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에 도착하면 601번 버스를 탄다.
몸이 아파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이 버스를 탄다. 버스가 지나는 길에 이대목동, 신촌세브란스, 서울대 병원이 있다.
병원까지 가려면 한 시간쯤 달려야 하니 나는 내리는 문 근처에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
마침 오이농사, 표고버섯 농사를 지으며 앞마당에 꽃까지 가꾸는 어느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버섯밥을 한 솥 해놓고 지나가는 이웃을 불러 밥을 먹이며 흐뭇해하는 어느 작가의 어머니였다.
연하고 싱싱한 오이꾸러미, 탱탱한 살이 쩍 갈라지는 표고버섯 무엇보다 갓 지은 버섯 솥밥 사진을 보니 아침을 대충 먹은 나는 배가 고팠다. 모른 척 그 집 앞을 지나가고 싶었다. 그러면 분명 그 밥상 앞으로 나를 부를 것이다. 염치 불고하고 행복한 그 밥상에 앉아 함께 먹고 웃고 떠들고 싶었다.
병원을 세 정거장쯤 남기고 책장을 덮었다.
복작되던 버스가 어느 정도 한산해 지자 오랫동안 서서 가느라 피곤한 여성 한 분이 빈자리를 보고는 얼른 달려갔다. 그때 버스에서 내리려고 서 있던 여대생과 살짝 부딪쳤다. 부딪쳤다고 말하기가 좀 그렇고.... 그냥 사람들 사이를 조금은 거칠게 스쳤다고 하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아이씨" 그 여대생이 다 들리게 말했다. 그리고 간신히 자리를 잡은 그 여성을 무섭게 째려봤다.
여전히 더운 늦여름, 민소매의 검은 원피스를 세련되게 입은 여대생은 하얀 얼굴에 길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크고 검은 눈동자가 자리에 앉은 여성을 향해 희번덕 거렸다. 한 정거장을 더 가기까지 여대생은 그녀를 노려봤다. 매정하고 차가운, 얄짤없는 얼굴이었다.
왜 항상 피곤한 사람들은 물 빠진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있는 것일까?
청바지에 남방을 입은 여성, 아침부터 피곤했던 그 여성도 그 눈빛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죄송하다 말하기 조차 피곤한 날이 있지 않은가?
그녀에게 오늘 아침은 그런 날처럼 보였다.
다음 정거장, 유명한 대학교 앞에서 내린 여대생은 횡단보도를 건너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뜨끈한 버섯밥을 넉넉하게 퍼주는 책을 읽고 있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어떤 이의 매정함이 너무 하다 싶은 이유는.
지친 그녀가 창가 자리에 앉아 더 먼 길을 가야 하는 삶이 더 슬픈 이유는 아침부터 너무 훈훈한 책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의 얄짤없이 차가운 눈빛이 오래 남았다. 어려서부터 죽 공부를 잘했을 것 같은 얼굴. 자기 노트는 절대 빌려주지 않았을 거라며 혼자 별 상상을 다 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더러는 얄짤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웬만하면 봐주는 사람, 봐주고 바라봐 주는 사람, 다른 사람의 몸도 마음도. 낯선 이의 피곤한 얼굴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가진 어떤 가마솥에 뜨끈한 뭔가를 끓여 나눠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은 아침이다.
* 얄짤없다: 봐줄 수 없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