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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리딩 Mar 09. 2022

일본어 원서 76권 18,000페이지 읽으면 생기는 일

비전공자지만 원서는 읽고 싶어!


>> 지금까지 읽은 일본어 원서 76권 


일본 도서 관리 사이트에는 국내 출판물을 등록할 수 없고, 한자 교재는 집계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도서 권수가 다르다.


76권, 18,175 페이지 돌파! 거북이 속도로 2019년 12권, 2020년 35권, 작년과 올해에 걸쳐 현재까지 29권 읽었다. 처음에는 외계어 같은 일본어를 더듬더듬 읽고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신기하고 즐거웠는데, 그렇게 시작해 한 권씩 착착 쌓이며 소설, 에세이, 자기계발서, 만화, 잡지, 신문 사설까지 점점 영역을 확장해 가는 게 신이 났다. 오쿠다 히데오나 오가와 이토, 무레 요코처럼 좋아하는 작가의 도서를 번역서가 아닌 원서로 읽을 때의 감격과 쾌감, 감명 깊게 본 영화의 원작에서 느끼는 감동, 인기 많은 최신 일본 도서 번역서를 접하며 원서를 검색해 현지 리뷰를 읽어볼 때의 생생한 느낌, 76권을 읽고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 가는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일본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는 자동 불타오른다. 




70여 권을 읽으며 눈에 띄게 변한 점이 있다면? 첫째, 활자에 대한 두려움은 다운, 적응력은 업업! 

원서를 읽기 시작하던 초기에는 작고 빼곡히 세로로 들어찬 한자와 히라가나, 가타카나의 조합 사이에서 행이 바뀔 때 읽던 곳을 놓치고 같은 부분을 두 번씩 읽던 적도 부지기수. 21세기 왜 그렇게 비효율적인 인쇄법을 아직도 고수하는지 좁은 마음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때도 많았다. 책갈피를 이용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며 읽거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기,  두 눈에 힘을 뽝 주고 읽던 곳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독서의 피로감은 늘 한글책의 두 배였던 초반에 비하면 지금은 세로행도 꽤 익숙해졌다. 물론, 가끔씩 발견하는 가로행 원서의 반가움은 여전히 말할 필요도 없지만! 활자에 대한 적응력 향상은 필요한 자료를 바로바로 현지 사이트에서 검색해 찾을 수 있는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책이라면 아무리 두껍고 어려운 교양서라도 일단 사서 쟁여두는 호기로움까지 싹텄다. 



둘째, 눈 뜨기 시작한 독서의 묘미와 습관화! 

일본어 원서를 즐겨 읽기 전까지는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항상 책 읽기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가끔 베스트셀러나 훑어보던 게 전부였다. 그런데 원서 읽기를 시작하면서 꼬박꼬박 서평을 챙겨 쓰며 도서 내용을 좀 더 곱씹어 보고 생각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읽은 책도 앱으로 관리하며 완독 도서가 누적될수록 성취감도 즐거움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독서량이 저조한 시기에는 단 몇 페이지라도 애써 읽으려고 노력하면서 독서가 습관으로 정착된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읽을 수 있는 책 중 쉽고 얇은 책부터 점차 읽고 싶은 어렵고 두꺼운 책으로 독서 근력을 쌓아가는 과정이 스스로의 성장을 느낄 수 있어 정말 즐거웠다. 


일본 유튜버나 현지 문예지를 통해 소개된 새로운 책을 찾아 읽으며 현지인들의 독서 추세에 발맞출 수 있는 기쁨도 크다. 특히, 실용서 위주의 편독으로 우리글로는 등한시하던 소설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던 점도 큰 수확이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며 사고력과 공감 능력도 향상됐고, 많은 위안도 얻었다. 일본 문학은 워낙 풍부한 정서와 섬세한 감수성을 잘 담아내며,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소재 역시 코드가 잘 맞았다. 출근하기 정말 싫은 날 가끔은 '돈 벌어야 재밌는 일본어 원서도 사 읽지! 당장 일어나!'라고 마음속으로 소리 지르기도 한다. 이제 이 정도면 원서 읽기는 삶의 일부다. :)



셋째, 즐겁게 유지할 수 있는 일본어 학습법 발견

꽤 장기간 공부해 온 영어보다 비교적 짧은 시간 내 눈에 띄는 실력 향상을 보인 일본어는 역시 학습자가 좋아하는 자료로 일정 기간 꾸준히 노력을 쏟아부어야 함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뭐든 금세 싫증을 잘 느끼는 나는 한 가지를 꾸준히 못 하는 편이다. 책도 시리즈물을 한 번에 연이어 읽기보다는 중간중간 다른 책을 병행하면서 읽어야 그나마 그 지겨움을 견뎌낼 수 있다. 드라마, 영화, 예능 같은 영상물 시청, 라디오 청취, JPOP 듣기, 신문 기사 읽기, 영상 자막 만들기, 현지인과 회화, 작문하기, 원서 읽기 등 전방위적으로 공부해 봤는데 역시 그중에 제일은 독서다. 


같은 시간 가장 많은 인풋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고, 오디오북과 함께 독서를 병행하면 책만 읽었을 때의 단점을 꽤 보완할 수 있어 효율적이기도 하다. 더욱이 재미와 지식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데다, 선택의 폭도 매우 넓은 점 또한 장점이다. 자신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서 메타인지를 높이고 효율적인 학습 방법을 찾는 것은 실력 향상의 지름길이다. 




>> 가장 쉬운 책  VS 가장 어려운 책 


에 입문용 도서로 '世界から猫が消えたなら’를 추천한 적이 있는데, 역시 그 책보다 훨씬 더 쉬운 책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읽을 수 있는 아동용 도서 'こぐまのクーク物語이다. 가장 어려웠던 책은 '한자와 나오키'의 저자 이케이도 준의 '七つの会議’였다. 우선 분량도 많고, 생소한 단어와 기업 내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한 과정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의 유기적인 관계 등 중상급자용으로 적당할 것 같다. 하지만 워낙 탄탄한 구성과 믿고 읽는 필력은 읽을 만한 가치와 재미를 선사한다. 게다가 오디오북까지 들을 수 있어 독서에 날개를 달아준다. 





>> 일본어 원서 읽기 꿀팁 


어가 됐든 영어가 됐든 원서를 읽으려면 첫째, 관심 분야와 흥미 있는 주제 선택하기! 둘째, 독서에 대한 애정! 셋째, 단어(한자 포함)와 문법 실력을 갖춰 수준에 맞는 도서 선정! 이렇게 세 가지 요소가 필수다. 스스로 읽고 싶다는 내적 동기가 일게 되면 완독의 절반은 성공이다. 원서도 결국은 책을 읽는 행위이기에 평소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완독 성공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 달에 한글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마음먹고 원서를 편다 한들 글자가 술술 읽힐 리 만무하다. 


앞서 말한 두 가지를 아무리 충족한다 해도 일본어 독해 실력이 부족하다면 결국 완독도 힘들다. 독해력의 기본 바탕은 단어와 문법이다. 독자마다 독서의 최종 목표가 다르겠지만, 가장 이상적인 수준을 '모국어처럼 읽는다'라고 가정했을 때 그 출발점을 최소 JLPT N2의 수준부터 권한다. 참고로 JLPT는 절대 어려운 시험이 아니다. 합격선이 굉장히 낮은 편이기 때문에 목표를 단순히 자격증 취득에 둘 것이 아니라 N2 고득점 레벨의 실력을 갖추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N2라면 대략 5,000 단어 정도다. (N5 511단어, N4 881단어, N3 1,309단어 N2 2,300 단어 - 네이버 제공 JLPT 단어 기준) 정복하기 절대 힘들지 않다. 


도서를 선정할 경우에는 한 페이지를 읽었을 때 대략 70% 이상 이해되는 책으로 고르는 것이 좋다. 어려운 책을 하루에 한 페이지씩 200일에 걸쳐 읽는 것보다 차라리 쉬운 그림책을 하루에 한 권씩 200권 읽는 편이 실력 향상과 성취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소설을 하루에 한 쪽씩 읽어 6개월에 완독했다 한들 내용이 머릿속에 제대로 남겠는가! 그런 장기전은 지치기만 할 뿐, 매일 단어와 문법 찾아가며 읽는 독서가 즐겁기는커녕 괴로운 공부로 다가온다. 보통 열의가 없는 이상 열에 아홉은 도중에 그만두기 쉽다. 그림책 → 100페이지 전후 요미가나(루비) 달린 아동서 → 200페이지 전후 아동서나 쉬운 성인용 도서 순으로,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장편보다는 짤막한 단편 모음집을 일주일에 한 편씩 완독해 가길 추천한다. 2-300페이지 정도의 책을 한 달 이상 읽어야 한다면 더 쉬운 책을 고르자.


혹시 그림책은 애들이나 읽는 책이라고 마음의 빗장을 잠그는 사람이 있다면 곰곰이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자신의 일본어 수준이 과연 현지 일본 아이들보다 훨씬 낫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자신이 지향하는 읽기 수준과 실제 수준의 차이를 빨리 인정하고 리딩 자료를 알맞게 선택할수록 실력 향상 속도도 비례해진다. 제발 고집스럽게 어려운 책 붙들다 포기하거나 날림으로 읽어 얻는 것 없이 시간만 낭비하지 말고, 수준에 적합한 책을 고르자!


원서를 읽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 바로바로 찾으면서 해결하기보다는 표시만 해두고 문맥을 파악하며 어떤 의미일지 추측해 본다. 원서 읽기의 흐름이 끊기고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오늘 읽은 부분 중 모르는 단어를 100% 암기하려 들 경우 또 힘든 공부가 되기에 원서 읽기가 고통스러워진다.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지속적으로 암기해 주면 단어의 스펙트럼이 넓어져 그만큼 선택할 수 있는 원서의 폭도 넓어진다. 단어는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끝내려는 조급함을 버리고,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에 의거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해줘야 효율적으로 정복할 수 있다. 



>> 추천하고 싶은 원서 베스트 10 



1. 츠지무라 미즈키 - 거울속 외딴성 / 소설 / 멈출 수 없는 울트라급 페이지터너!



2. 이케이도 준 - 일곱 개의 회의 / 소설 /기업의 추악한 은폐된 진실을 밝혀라! 



3. 무라타 사야카 - 편의점 인간 / 소설 /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 규격화된 삶을 지향하는 현대인들의 자화상



4. 아시다 마나 - 마나의 책장 / 에세이 / 여배우 마나짱이 엄선한 머스트 리드 북리스트



5. 신카이 마코토 - 초속 5센티미터 / 소설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6. 이와이 슌지 - 러브레터 / 소설 / 아련한 첫사랑의 감성이 소환되는 설렘의 러브스토리



7. 유즈키 아사코 - 런치의 앗코짱 / 소설 / 2014년 서점 대상 7위 수상작 / 츤데레 앗코짱을 통해 성장하는 미치코의 이야기



8. 오쿠다 히데오 - 공중 그네 / 소설 / 나오키상 수상작 / 정신과 전문의 이라부에게 배우는 내려놓기 연습



9. 미즈노 케이야 - 꿈을 이루어주는 코끼리 / 자기계발서 같은 소설 / 코끼리가 알려주는 성공의 법칙



10. J.K. 롤링 -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 소설 / 해리포터 시리즈 일본어 번역서


>> 다음 목표 100권을 향해 


본어 공부 전방위로 해 보기 50회 달성 챌린지 중 하나였던 원서 읽기 50권을 넘어 76권을 읽었으니 그다음은 100권을 목표로 잡았다. 권수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스스로 독려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가 될 수는 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분량 많고 읽기 어려운 책과 쉽고 분량 적은 아동서도 완급 조절하며 읽을 생각이다. 그리고 정말 아주 쉬운 원서들을 발굴해 원서 읽기에 관심은 있지만 시작하기 힘들어하는 학습자를 위한 포스팅도 자주 올리고 싶다. 항상 아쉽게 생각되는 게 영어 원서와 관련된 자료는 차고 넘쳐나는데 반해 일본어 원서 읽기는 정말 불모지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서평을 쓰며 미리 보기나 오디오북을 일부러 귀찮게 찾아서 링크를 걸어두는 이유도 다른 학습자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책의 수준을 상, 중, 하로 나누는 게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고 내가 아무리 쉽다고 느껴도 막상 읽는 독자가 어렵다고 느낀다면 유용한 정보가 되지 못할 것이다. 단 몇 페이지라도 직접 읽고, 들어 보는 게 최고! 암튼, 올해도 힘내 보자 :D 


명 18,000여 페이지가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원서를 읽은 결과물이라 뿌듯하다. 수치를 계속 누적하면서 기록하다 보니 좋은 자극제가 되어 더 열심히 읽고 싶어지는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한다. 책을 읽고 빠짐없이 꼬박꼬박 서평을 작성하면서 글쓰기 실력도 초반에 비해 조금은 향상된 듯하다. 쓰지 않는다면 그냥 대충 읽고 말 것도 한 번 더  유심히 들여다보고,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거나 글의 주제, 작가의 의도, 나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어 책을 읽는 가치가 배가 되는 것 같다. 워낙 졸필이라 덕분에 글쓰기에도 관심이 생겨 관련 도서도 많이 찾아보게 된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이번 달 신간에도 수많은 일본 도서가 포함돼 있다. '이제는 번역가에게 기대 읽지 않고 스스로 원서 찾아 읽어 볼까' 싶은 무모한 용기와 배짱이 충만해진 데는 확실히 18,000여 페이지가 크게 기여했다. 재밌는 영화나 일드를 보고 난 후에도 원작 소설을 검색해 주문하거나 다양한 수상작을 기웃대는 여유도 눈부신 진보다. 좋아하는 책, 재밌는 책, 끌리는 책으로 남은 올해도 열심히 읽고 사 모으고 빼곡히 들어찬 책장 보며 가속도 내는 선순환으로 다시 100권 기념 포스팅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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