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밤은 언제나 깜깜했다. 보름달이 그렇게 크게 떴는데도 내 기억 속의 밤은 늘 어두웠다.
음력 7월 15일은 백중날이다. 이날은 여름철 농사일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며 음식과 술을 나눠 먹는 날이라고 네이버 형님이 알려줬다. 전통 세시풍속을 거이 모르는 내가 이 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날은 밤중 수영을 즐기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백중날이 되면 마굿간에서 간단한 제사를 지내며 우리 집 소들이 안녕과 다산을 빌었다. 그리고 온 동네 아이들은 그 밤에 다들 바다로 몰려갔다. 백중날은 음력 보름이라 바닷물은 완전한 밀물이었다. 밀물이 코앞까지 가득 들어오면 우리는 '물이 봉봉 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물이 봉봉해진 백중날 밤에 우리는 반드시 수영을 해야 했다.
백중날 밤에 바닷물에 몸을 담가야 한 해 동안 몸에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며 부모들은 아이들을 밤바다로 들여보냈다.
동네에서 코앞이 바다였지만 그 밤에 바다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바닷가로 가는 길, 수영을 하는 바다 근처 그 어디에도 가로등이 없었다. 가로등뿐 아니라 불빛 하나 없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하얀 모래가 가득한 백사장이었다면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바다로 뛰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동네 바다는 검은 현무암만 가득한 제주바다였다. 시커먼 현무암을 삼킬 듯 끝까지 밀려들어와 깊어진 바다 속으로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갔다. 모두가 밤 수영의 맛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 백중날 밤은 시커먼 어둠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친구를 찾으려면 서로 크게 이름을 불러야 했다. 어둠 속에서 모두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도착 여부와 생사를 확인했다. 바닷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울퉁불퉁한 현무암 위를 엉거주춤 걸으며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든든한 손이었다. 그렇게 조심조심 서늘하고 시커먼 밤바다에 몸을 담그고 신나게 개구리 수영을 했다. 꼬맹이들은 깊어진 바닷물이 무서워 바윗돌을 잡고 발을 퐁당거렸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지만 모두가 한밤중 수영에 신이 나 있었다.
목소리 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친구의 얼굴이 보이는 듯 했다. 멀리서 들리는 다이빙 하는 동네 오빠들의 목소리에서 그들이 얼마나 신나게 밤 수영을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동네 꼬맹이들의 목소리에서도 무서움과 신남이 뒤섞인 흥분된 얼굴이 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한밤중 해수욕은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안전요원은 커녕 어른 하나 없이 온통 아이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밤에 모두가 부엉이처럼 소리로 서로를 알아보고 느끼고 있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들리는 서로의 목소리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오돌 오돌 추운지 알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맞잡은 손에는 안심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언니, 언니 거기 있지?" 하며 수시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는 동네 꼬맹이들의 목소리에선 '더 놀고 싶어요' 하는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더 잘 보였던 얼굴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정전의 밤이다. 베란다 문을 열었다, 어둠속에서 오름들의 검은 능선이 선명하게 보였다. 귀뚜라미 소리가 요란했다. 새끼 고양이 소리, 어둠을 향해 짓는 동네 개들 소리, 온 세상이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차 있었다. 항상 거기 있었지만 내가 미처 듣지 못한 소리들이 들여왔다. 오늘은 완전한 어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