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나물은 녹두를 물에 불려 싹을 틔운 나물이다.
그런데 왜 ‘숙주나물’의 이름은 녹두나물이 아닌 숙주나물일까? 랩 가사의 라임 맞추기 놀이 같다.(나는 이 시대 제너럴 녹두, 모두가 나에게 몰두, 결국 나는 너의 숙주!)
찾아보니 이 ‘숙주’가 사람 이름이었다. 조선시대의 학자, 신숙주
신숙주는 조선 세종 때 집현전에서 성삼문을 비롯한 여러 학자와 학문을 닦았으며 훈민정음 연구도 도와 여러 공을 세웠지만 추후 여러 왕의 라인을 갈아타면서 백성의 민심에는 들지 못한 인물인 듯하다.
결정적인 사건으로는 세조 때 단종을 배신하고 세조에게 협력했다는 이유로 변절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백성들은 그를 조롱하기 위해, 익히면 금세 물러지고 상하는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숙주’라는 이름은 본래 사람의 이름이었지만, 후대에는 나물의 이름이 되어버린 셈이다.
물론 학계에서는 이 이야기가 완전한 사실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숙주’라는 말이 그렇게 전해졌다는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 한 사람의 이름이 시대를 거쳐 한 그릇의 반찬이 되었으니 말이다. 역사는 가끔 말장난처럼 이어지고, 언어는 그 흔적을 품은 채 살아남는다.
우리가 즐겨 먹는 숙주나물에도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나는 그 시대의 백성이 되어 상상해 본다."에잉쯧 녹두나물 또 상했네 오늘 저녁밥에 내놓으려고 했구만.. 이번 신숙주인가 뭐시기랑도 이름도 비슷하고 하는 짓도 똑같구만! 앞으로 녹두나물이라고 하지 말고 숙주나물이라고 불러! "라고 소리치는 상상.. (흰 소복을 입고 무명천에 물기를 닦는 한 주부 조선인에 빙의해 보았다.) 해학의 민족답게 그 시대의 블랙유머 또는 힙합의 삶을 실천하는 조선인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누군가를 조롱하려면 그 사람의 이름을 바꿔 부르는 게 일반적인데, 왜 신숙주의 이름은 오히려 그대로 남았을까. 신숙주를 '신녹두'라 부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내 생각에는 백성들이 더 영리했던 거 같다. 이름을 지우는 대신, 이름의 뜻을 뒤집어놓는 것.
그렇게 하면 후세까지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해학의 지혜)
아무튼 숙주나물은 신숙주나물이였던 것이 잠깐이지만 즐거운 타임머신을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