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를 위해 준비해야 할 3가지

by 정미리

진료를 마치고 항암을 하기 전에 밥을 먹기로 했다.

배를 든든히 채우지 않고 치료를 받으면 위장이 뒤틀리는 통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 밥이 지겨운 나는 인근 식당을 찾아 돌아다녔다.


우연히 건강식을 파는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은 작았지만 깨끗했고 메뉴도 마음에 들었다.

점심시간 전이라 손님도 많지 않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바로 옆 테이블에 한 모녀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30대로 보이는 딸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점심 메뉴를 소개했다.

연어구이, 현미와 귀리밥, 병아리콩으로 만든 후므스와 싱싱한 샐러드를 앞에 놓고.

딸은 엄마에게 식단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항상 단백질을 먼저 먹고, 탄수화물은 통곡물로. 식사 후에는 혈당관리를 위해 15분 걷기.

수시로 발뒤꿈치를 들며 운동하기 등등...

당뇨가 있는 엄마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 같았다.

딸은 밥을 먹는 내내 엄마를 위한 건강식 강의를 했다.


그러나 70세는 넘어 보이는 엄마는 음식을 먹을 생각도, 딸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엄마는 딸이 잠깐이라는 말을 쉬면 여지없이 끼어 들어가 남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엄마의 안타가운 틈새 공략이었다.


엄마는 지금 남편 흉을 보고 싶은 거였다.

아픈 자신을 몰라주고 밥상 차리라는 남편, 밥만 잘 먹는 남편 말이다.

쉴 새 없이 건강식 강연을 하던 딸이 드디어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제 엄마와 딸은 함께 남편이자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옆에서 들어봐도 남편은 정말 무심한 사람 같았다.


나이 들고 아픈 엄마는 50년간 참아왔던 서러움과 억울함을 쏟아내느라 연어구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연어구이를 먹으며 모녀의 대화를 들었다. 처음 만난 어느 여인의 인생사를 듣게 된 것이다.

나이 들고 병들어 이제 딸 앞에서 신세한탄 밖에 할 게 없는 그 여인이 문득 행복하게 느껴졌다.


보통 노후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돈과 건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 더 내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이 있다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알맹이 없이 반복하는 신세한탄과 그저 지껄이고 있을 뿐인 뒤죽박죽 사연이라도 들어줄 사람 하나 있다면.

연어구이 앞에서 눈 맞추고 고개 끄덕이며 고달픈 인생사를 들어주는 딸이 있는 아줌마가 행복해 보였다.


내 얘기를 들어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험한 세월을 내가 살아왔다는 확실한 증거요

그 시간들을 내가 살아냈다는 반증이 아닐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험한 세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내 인생, 화려했던 내 젊은 날이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내가 연어구이를 다 먹을 동안 아주머니는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딸은 같이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행복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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