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영규와 영길이.

94화. 영규와 영길이.

by 번트엄버

94화. 영규와 영길이.


10월이 되기 전까지 지금 준비하는 작품들을 많이 완성해야 한다.

조금 투박하긴 하지만 감광기도 만들었다. 이제 사진을 잘 골라서 인물화를 그려야 한다. 10월에 잡지사 인터뷰가 갑자기 잡힌 까닭에 모든 일들을 서둘러야 했다.

주현이에게 골프 그림을 주문한 대표님은 주현이가 그림들도 많이 그려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양을 그리기는 쉽지 않았다. 너무 많은 수정을 원했고 그때그때마다 한고비 한고비를 넘는 것 같았다. 역시 의뢰받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쉽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잡지사와의 인터뷰는 포털아트를 나와 새로운 사이트를 만드신 장 이사님이 주선해 주신 것이었다. 영길이도 두 달 전 엔가 인터뷰를 한 곳이다. 영길이 작품은 다행히도 사이트를 옮겨도 잘 팔리는 편이었다. 다행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누나의 간병일이 끝난 영길이는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졌었기 때문이었다. 영길이의 누나는 간병인을 쓰는 대신에 영길이에게 일을 맡기면서 일정 부분의 돈을 주고 있었다.

그 무렵, 한 동안 연락을 하고 지낸 지 오래된 영규와 통화를 했다.

“ 그래. 영규야. 바쁜 일 없으면 안산으로 원정 한 번 와야지.”

물류 또한 변화가 있었는데 필진이 형은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투 잡을 뛰고 있던 필진이 형의 체력은 새벽에 하는 물류 일을 버텨내지 못했다. 그렇게 물류에 혼자 남겨진 영규는 사람을 한 명 뽑아 일을 하고 있었다. 영길이가 들어가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영길이도 누나가 병에서 완전히 완치될 때까지 곁에 있어줬으니 이제는 제 돈벌이를 해야 했다.

“ 네. 형. 다 털어내셨나 보네요. 저야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영규를 부르는 이유는 영길이의 직업 청탁을 위해서다. 주변머리가 없는 영길이 녀석은 물류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더라도 제 입으로 그것을 말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약속한 날이 되었다. 일부러 술을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은 일요일 오후로 약속을 잡았다. 성당에 다니는 영규는 미사를 보고 안산으로 넘어올 것이다. 내가 일할 때만 해도 차가 없어 뚜벅이 신세였던 녀석은 이제는 어엿한 자가용 유저가 되어 있었다. 평소 중국 술을 좋아하던 녀석은 안산 원곡동에 있는 중국 상회에 들러서 이 것 저 것을 사 온다고 했다. 뭔 술을 사 올지 모르던 우리는 그저 중국요리를 시켜 놓고 녀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영규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을 했다.

중국요리를 시킬 때 고추잡채와 마파두부를 주문하라고 미리 알렸던 녀석이었다. 우리는 보통 탕수육 세트나 깐풍기 세트를 즐겨 먹었었는데 녀석이 준비한 술과는 궁합이 영 안 맞았던 모양이다.

형규 녀석은 공부가주와 연태고량주 등등 중국 술을 여섯 병정도 사 왔다. 송화단이라고 불리 우는 계란도 사 왔는데 녀석의 말에 따르면 삭힌 계란이라고 했다.

영규 녀석은 독한 술을 좋아한다. 빨리 취하고 빨리 깨서 좋다고 했다. 영규 녀석은 이빨이 부정교합이라 평소에 음식을 잘 씹지 못했다. 그래서 늘 소화불량에 시달리다 보니 배가 불러 더부룩한 것을 싫어했다. 반면, 영길이와 나는 주로 막걸리를 즐겨 먹었었는데 다른 이유보다는 오락을 하면서 즐겨 먹기 좋았기 때문이다. 피자 두 판 시켜놓고 축구 오락을 하면서 즐기기에 좋았다. 장 시간 게임을 하 기에도 핑거 푸드인 피자가 안주로서 제격이었다.

“ 귀한 술 많이 사 왔네.”

전에 같으면 한 두 병만 중국 술을 먹고 소주를 먹었었는데 오늘은 아주 작정을 했나 보다.

“ 주민이 형 상 치르고 처음 보는 건데. 힘 좀 줘야죠.”

그렇다. 벌써 계절은 가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녀석들과 조우한지도 벌써 3 개월이나 흘렀던 것이다. 그간 작품을 한다고 정신도 없었다.

“ 그랬구나. 아무튼 반갑다.”

술을 먹기로 한 곳은 새로 이사한 영길이네 집이었다. 전에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영길이는 고역을 치렀었는데 다행히 우선 변제 순위가 높아서 보증금을 다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더 넓은 전셋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녀석도 이제 몇 달 있으면 결혼한다. 그래서 영길이는 더욱더 고정 급여가 필요했다.

예전부터 술을 먹는 자리에서 우리는 다양한 차원의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예술부터 종교 그리고 영화. 음악.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로 소통했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술자리는 즐거웠다.

“ 영규야. 영길이랑 같이 일하는 것이 너한테 훨씬 좋지 않아?”

내심 고심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술이 어느 정도 올라와서야 나도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 저야. 영길 씨만 좋다면야 당연하죠. 근데 영길 씨 작품 때문에 바쁘시잖아요.”

서로 연락을 잘 안 했는지 속사정을 통 모르는 눈치였다.

“ 영길이 누나. 이제 완치돼가지고 괜찮아. 물류 다니면서 작품 해도 돼. 병원에서 간병하면서도 했는데.”

이제는 펜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던 영길이는 작은 작품을 할 때 같으면 이젤 없이도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 맞아요. 영규 씨. 자리 있으면 넣어 주세요.”

영길이 녀석도 술김에 용기가 생겼는지 말을 보탰다.

“ 그래요? 진작에 연락을 먼저 해 볼걸 그랬네요. 지금 일 나오는 녀석은 공시생이라 별로 이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제가 억지로 데리고 일 시키고 있는 거거든요.”

일이 돌아가는 걸 보니 조만간에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을 준비한다면 시험에만 매달리는 것이 최선이 아니겠는가?

“ 그럼. 그 녀석이 금방 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네.”

그 녀석 입장도 입장이지만 최대한 영길이가 돼도 룩 빨리 물류로 들어가야 했다.

“ 그렇죠. 다음 주에 가서 진지하게 말해 볼게요.”

영규와 영길이는 내가 나오고 나서도 계속 같이 물류를 했었다. 이제는 필진이 형도 없고 지저분한 물류도 다 떨어져 나간 상태라고 하니 아마도 일하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수익을 배분하는 문제는 녀석들의 문제이다 보니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이야기가 되어서 다행이었다. 갑자기 녀석들을 모아서 두서없이 말을 했는데 소정의 성과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곯아떨어진 녀석들을 뒤로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큐알 아트에 가져갈 그림들을 다 완성했다. 큐알 아트는 포털아트에서 따로 나와 장 이장님이 차린 새로운 회사이다. 일산으로 다시 이사를 하면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시는 곳이었다. 우리의 인터뷰가 일정에 있어서 밤을 새우다 시 피하면서 작품을 준비했다. 인물을 그려놓은 작품들은 많았지만 판화를 찍을 때는 한 번에 찍어야 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감광을 하면서도 실패를 거듭했기에 시간이 많이 늦어진 것도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정신이 없었다.

경제지 기자와의 인터뷰를 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다른 것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료하게 기억이 났다.

‘우리는 부부 화가로 사는 것이 꿈입니다. 그래서 서로의 작품과 작품세계를 가장 존중합니다. 그렇게 더디지만 우리의 방식대로 길을 찾아갈 겁니다.’

정리가 된 언어로 이야기를 하진 못했지만 요지는 그랬다.

작품이 잘 팔리기를 기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일을 그만두고 작품에만 매진을 하게 된 것도 반년을 넘기고 있었다. 피곤했던 하루 일과를 겨우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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