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책 추천, 82년생 김지영 영어 번역서
출간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몰고 왔던 '82년생 김지영', 남녀의 첨예한 젠더 분쟁에 불을 붙이며 살벌한 설전에 넷쌈박질이 끊이지 않았다. 잔인하고 가학적으로 물어뜯기 대결인 양 아무 소득 없는 감정 소모전으로 끝나 아쉬웠지만, 대한민국에서 여자로서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책이었다. 유교를 근간으로 한 뿌리 깊은 남성 중심주의의 불평등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은 이 책이 국경을 넘어 세계 각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미국,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등 16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미국 전미도서상 후보 선정 및 타임지에서 선정한 2020년 반드시 읽어할 도서 100으로 추천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젠더 이슈가 국경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1982년에 출생된 여아 중 김지영이라는 이름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즉 '1982년생 김지영'은 우리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여성을 상징하며, 그녀의 30여생의 일대기를 따라 독자는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서 사는 삶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에 출생한 조부모 세대는 구한말의 남성 우월주의 의식을 그대로 계승해 자식은 물론 손주까지 성별에 따라 철저히 차별한다.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의 과도기였던 부모 세대의 풍경은 살림 밑천이라는 딸아이가 남자 형제들의 학업을 위한 뒷바라지로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결혼해서는 남편 내조와 독박 육아에 시부모 봉양까지 도맡는 것이 숙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기여도 가치가 평가절하된 것이 명백한 팩트다. 남아 선호 사상은 성별 감별과 임신중절수술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도록 부추겼고, 그 결과 성비 불균형을 초래했다.
I suffered deathly pain having our child.
My routine, my career, my dreams, my entire life, my self-I gave it all up to raise our child.
And I've become vermin. What do I do now?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어.
내 생활, 일, 꿈, 인생, 나 자신까지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길렀는데 나는 맘충이 됐어.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세월이 흘러도 이런 분위기는 김지영의 삶에 그대로 침투해 어린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가정에서는 할머니의 절대적인 힘을 등에 업은 남동생에게 서열이 밀리고, 학교에서는 남자 급우들에게 유리한 온갖 제도에 불평등을 체감한다. 바바리맨을 제압한 친구들은 학교의 망신으로 낙인찍히고, 스토커를 당해도 자신의 행실을 탓하는 아버지의 질책을 덤덤히 감내해야만 한다. 학교든 회사든 사회든 수장은 남자들이 꿰차는 것이 당연하다. 취업 관문에서도 초고스펙 여자 취준생은 부담스럽고, 임신하면 짐이 될 여사원은 회사의 골칫덩이다. 결혼 후 경단녀 코스를 착착 밟아 양육과 살림은 오롯이 여자의 몫이며, 남편은 도움을 주는 '조력자'일뿐이다. 갓난쟁이의 일과에 맞춰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쳇바퀴 돌 듯 고단한 하루를 보내며 잠깐 동네 커피라도 한 잔 마실라치면 사람들은 '맘충'이란 비수를 꽂는다.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고 억울한 순간을 묵묵히 견뎌내야만 했던 김지영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지 못 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동시대를 살아오며 가정, 학교, 사회에서 똑같은 경험을 겪었던 같은 여자로서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주제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후반으로 갈수록 다소 희소적인 부분이 보편적으로 묘사된 듯한 부분이 있어 반감을 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암튼, 이 소설을 통해 공기와 같이 너무 당연하게 느끼며 살았던 부당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의 필요성에 다 함께 공감하여 변화의 첫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일본어 번역서도 궁금해서 구입했는데, 북클럽 통해 읽어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