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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다 Aug 21. 2021

얘들아 선생님도 학원에 오기 싫어

내 나이를 묻지 말아 다오

학원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아이들은 나이 감별사다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단연

"선생님은 몇 살이세요?"


장 하나 안 보태고  이 질문을 최소한 백번은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한 번도 선생님의 나이를 궁금해했던 적이 없는데 이런 게 세대차이인가.


어쨌든. 학생의 질문을 받았으면 답을 해주는 것이 선생의 도리 이건만 이 질문만큼은 선뜻 대답이 나오질 않는 것이.. 학원가에 젊은 선생님들이 많다 보니 서른여덟이라는 내 나이가 너무 많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고 아이들이 싫어하면 어쩌나, 나를 더 어렵게 느끼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학부모들은 연륜 있는 선생님을 원하는데 정작 아이들은 젊고 재미있는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래서 어린 학생들에게는 "글쎄 기억이 안 나네. 내가 몇 살이더라?" 하고 도망가거나 중고등학생들에게는 "네가 내 나이를 알아서 뭐할 거냐" 고 화를 내는  장난하면서 대답을 회피하곤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집요하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나이를 알아챈다.

내가 그동안 생각 없이 흘려왔던 정보들을 하나하나  조합해서 셜록홈즈처럼 추리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얼굴만 딱 보고서 선생님 몇 살이죠?! 라며 골든벨 정답을 울리는 아이들도 제법 된다.

헉. 귀신같은 것들.


와중에 더 많은 숫자를 부르면 그날은 좀 슬프다.




나름 동안이라 자부하고 살아온 지난날.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내 나이를 알아맞추는 건지 궁금함이 쌓여가던 어느 날이었다.


결혼정보업체의 직원이 자기가 만났던 고객들에 대해  남긴 말을 어디선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대 여성 고객들 중에 '가 남들한테 동안 소리를 듣는다. 내 나이로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 하는 분들이 여럿 계시는데 착각이라고. 그건 앞선 세대의 분들이 보기에 당신이 옛살 삼십 대보다 어려 보인다는 뜻이지 요즘 사람들은 딱 그 나이 그대로 본다고.



빙고!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내 얼굴도 90년대 삼십후반의 얼굴을 아는 옛날 사람들에게만 동안이지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그냥 삼십후반의 표준,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딱 그 자체였거다.

감의 맛이 나서 감의 맛이 난다 말했다는 장금이처럼 아이들도 내가 서른여덟처럼 생겨서 서른여덟이라 말했을 뿐인데 괜히 나 혼자 화들짝 놀라고 신기해했구나.





2020년이 2021년이 되고 또 2022년이 되고.

앞으로도 달력의 숫자는 계속 커지겠지만 학원은 피터팬의 네버랜드와 같다.

아이들이 자라서 수료 과정을 마치고 학원을 떠나면 새로운 어린아이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나이는 늘 고만고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 안에서 나는 후크 선장이다.
홀로 나이를 먹어 간다.



나이 듦을 내가 어찌 막을 수 있겠나.

그런 생각을 하면 걱정이 된다.


아이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내 앞에 와서 자기들 이성친구 자랑도 하고 엄마한테 혼난 얘기도 하고 지난 주말에 선생님은 무엇을 하면서 보냈는지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내 농담에 웃고 나를 놀리기도 하면서, 계속 나를 편하고 친근한 선생님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내가 더 잘해야지!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망가짐을 불사한다.

아이들의 깔깔 웃는 소리를 듣기 위해 장도연 박나래가 되어 본다.


얘들아 선생님이 잘할게.

라떼는 말이야도 안하고 천천히 늙도록 노력해볼게.

우리 계속 웃으면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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