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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트엄버 Sep 15. 2022

57화. 다시 안양으로.

57화. 다시 안양으로.

57화. 다시 안양으로.


 전시는 나름 성황리에 끝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갤러리 측은 이번에 전시한 내 작품들을 오는 손님들에게 소개를 시켜준다며 키핑 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받기로 했던 빈 왁구만 들고 오게 됐다.

 어김없이 이삿날은 왔다. 이번 이사는 영규와 은식이가 이삿짐 옮기는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매번 화실 이사를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물류에서 같이 일하는 녀석들이 손을 걷어 부친 것이었다. 영길이도 이사를 도와주고 싶어 했는데 강원도에 제사를 지내러 가야 한다며 도와주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녀석은 집안에서 종손이라 매번 제사에 성실하게 참석을 한다. 제사를 모시는데 키 포인트니 당연한 일일 게다. 

 일주일 전부터 주현이는 그 누구보다 분주했다. 포장이사가 아니다 보니 책이며 그림이며 모든 것들을 주현이와 내가 한 손에 들기 좋은 정도로 끈으로 매는 일을 틈틈이 해오고 있었다. 주현이는 평소에 해야 할 일을 미루는 편이 아니다. 일을 만들어서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언제나 이사 전에는 그 누구보다 분주하다.

 강남 작업실을 얻으면서 소파니 책상 같은 것들이 생겨서 이번 이사는 1톤 트럭 한 대로는 부족했다. 그간 그려 놓은 수많은 그림들도 차를 한 대 더 불러야 하는 이유가 됐다.

 이번에 이사를 하려고 잡은 날은 이사하기 좋은 날씨였다. 역시 전에 이사를 할 때도 느낀 점이지만 1층으로 짐을 뺄 수 있는 구조여서 역시 이사하기에 수월했다.


 일을 부리는 사람은 불러서 일손을 보태는 사람보다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야 덜 미안하기 때문이다. 몇 년째 일 년에 한 번 이상 이사를 하다 보니 모아 논 돈을 이사 때마다 다 탕진하는 것 말고는 좋은 경험이었다. 잦은 이사도 이사지만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역시 인생의 묘미이다. 

 이삿짐을 다 빼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매번 1층과 연결된 문을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봐왔었던 옆 건물에 있는 생선구이 집이 있었는데 언제나 보면 손님들이 바글바글한 것이 맛 집 임이 분명해 보였다.

 ‘ 나도 언젠가는 저기서 먹어 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날이 오늘이 될 줄은 몰랐다. 

 “ 형. 점심을 먹고 움직이는 것이 맞을 거 같은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짐을 다 싣고 기사님이 그물망 같은 것을 씌우는 것을 다 도와주고 담배를 뽑아 물며 나에게 다가오는 은식이가 말했다. 

 “ 그러게. 먹고 움직여야지. 어디가 좋을까?”

 우리 작업실 옆 건물에는 그 생선구이 집을 포함해서 식당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 저기 생선구이 집이 어때요? 아까부터 보니까 점심시간도 아닌데 손님들이 많던데. 저런 대가 맛있어.”

 끼우고 있던 장갑을 벗으며 영규가 담배를 피우는 우리 쪽으로 합류했다.  

 “ 그럴까? 내가 기사님들에게 물어볼게.”

 하염없이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며 차 옆에서 끈 정리를 하는 기사님에게 다가갔다. 헬스를 15년 동안 해 오신 기사님은 딱 봐도 다부진 체격이시다. 

 “ 기사님. 점심 식사하시고 가는 것이 낫겠죠?”

 땀을 연신 닦으시며 웃어 보이시는데 기사님의 웃음은 언제 봐도 해맑다. 

 “ 선생님이 먹고 가자고 하시면 먹고 가야지요.”

 동료 기사님께 눈짓으로 몸짓으로 식사를 하고 가자고 전달을 하신다. 

 “ 저기 동생들이 생선구이 집에서 먹고 가자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간판을 가만히 보니 선생 구이만 있는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갈치조림이며 생태찌개까지 갖가지 생선 요리가 총망라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사실 나는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생선을 꺼리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젓가락질을 잘하지 못해 생선 가시를 잘 발라 먹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있었다. 고등학교 때 갈치 가시가 목에 걸려 일주일 동안 고생을 한 적이 있어 약간의 트라우마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병원에 가면 될 일이었는데 나는 미련하게도 맨 김에 밥을 싸서 먹는 방법으로 결국 일주일에 걸친 시도 끝에 가시를 내려 보낸 기억이 더욱더 생선 먹기를 꺼리게 만들었다. 

 “ 저희는 아무거나 좋습니다. 가까우니까 생선 집으로 가시죠.”

 그렇게 나와 일행들은 생선구이 집으로 향했다. 기사님들은 생태찌개가 먹고 싶다고 하셨고 동생들과 우리는 갈치조림으로 메뉴를 정했다.

 ‘하필 갈치구나.’

 이상하게 구운 생선보다 물에 빠진 생선이 더 가시를 골라내는 일이 나에게 있어서는 더 어려웠다. 하지만 일을 도와주러 온 동생들에게 먹고 싶은 것을 먹이기 위해 나 하나쯤 희생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갈치조림은 생각보다 비리지 않고 맛이 좋았다. 물론, 이제 생선가시는 예전의 젓가락질이 아니기 때문에 발라 먹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트라우마 같은 것들이 남아 갈치를 먹을 때만 시간이 유독 오래 걸린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 목구멍으로 빠른 속도로 넘기는 나도 모르는 습관 때문에 최대한 눈에 보이는 가시는 다 발라내야 한다. 안 그러면 또 예전과 같은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언제나 나를 긴장시켰다. 

 “ 주민이 형 생선 잘 못 먹네.”

 국물이 맛있다며 밥에 국물을 떠 넣어서 한 공기를 개 눈 감추듯 먹어치운 영규 녀석이 내가 먹는 것을 유심히 본 모양이다. 

 “ 하하. 예전에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적이 있어서 내가 좀 느려.”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젓가락질을 하는 나는 겨면 적게 웃어 보였다. 

 “ 주민이 생선 먹을 때 원래 내가 살 발라줘.”

 무가 맛있다며 갈치조림 보다 무를 더 많이 먹는 주현이도 내 젓가락질을 계속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금 창피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 고등어조림으로 시킬걸 그랬나 봐요.”

  두 공기 째 비우고 있던 은식이 녀석도 말을 보탠다. 은식이 녀석은 원래부터 생선 킬러다. 예전 경륜장에서 일할 때도 녀석이 회를 너무 좋아해서 언제나 회식 날이면 횟집을 가곤 했었다. 

 “ 하하. 나 신경 쓰지 말고 먹어. 난 내 페이스대로 먹어야 탈이 안나.”

 진심이었다. 나는 밥은 한 공기면 족하고 최대한 가시를 먹지 않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마치 시험과 같았던 식사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예상대로 생선 집 메뉴는 대부분 맛이 좋았다. 기사님들도 드시는 내내 엄지를 척하고 내시며 식사를 마치셨다. 

 “ 비린 음식 먹었으니까 커피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이에 뭔가 끼셨는지 기사님이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잰걸음으로 바로 앞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향하셨다.

 언제나 기사님은 그림을 옮기는 날이면 캔 커피를 사 오셨다. 멘트 역시 늘 비슷하시다. 

 정신을 집중해서 식사를 해서 그런지 나만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행히 가시를 먹지는 않았다. 그것만으로 나는 만족스러웠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식사를 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그래도 잘 해냈다. 

 “ 기사님 저는 냉커피로 부탁드립니다!”

 멀어지는 기사님의 뒤통수에 대고 나는 소리쳤다. 손을 흔들면서 가시는 게 내 목소리를 들으신 모양이다. 

 커피를 시원하게 한 캔 마시고 안양으로 출발한다.

 ‘다시 안양 생활의 시작이구나.’

 안양 시내 한 복판에 작업실이 생긴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했다.  

 이삿짐을 부리는 일은 사다리차를 써서 생각보다 금방 끝이 났다. 짐 정리를 대충 마치고 고생한 녀석들을 데리고 시내에 나와 시원한 맥주를 사주었다. 피곤했는지 두 녀석 다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작업실로 돌아와서 짐을 마저 정리하고 사장실이라고 쓰여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책장과 책들 그리고 침대를 이 안에 넣었다. 방처럼 쓰기 위해 방처럼 꾸몄더니 영락없는 그냥 방이 되었다. 난방이 안돼서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어떻게든 전에 작업실 같이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과 이제는 서울로 먼 길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홀가분했다. 이제 맘 놓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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