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북쪽의 페로 제도(Faroe Islands)와 아이슬란드로 떠나는 ‘크루즈 관광객’ 모집 광고가 1815년 에든버러 신문에 실렸다. 최초로 일반인에게 소개된 크루즈 상품이었다. 하지만 당시 실정으로는 너무나 모험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상품이었으며, 결국 크루즈 관광객 모집은 성사되지 못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영국의 P&O(Peninsula and Oriental Steam Navigation Company) 선사는 1800년대 초 영국에서 출항하여 이베리아 반도의 북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항해한 기록을 최초의 크루즈 여행이라 주장하였으나, P&O 선사가 관광 목적으로 대중들에게 소개한 최초의 크루즈 상품은 다름 아닌 1858년 지중해로 항해한 세일론(Ceylon)호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크루즈 여행에 대한 여러 기록과 주장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소개된 크루즈 여행은 한 해 3천만 명이 이용하는 오늘날의 여행 상품과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출항하게 된다.
초창기 크루즈 상품은 영국과 미국 동부지역을 항해한 우편배달 목적의 대서양 횡단 화물선이었다. 화물선에 승객을 함께 실어 나르면 보다 나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확신한 사무엘 큐나드(Samuel Cunard)는 최초의 대서양 횡단 정기 노선인 브리타니아호(RMS Britannia)를 1840년 7월 4일 취항하게 된다. 영국의 리버풀항에서 백여 명의 승객이 정기 크루즈 노선에 승선한 역사적인 날이었으며, 승객은 아메리카 대륙에 호기심으로 가득 찬 부유층이었다.
큐나드의 예상은 적중하게 된다. 승객을 실어 나르면서 많은 이익을 남기기 시작한 해운사들이 화물선이 아닌 승객을 위한 여객선을 건조하였기 때문이다. 크루즈 여행을 위한 최초의 여객선 프린체신 빅토리아루이제(Prinzessin Victoria Luise)호가 20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에 그리고 불운의 타이타닉호(M.S. Titanic)가 1912년에 건조되었다. 당시 여객선을 건조했던 큐나드(Cunard), P&O(피앤오), 홀랜드 아메리카(Holland America) 해운사가 오늘날 세계 크루즈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대표 크루즈 선사들이다.
20세기 초부터 등장한 크루즈선들은 놀라울 정도로 웅장한 외관의 모습과 유럽의 유명 호텔 모습을 닮은 호화스러움 그 자체였다. 부호들의 관심과 눈길을 사로잡은 크루즈 여행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전 세계를 향해하는 "월드투어" 크루즈 상품이 앞다투어 등장하면서 일정은 더 길어졌으며, 크루즈 가격은 초고가로 판매되었다. 크루즈 여행의 구매자는 부자와 은퇴자 및 저명인사들이었다. 월드투어 크루즈 상품은 부유층들을 위한 사교장 같은 역할을 담당하면서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날로 증가하는 부유층을 위한 관광 목적의 호화 크루즈 상품과 정치적, 경제적 핍박으로부터 벗어나 새 삶을 찾고자 했던 이민자들의 이동 수단으로 성장한 크루즈 시장은 불행하게도 항공 산업의 비약적 발전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부닥치게 된다. 미국 최초의 상업용 제트기가 1958년 10월 26일 뉴욕에서 이륙한 후 불과 10시간 미만에 파리에 도착하였기 때문이다. 이동수단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제트기를 앞세운 항공시장의 약진은 불과 2년 만에 전체 대서양 횡단 승객의 70%를 확보하게 되었고, 대서양 횡단의 선박을 이용한 승객은 과거 100명 중 4명으로 감소되는 처참한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한나절만에 대륙을 횡단했던 제트 항공기가 최소 4일 이상이 걸렸던 크루즈 승객을 모조리 빼앗아오게 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동수단으로 성장한 크루즈 시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빠른 이동수단의 출현으로 거의 하룻밤 사이에 경쟁력을 잃게 된 것이다. 혼란과 비운에 놓인 크루즈 시장은 결국 스스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야만 했던 운명의 시대를 맞게 된다.
크루즈 여행이 기존의 이동 수단에서 1930년대부터 북미 및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유행했던 목적지 중심의 여행 상품으로 전환하게 된 배경이었다. 크루즈 선박은 1960년대부터 여행 목적에 알맞도록 에어컨 시스템을 비롯해서 수영장 확장 및 카지노 등 럭셔리 리조트 호텔의 시설을 뛰어넘는 선내 편의 시설을 하나 둘 갖추게 되었고, 과거 추운 겨울 시즌에만 운항되었던 바하마 및 버뮤다 크루즈 상품이 연중 4계절 운항되면서 단번에 은퇴자와 부유층들의 인기 여행 상품으로 성장하게 된다. 크루즈 여행의 수요 증가는 자연히 새로운 크루즈 선사들이 탄생한 계기가 되었으며, 당시 신규 취항한 선사들이 프린세스(Princess Cruises, 1965), 노르웨지안(Norwegian Cruise Line, 1966), 로얄캐리비안(Royal Caribbean Cruise Line, 1968), 카니발(Carnival Cruises, 1972) 선사로 오늘날 세계 크루즈 시장의 선두 주자로 우뚝 서게 된다.
이처럼 존폐의 위기 속에서 부유층 및 특정 연령대에 특화된 여행 상품으로 절반의 성공을 거둔 크루즈 여행이 다양한 계층과 모든 연령층의 인기 여행 상품으로 도약하게 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크루즈 여행을 모티브로 촬영한 텔레비전 시리즈 덕택이었다.
1977년부터 1986년까지 북미 전역과 세계 각국에 방영된 텔레비전 시리스 '러브 보트'(Love Boat, 사랑의 유람선)는 프린세스 선사와 퍼시픽 프린세스호(The Pacific Princess)를 전 세계적으로 홍보하였을 뿐만 아니라 크루즈 여행을 대중적 상품으로 발전시킨 지대한 공로를 세우게 된다. 크루즈 승객과 승무원들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로맨틱하고 유머스럽게 소개되면서 프린세스 선사는 전 세계인들이 승선하고 싶은 인기 크루즈 선사로 알려지게 되었고, 크루즈 여행은 기존의 은퇴자 및 노년층 중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모든 연령층이 한 번쯤은 꼭 타보고 싶은 여행 상품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러브 보트는 크루즈 여행의 대중화를 불러온 ’게임 체인저‘였다.
텔레비전 시리즈가 가져다준 행운으로 폭발적인 크루즈 수요층을 이끌어 낸 크루즈 시장은 건조 기술과 공법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대형 크루즈 선박의 공급으로 이어지게 된다. 1960년에 건조되어 무려 28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크루즈 선박으로 군림한 프랑스호(SS France, 66,343톤)를 뛰어넘는 규모이면서 크루즈선 최초로 복층 구조의 아트리움이 중앙홀에 설계된 소버린호(Sovereign of the Seas, 73,192톤)가 1988년 로얄캐리비안 크루즈 라인에 의해 건조되었으며, 카니발 라인은 크루즈선 최초로 10만 톤이 넘는 데스티니호(Destiny, 102,853톤)를 1996년 선보이게 된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06년 로얄캐리비안 라인은 15만 톤이 넘는 프리덤호(Freedom of the Seas, 156,271톤)를 그리고 2010년에는 세계 크루즈사에 영원히 기록될 20만 톤이 넘는 오아시스호(Oasis of the Seas, 226,838톤)와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크루즈선 원더호(Wonder of the Seas, 236,857톤)를 2022년에 취항하면서 크루즈 선박의 신기원을 써내려 가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건조된 대형 크루즈선들은 분명 크루즈 수요층을 불러일으킨 일등 공신이었다. 크루즈 여행의 르네상스 시대라 할 정도로 양적 질적 성장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하였다. 과거 북미와 유럽의 주요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운항했던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아시아, 아프리카 및 '백색 대륙' 남극에 이르기까지 세계 모든 지역에서 다양한 노선이 제공되는 크루즈 여행은 한 해 3천만 명이 이용하는 인기 여행 상품으로 성장하였다. 약 5천만 명의 크루즈 관광객이 예상되는 2030년과 1억 명 이상도 가능하다는 2040년에는 상상 이상의 혁신적인 크루즈선 출현도 예견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크루즈 시장은 한 해 1,200만 명 이상의 크루즈 여행자들이 항해하는 북미 시장이다. 영국, 독일을 중심으로 연 800만 명에 가까운 크루즈 여행자들이 항해하는 유럽과 2000년 중반부터 가파른 성장세에 힘입어 한 해 2백만 명이 넘는 중국 및 전통적으로 크루즈 여행을 즐기는 호주가 세계 크루즈 시장의 선두 주자에 속한다. 아쉽게도 국내 크루즈 관광객은 2019년 기준으로 4만 명을 웃도는 수준이다. 크루즈 여행에 대한 대중적 인식 또한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다.
길고 어두웠던 코로나 시대가 서서히 종식되면서 지난 2년 동안 닫혔던 세계의 크루즈 시장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고 있다. 관광업과 크루즈 산업에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봄의 기운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크루즈 시장이 코로나 이전의 상황으로 당장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크루즈 선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화된 선내 방역 그리고 승객과 승무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운항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크루즈 역사의 한 페이지가 힘찬 물살을 가르면서 세계 곳곳에서 항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