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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다 Jan 05. 2021

겨울에는 팥칼국수를 먹고 싶어


할머니는 여름이면 노란 백태콩을 갈아 콩국수를 만들고 겨울이면 팥을 쑤고 면을 뽑아 팥칼국수를 만드셨다.

콩을 가는 도구가 맷돌에서 시끄러운 믹서기로 변하는 모습을, 폴폴 날리던 밀가루가 하얀 덩어리가 되었다가 도마 위에서 가는 면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어린 나는 늘 신기하고 흥미롭게 지켜보곤 했다.

할머니의 부지런한 손놀림 덕분에 나의 어린 시절 여름과 겨울은 으레 이 두 국수를 먹는 계절이었다.


(내가 여름에 콩국수가 아닌 냉면을 먹은 것은 할머니 품을 떠난 14살 때가 처음이었는데 그 새콤한 냄새와 맛은 당시 엄청난 충격이었다.)

 

유년시절 길들여진 입맛이란 건 대단해서 지금도 나는 여름이 되면 콩국수가, 겨울이면 팥칼국수가 생각난다.

그래서 여름엔 콩국수를 질리도록 사 먹는데 아쉽게도 팥칼국수를 먹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어째서인지 팥칼국수를 파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팥 한 봉지를 사다가 직접 쑤어서 먹기도 했는데 내 손으로 해먹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팥을 씻고 불린 후 삶아서 첫물은 버리고 다시 삶아서 팥알을 으깨는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국수 면은 사서 넣었으니 겨우 팥 국물만 만들었을 뿐인데도 힘이 들었다. 그 한 그릇을 만드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과 품이 드는지 알았다면 아예 시도를 하지 않았을 거다. 할머니는 이 고된 일을 어떻게 겨울 내내 그리 자주 하셨을까.


"닭은 꿩 대신이 될 수 없다"


내가 만들기는 싫고 가게에서 살 수도 없어 아쉬운 대로 죽집에서 팥죽을 사 먹어보았다. 하지만 팥칼국수와 팥죽은 베이스가 같은데도 불구하고 하늘과 땅처럼 전혀 다른 음식이었고 꿩은 꿩이고 닭은 닭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한 번은 가족들과의 모임에서 팥칼국수를 먹을 수 없는 서러움에 대해 얘기하던 중 나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오빠가 조용히 한마디를 보탰다.


"팥칼국수에는 설탕을 넣어야지."


맞다.

할머니는 팥칼국수를 그릇에 담고 나서 마지막으로 설탕을 듬뿍 뿌려 주셨다. 검붉은 팥 국물 위에 눈처럼 소복하게 뿌려진 설탕이 사르르 녹으며 사라지던 순간을 지켜보는 것도 참 좋았더랬다. 덕분에 팥칼국수는 마치 호빵의 팥소처럼 뜨겁고 진한 단맛이 났다. 내가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십중팔구는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국수에 설탕을 넣어 먹느냐고 소금을 넣어야 하지 않냐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몹시 억울하다. 팥칼국수는 모름지기 뜨겁고 달게 먹어야 백미인 것을 모르는 것은 둘째치고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우리 할머니의 팥칼국수를 괴식 취급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거기에 오빠는 식은 팥칼국수가 별미라는 말도 덧붙였는데 그러고 보니 두 살 많은 나의 오빠는 뜨끈하고 걸쭉한 국물이 찰랑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차갑게 식은 팥칼국수를 더 좋아했다. 식은 국수는 푸딩처럼 됐다가 나중엔 떡처럼 변하는데  오빠가 그것을  수시로 대접에 퍼다가 그 위에 설탕을 잔뜩 뿌려서 수저로 떠먹곤 했던 것이 기억난다.


공통분모가 전혀 없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우리 남매는 그날, 아마도 생전 처음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을 것이다.

팥칼국수에는 설탕을 넣어야 한다고.

그리고 말은 안 했지만 안다. 우리가 팥칼국수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임을.



올 겨울도 나는 팥칼국수를 떠올린다.


팥칼국수가 언젠가는 팥빙수처럼 인기가 많아지면 좋겠다.

그래서 팥칼국수를 파는 식당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 할머니처럼 설탕을 사랑하는 백종원 씨가 힘을 좀 써줬으면 좋겠다.



 겨울에는 팥칼국수를 실컷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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