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판다 Feb 06. 2021

잔반 처리반 며느리는 되기 싫지만 시어머니는 좋아서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후임인가?

밥 때문에, 그놈의 밥이 뭐라고.

시어머니의 밥상 차별로 복잡 미묘한 기분을 느껴야 했던 며느님들이 많은 모양이다.

옛날 생각이 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베스트 5' 순위에 당당히 한 자리 차지하고 계신 시어머니.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시어머니. 그렇지만 밥상 앞에서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평등하지 못하셨던 사랑하는 나의 시어머니.





우리는 이거 먹어 치우자


아버님과 남편에게는 갓 지은 따뜻한  밥을 주시고 나와 자신의 밥그릇에는 찬밥을 담으시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걸 먹어 치우자고.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차별대우에 서러워해야 하는 건찬밥을 처리하는 운명 공동체로서 어머니에게 동지 의식을 느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기분에 혼란스러웠다.

전자레인지에서 몸을 덥히고 나와 새 밥 인척 하는 얄미운 찬밥이  내 밥그릇에만  담겼다면. 아니, 평소 어머니가 나한테 그렇게 잘해주시지만 않았더라면. 


그래서 어머니를 이해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남자는 새로 지은 밥, 여자는 남은 찬밥을 먹는 게 당연한 시대를 살아오신 옛날 분이라 그런 거지 결코 내가 며느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렇지만 끝내 참을 수 없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먹어 치우자'는 말이었다. 어머니 세대가 다 그렇듯 우리 시어머니도 음식을 푸짐하게 하셨고 그릇에 넘치도록 담아내셨기 때문에 식사가 끝난 후에도 접시에는 늘 남은 음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나에게 먹어서 '치우자'고 하셨다.

그 말은 내가 잔반 처리기가 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집 온 며느리였던 나는 어머니가 어렵고 또 서운하시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것들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었다. 왜 아들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실까 생각하면서.


처음에는 남편에게 SOS를 보냈다. 내 구조요청을 받은 남편은 또 내게 남은 음식을 먹어 치우자 말하는  어머니에게 남은 건  버리든지 다음에 먹으라고, 왜 미련하게 억지로 먹냐고 툴툴거렸다. 어머니는 억지로 먹는 게 아니라시며 나에게 "그렇지? 쟤가 괜히 저래."  하셨고 나는 남편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어머니 저는 못먹겠어요


이 말을 입 밖에 꺼내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속으로 수없이 연습하고 밥을 먹는 동안에도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또 연습했다.  드디어 식사가 끝나고 들려 오는 목소리.  

"오늘아, 이거 얼른 먹어 치우자."

달달 떨었던가. 너무 긴장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던가. 어쨌든 나는 말했다. 못 먹겠다고. 배가 너무 부르다고. 어머니는 몇 번 더 권하시다 알겠다 하시며 혼자 그것들을 처리하셨다. 그 후로도 식사 때마다 같은 장면이 반복됐고 처음엔 어머니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하던 나는 나중엔 약간의 짜증을 섞어 거절하기 시작했다. 남편도 애한테 그만 좀 먹이라고 거들면서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먹어 치우자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나의 시어머니도 시어머니다. 어쩔 수 없이 며느리보다는 아들에게 더 팔이 굽으시는 시어머니.

"너는 이제 내 딸이다" 하셔 놓고 눈치 없이 진짜 딸처럼 구는 내게 '그래도 며느리는 며느리'라는 걸 한 번씩 일깨워주시던 시어머니.


그렇다면 어머니가 아들에게는 주지 않았던 찬밥과 잔반 처리 임무를 며느리인 나에게만 주었던 것은 차별이었을까. 어쩌면?  어머니의 진심은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나를  차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나를 자신과 동일시 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집안의 며느리이자 아내로서 나는 어머니의 뒤를 잇는 사람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하던 일을 내가 함께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남편과 나를 차별했다면 남편은 입에도 안대는, 식구들 그 누구도 먹지 않고 오직 나만 좋아하는 과일을 철마다 사다 냉장고에 채워 두실까. 볼 때마다 남편 몰래 만원이라도 내 손에 쥐어주려 애쓰실까. 남편에게 나를 잘 돌보라는 말을 숨 쉬듯 하실까. 몸 약한 며느리 또 아프지는 않은지 매번 안부를 물으실까. 부디 나처럼 고생하지 말고 너는 편하게  살라는 말을 기도처럼 하실까.






그깟 밥이 뭐라고.

어머니와 3년을 함께 살면서 나는 절대 어머니처럼은 안살거라고, 나를  소중히 여기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랬던 내가 어머니랑 똑같이 새밥은 남편에게 주고 나는 찬밥을 먹는다. 새로 만든 반찬은 남편에게 주고 어제 먹다 남은 반찬은 내가 먹는다.

내가 어머니를 닮아간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에는 팥칼국수를 먹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