 우리나라로 치면 삼성동 코엑스 같은 위치라고 말했는데 나로서는 감이 오질 않았다. 대한민국 서울의 지리도 잘 알지 못하는 내게 중국은 실감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꿈같은 이야기만 두 시간 정도 늘어놓고는 늦었다며 그들은 발길을 재촉해서 떠났다. 


 전시 중에 내 그림을 샀던 벤처 사업가는 끝내 작업실에 방문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라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통화를 할 수는 없었다.

 가난한 젊은 작가들 그림 사주는 것이 취미라고 했던 그는 나를 부자 집 아들로 본 모양이었다. 그날 나의 행동과 작업실 주소가 충분히 그렇게 오해를 하 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도 그 정도의 인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일본 개인전도 마침내 끝이 났다. 작품을 우편으로 보내고 이 메일로 전시장 사진을 받아보고 다시 열흘 정도 지나서 우편으로 작품을 받았다. 아쉽게도 작품이 팔리지는 않았다. 나는 전시장에 가보지도 못했다. 일도 해야 했고 경비며 체류 비며 일본에 내가 건너가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점을 갤러리 측에서도 아쉬워했지만 나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일본 개인전도 끝이 났으니 이제는 미뤄놨던 이사를 준비해야 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을 작업실 보증금을 내주고 창고로 쓰시는 대표님에게 드렸더니 다행히 우리 상황을 잘 이해해 주셨다. 그와의 조우는 일 년 만에 끝이 나는 것이었다. 일 년 남짓 준비한 그림들이 내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물리적으로 거리를 줄이는 수밖에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하는 곳과 가까운 곳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