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촬영중.

75화. 촬영중.

by 번트엄버

75화. 촬영중.


“ 주민이 형 오늘은 세트 촬영이니까 왁구랑 필터 정비하면서 장비 가르쳐 드릴게요.”

조명세팅이 끝나자 상희가 왁구함으로 나를 데려갔다.

“ 필터는 종류가 많은데 일단, 주로 쓰는 필터들만 설명해 드릴게요.”

왁구함을 살피던 상희는 너덜거리는 필터를 정리해서 꺼내 놓는다. 이런 거 하나하나 조수들이 정비를 하는지 몰랐다.

“ 형. 저기 종현이 보면 파우치 벨트에 테이프 많이 가지고 다니는 거 보이죠?”

종현이의 파우치 벨트에는 줄에 엮어 다양한 테이프들을 잔뜩 걸려 있었다.

“ 형도 저렇게 하고 다니다 보면 아마 도움이 될 거예요. 집게는 많이 들고 다니시죠?”

왁구가 부족할 때나 작은 라이트에 필터를 댈 때 꼭 필요한 것이 집게다 보니 파우치에 한가득 채워놓고 다닌다.

“ 물론이지. 집게 때문에 파우치 하고 다니는 거 같아.”

볼펜과 작은 플래시도 넣고 다니지만 대체로 필요한 것은 집게 일 때가 많았다.

“ 형. 디피션 왁구는 눈으로 구분되시죠? 여기 헤드로 잡는 부분 바로 위에 테이프로 다 표시되어있는데 떨어진 것도 종종 있어요.”

전에 세컨드이 가르쳐 줘서 알고 있었다. 디피션 뿐만이 아니라 cto필터도 다 같은 방식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 디피션과 cto는 기본적으로 hmi 조명에 씌우는 거는 이제 알 것 같아. 근데 ctb는 뭐야?”

물건 들고뛰고 선 깔고 선 말고 이런 것만 해오다 보니 조명에 대한 이론은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 형. 색온도라는 말은 들어보신 적 있어요?”

하도 색온도 색온도 해서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본 적이 있다. 세종이가 조명 일을 하려면 스마트폰을 써야 한다고 해서 일하기 전에 주현이와 같이 핸드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꿔서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는 일이 어느샌가 가능한 일이 되어 있었다.

“ 대충 뜻 정도는 일고 있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알 리가 없었지만 틈틈이 관련 책을 사서 조금씩 읽어 나가고 있었다.

“ 디피션은 말 그대로 깊이 감을 나타내는 말이에요. full, half, sami quarter, quarter까지 나뉘어 있고 그 밑 단계도 있지만 쓰지는 않아요. cto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ctb도 마찬가지고요.”

갑자기 영어로 설명을 해서 당황을 했지만 full에서 단계별로 빛을 걸러내는 정도의 차이로 이해가 됐다. 그리고 눈으로 봐도 두께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그렇구나. 여기 테이프로 표시가 되어있는 게 그것이었구나.”

full은 네게의 테이프로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밑 단계로 갈수록 테이프로 표시가 되어있는 수가 줄어든다. 그래서 영어로 말할 때도 있었는데 16분의 일, 팔 분의 일 이렇게 말을 했었구나 싶었다.

“ 그리고 cto랑 ctb는 개념이 같은 거 에요. 색온도라는 것인데 단위는 캘빈이에요. 색온도를 발견한 사람의 이름이 캘빈이라는 사람이라고 해서 단위를 그렇게 부르게 된 거라고 해요. color temperature orange를 줄여서 cto라고 하는 건데 hmi장비는 빛이 태양 광색에 가깝고 텅스텐 장비는 전구색에 가깝죠. 그것을 조절해주는 필터가 cto, ctb 필터랍니다. 쉽게 설명해서 hmi 조명을 켰을 때 색온도는 6500k 정도 되는데 대체로 오 기사님이 qurter를 많이 씌우시죠? 그 이유는 그 정도 색깔이 태양광의 색과 가장 유사하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ctb는 전구색 즉 3200k에서 색온도를 올릴 때 사용하는 필터예요.”

갑자기 무슨 물리 시간이 된 것 같았다. 나에게 수학과 물리는 중, 고등학교 시절 때 손을 놨던 과목이었다.

“ 생각보다 많이 복잡하네. 다른 필터도 많던데.”

왁구함에 꽂혀 있는 필터들은 생각보다 많은 양이었다.

“ 다른 것들은 나중에 공부하시고 오늘 제가 알려드린 것만 일단 알고 계세요. 가장 많이 쓰이는 것들이니까.”

하긴 다른 필터들이 왁구에 작업이 안 되어 있는 걸로 봐서 많이 쓰여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 매번 대도 라이트 쓸 때 앞에 씌우는 거는 뭐야? 뭐 nd라고 부르는 거 같던데?”

nd필터도 두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거 댓 다가 저거 댓 다가 하는 걸 보니 눈으로 확인을 해야만 하는 필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필터들은 감독들이 생각하는 것을 대어 주지만 막상 댔다가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한 것과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 neutral density 필터라고 피사체의 색채와 상관없이 전 파장 역에 걸쳐서 균등하게 광량을 줄이는 필터예요. 어려울 것 없이 그냥 선글라스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대충 직역을 해보면 중성 농도 필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전체 조명을 끝내고 나면 포인트 조명으로 대도를 쓰는데 너무 밝게 튀니까 nd필터를 씌운다는 것이었다.

라이트마다 데바샤라고 빛 방향을 제한하는 것들이 달려 있는데 그 앞에 필터를 씌울 때 꼭 필요한 게 철제 집게다. 영화 쪽에 선 나무집게를 사용한다는데 나무집게는 화재의 위험이 있다고 해서 광고 쪽에서는 선호하지 않는다.

“ 이렇게 너덜거리는 왁구를 오늘 같은 날 정리하면 좋아요. 안 그러면 나중에 사무실에 다 나와서 해야 하는데 귀찮은 일이잖아요.”

옆으로 다가온 종현이 녀석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종현이 녀석은 왁구를 들고 정비를 하고 있었는데 많이 뜯어져서 접착력을 잃어버린 테이프를 떼어내고 다시 새 테이프로 반 듯하게 부쳐서 팽팽하게 고정했다.

“ 왁구 정비는 우리가 하고 있을 테니까 형은 돌아다니면서 장비 안 쓰는 거나 선 같은 것들하고 모래주머니도 한 곳으로 쓰기 좋게 모아 둘게요.”

광고 일을 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말투다. 모아 둘게요. 본인이 행동하는 것처럼 말을 하는데 아직 이 말투가 나는 너무 재밌기도 하고 아직 적응도 안 된다. 그리고 웃기는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요즘 장비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추세였는데 디지털카메라를 쓸 때도 메모리를 갈아 끼울 때도 예전 필름 방식대로 말을 하는 것이 재밌는 지점이다. 카메라 기사와 조수들은 촬영을 할 때 행동 양식이 바뀔 때마다 카메라 감독의 명령을 복명복창을 한다. 그런데 필름 장비를 쓸 때와 같은 언어로 말을 해서 그 점이 재밌다 는 것이다.

연출 감독이 액션을 이야기하면 연출 조 감독이 슬레이트에 씬마다 테이크를 기록하면서 카메라 앞에 대고 슬레이트를 친다. 그러고 나면 동시녹음 감독이

“조용!”

이라고 외친다. 그다음 카메라 감독이

“ 카메라. 롤!”

이라고 외치면 조수들이 복명복창을 한다. 필름이 없는 카메라를 롤이라고 외치는 게 재밌고 조수 중에 한 사람이

“롤 체인지하겠습니다.”

하면서 메모리를 갈아 끼우는 모습도 재밌다. 롤 체인지를 한다면서 메모리를 갈아 끼우는 모습이 재밌다는 말이다.

오늘 같은 촬영에는 동시 녹음이 없기 때문에 동시녹음 팀은 없다. 이런 경우가 촬영하기 조금 더 수월하다. 당연히 소리에 예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촬영 중간에도 장비를 정비하고 틈틈이 정리하기에 제약이 없을 정도로 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몇 씬 정도 찍었을까? 점심시간이 돌아왔다. 촬영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언제나 밥 차의 화룡정점은 점심식사다. 칼로리가 높은 반찬들 사이에서 고기가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제육볶음이나 불고기 같은 것들은 꼭 들어가 있다. 밥차에서 우리가 먹는 식단은 세종이 말로는 한 끼에 만 원 정도 책정이 되는 거라고 했다. 대체로 촬영 스텝들 평균은 50명 정도라고 보면 되는데 50인분으로 세끼를 준비하고 중간중간에 간식거리를 제공하는 일이 밥 차의 주된 업무다.

역시 오늘도 제육볶음이 메인 메뉴다. 밥 차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은 대부분 단짠 단짠 한 음식들이 많다. 몸을 많이 쓰는 스텝들을 상대하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기름진 음식들의 비중도 높다. 밥차의 음식들을 다 먹다가는 살로 직행할 것 같은 음식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음식들을 계속 먹고 있는데도 살이 많이 안 찌는 이유는 그만큼 많이 뛰어다니며 칼로리를 많이 소진하기 때문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달콤했던 점심식사 시간을 마치고 카메라와 조명 세팅을 다시 하고 촬영은 계속되었다. 차량 내부를 계속해서 찍는데 주행 씬은 외국에서 이미 촬영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동차 광고는 외국에서 촬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인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 해서 그런가? 대부분의 자동차 로케이션 촬영은 우리나라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자동차 광고를 거의 독식하시다시피 하시는 세종이와 가장 많은 일을 하시는 오늘 촬영 감독님은 해외 일정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 덕에 세종이도 해외촬영 경험이 생각보다 많았다.

자정을 넘기고서야 촬영은 끝이 났다.

내일부터 며칠 동안은 촬영 일정을 잡지 않았다. 모레 웨딩 촬영을 하는 날 이기 때문이다.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도착한 나는 얼마 만인지 모를 꿀잠을 잤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잠을 기다렸던 적이었었던가?

밤을 새우며 그림을 그릴 시절의 잠은 나에게 있어 사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이제는 금강산도 식후경이 아니라 금강산도 수면 후로 바뀌게 되었다. 새삼 숙면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74화. 광고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