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차림

by 더하기

요즘 매주 수요일에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1편 보려고 한다.
어제는 ‘왼손잡이 소녀’라는 대만영화를 봤다. 줄거리는 엄마와 딸, 그리고 막내- 3명이 도시로 이사와 고군분투 살아가는 내용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어릴 적이 생각났다. 지나치게 가까운 가족 간의 거리, 하루하루의 버팀, 어떻게든 서로를 끌어안으려는 마음. 그 감정들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엄마와 누나는 나를 키웠다. 엄마는 온갖 일을 다 하며 아침에 나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누나는 친구를 만나고 공부해야 하는 시기에 나의 저녁을 책임졌다. 대부분의 날 엄마는 취해서 들어왔다. 일상을 버티기 어려웠던 거 같다. 그때는 매일 일하면서 술까지 취해서 들어오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고달픔’이라는 감정을 몰랐다.

엄마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엄마가 일하는 곳에서 남은 음식을 가끔씩 싸왔기 때문이다. 가끔은 부추전, 어떨 때는 잘려 있는 떡갈비, 또 어느 날은 온전한 소시지 몇 개. 그걸 나는 누나와 나눠 먹었다. 그게 정말 행복했다. 엄마가 고달플 줄은 전혀 몰랐다.

나는 엄마가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 소리를 알았다. 남들보다 느린 리듬, 축축한 듯한 발끝. 그 익숙한 소리가 들릴 때면 난 미리 문을 열었다. 엄마와 그 음식을 환영했다.
그 모습과 감정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내가 사는 동네는 잘 사는 친구들이 많았다. 사업가의 아들, 고위 공무원의 딸.
나는 엄마 혼자 고군분투 키우는 아들.
그래서 난 엄마를 더욱 숨겼다. 나도 아무 어려움이 없는 척했다. 그 ‘척’이 어느새 나에게 달라붙었다. 결국 나는 체면이라는 갑옷을 입게 되었다. 달라 보이는 게 싫어서 했던 행동들이 어느새 나를 잡아먹었다.

그 마음이 나와 혼연일체 되면서, 지금의 ‘체면 차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체면(體面)’이라는 단어는 참 이상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
겉(體)과 얼굴(面), 즉 ‘겉으로 보이는 얼굴’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몸과 얼굴로 남에게 비치는 모양새, 사회가 나에게 기대하는 단단한 껍데기 같은 것.
내가 두려워했던 건 실패보다도,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셈이다.
체면은 내 얼굴이 아닌데— 나는 어느새 그 가면이 벗기 두려워진 것이다.


영석이와 도전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잘 아는 것, 사랑하는 것을 실패하는 것에 너무나도 두려움이 많다고 앞다퉈 말했다.
그 두려움이 결국 나를 실패와 가깝게 하고 있다는 걸 요 근래 느낀다.

어릴 때고 지금이고 나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그 궁금증을 시작으로 우리는 체면에 대해서도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 우리는 지금도 각자의 체면을 조금씩 벗겨내는 연습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본인의 체면이 두껍다는 걸 알아서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것일 거라고. 그러니 서로의 진짜 모습을 아는 우리가 서로를 믿어주자고 말했다. 그 마음으로 스스로를 믿기로 다짐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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