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장인어른.

87화. 장인어른.

by 번트엄버

87화. 장인어른.


수원에 있는 학교를 10년 가까이 다녔지만 학교와 집만 오갔던지라 길은 낯설었다. 그렇게 내비게이션이 가라는 대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병원에 도착을 하게 됐다. 주머니를 뒤져 전화기를 찾아들었다.

“ 주현아. 어디야? 나 어디로 가면 돼.”

말끝에 떨림을 그녀가 느꼈을까? 조금 늦게 대답이 돌아왔다.

“ 여기 6층이야 602호. 2인 실이야.”

아침과는 다르게 목소리가 차분하다.

“ 알았어. 올라갈게.”

병원은 커서 그런지 승강기가 많았다. 시간이 늦어서 진료가 끝났는지 병원은 한산해 보였다. 승강기에서 내려 해당 입원실에 가까워질수록 내 심장은 뛰는 소리는 내가 들릴 정도로 심장이 마구잡이로 뛰었다. 이윽고 병실에 당도했다. 태연하게 들어가야 하는지? 헐레벌떡 들어가야 하는지 고민을 했지만 그저 아무 일 없는 듯이 들어갔다.

“ 장인어른 괜찮으세요?”

장인어른이 돌아 앉아 있던 몸을 돌려세우는데 얼굴과 눈이 황달이 와서 눈에 띄게 노랗다.

“ 황당하게 간암이라고 해서 왔는데 암이 맞긴 맞나 봐.”

그 사이 살이 많이 빠지셔서 눈이 쾡 했다. 본인도 많이 놀랐는지 토끼눈을 하고 말을 이어 나가셨다.

“ 똥이 회색으로 나와서 깜짝 놀랐는데 황달 때문이라고 조만간 조치를 취해 준다고 했어.”

며칠 안정을 취하고 수술 같은 것을 하려는 것 같아 보였다.

“ 아이고. 자네 왔는가?”

장모님이 주현이와 함께 병실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여기저기 검사를 하고 다녀서 지쳤는지 무척 피곤해 보였다.

“ 오늘부터 아빠 간병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주민이는 뭐 간단하게 먹고 용인에 나랑 같이 다녀오자. 엄마가 갈 수는 없고 우리가 가서 필요한 것들 좀 챙겨 오자. 쿠키도 좀 보고.”

쿠키는 부모님이 키우고 있는 견공이다. 오늘부터 간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 그래야겠네. 다들 식사는 하셨어요?”

밥 먹을 정신이 있었을까 싶었다. 간단하게 도시락을 사서 먹었다고 했다. 병원 지하에 가면 편의점이 있다고도 했다. 거기서 간단하게 요기하라고.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주현이와 장모님은 이미 암 환자의 보호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병실을 나오는데 주현이가 따라 나왔다.

“ 간단하게 요기하고 바로 용인 다녀오자.”

편의점으로 내려가 삼각 김밥과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간단히 먹기에 이것 만한 것이 없다. 예전에 미술학원 강사 할 때 진짜 많이 먹던 것인데 오랜만이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빛의 속도로 먹어 치웠다. 그리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없는 집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두 분이 같이 계셨고 종종 장을 보겠다고 두 분 중에 한 분이 출타하셨을 때 말고는 말이다. 어색한 기류가 집에서 흘러내렸다. 쿠키 녀석이 혼자 지키고 있는 집은 그야말로 적막했다. 옷가지와 수건 그리고 담요 따위의 것들을 챙겼다. 칫솔과 치약 같은 것들과 함께.

필요한 것들을 챙긴 우리는 곧바로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뭔가 챙겨 오지 않은 것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찜찜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거의 다 챙겨 온 거 같았다.

오늘은 장모님이 당번을 서기로 했다. 챙겨 왔던 짐을 병원에 내려놓고 장인어른과도 인사를 나눴다.

“ 걱정하지 마시고 건강 잘 챙기고 계세요. 또 올게요.”

예전보다 작아진 어깨 밑으로 흘러내린 병원복은 약간 커 보였다. 장인어른은 며칠 사이로 많이 야위셨다.

“ 그래. 걱정하지 말고. 자네 일하는 사람 오가게 해서 미안하네.”

틀니를 빼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발음이 세는 소리로 말씀하신다.

“ 장모님 저희 이만 가 볼게요.”

하루 사이에 수척해 보이는 장모님과도 인사를 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승강기를 타고 아무 말 없이 주현이와 내려오는데 주현이가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말을 꺼냈다.

“ 쿠키. 주민아 쿠키 어쩌지?”

집에 혼자 남겨진 녀석이 내심 걱정이 됐나 보다.

“ 그러게. 장모님하고 네가 교대로 병원에 있다고 해도 쿠키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겠어.”

그리하여 우리는 쿠키와 쿠키의 물건을 가지러 다시 용인으로 향했다. 용인에 있는 처갓집에서 쿠키와 물건들을 차에 싣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속도 텅 비어있었다. 일단, 배변을 위해 동내 산책을 잠깐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처음 와본 곳인데도 녀석은 낯설어하지 않고 좋아했다.

“ 출출한데 주현이는 어때?”

쿠키 집과 공 따위를 정리하고 있는 주현이는 기운이 없어 보인다.

“ 나도 배고프네 뭐 먹을 것 있나?”

피곤한지 눈이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허기진 배와 영혼을 채울 것이 필요했다. 아까 컵라면을 먹어서 라면을 떠올리니 신물이 났다.

“ 전에 우리 집에서 가져온 만두 쪄 먹을까?”

얼마 전에 우리 부모님 집에서 다 같이 모여 만두를 만들어 먹었는데 30개 정도 싸주셔서 냉동실에 잘 보관된 것이 있었다.

“ 그래 그게 좋겠다.”

냉동실에서 만두를 꺼내어 찜 기를 이용해서 만두를 찐다.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어도 되지만 그러면 맛이 영 별로다. 만두피도 딱딱해지고 여러모로 생각을 해봐도 조금 귀찮더라도 찜 기에 쪄먹는 것이 맛에 이롭다.

어느덧 찜통으로 스팀이 오른다. 날이 많이 추워지고 있나 보다. 그새 여름은 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주현이 오빠가 올여름에 결혼을 하고 이번 추석 때 처음으로 며느리 이하 자식들과 윷놀이를 하며 즐거워하시던 장인어른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날은 내가 주현이 집에 드나들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풍경을 본 날이었다. 행복해 지기 위해 가족 구성원 모두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처음 하는 것이라 생소하고 낯설긴 했지만 그것은 그저 행복한 집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을 만들기 위한 소리 없는 노력이었다.

오랜 시간 술을 많이 마시며 가족들과 담을 쌓고 사신 장인어른. 이제 마음을 열고 다시 세상으로 조금씩 나오시고 계셨었는데 갑자기 장인어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 만두 다 익었네. 먹자.”

내가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주현이가 상을 봐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집 만두다. 이 녀석이라면 원래 소주를 한잔해야 하지만 오늘은 그냥 먹어야겠다.

허기진 속을 달래고 나니 피로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우리는 안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거실에서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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