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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다 Aug 25. 2021

얘들아 선생님도 학원에 오기 싫어

해야 할 숙제는 앞으로도 많아

"선생님, 저 방학 숙제로 책 다섯 권 읽어야 하는데 아직 한 권도 못 읽었어요."


앗. 학생의 고민 상담인가? 좋은 선생의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타이밍이다. 할 수 있다고 격려부터 해줘야지.


"괜찮아 괜찮아. 지금부터 부지런히 읽으면 돼. 너네 학교 개학이 언제랬지?"

"요일이요."

"아, 요일이구나. 그런데 오늘이 화요일 아니니?"

"네, 그러니까요."


어허 녀석 참..

선생님이 너 방학 시작한 날 뭐라 그랬어. 학교에서 내준 독서 숙제랑 독후감 숙제 있으면 가져와서 하라 그랬지? 그런데 이제 와서 뭐가 어쩌고 어째? 중학생이나 되는 놈이 이렇게 나태해서 앞으로 어쩌려고 그래 정말! 정신이 있어 없어?


라고 속으로는 잔소리가 방언처럼 터져 나오지만  그 소리들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게 간신히 막았다.

책의 글밥이 적다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포기하지 말자 싶어서 읽어야 할 책 목록을 지금 가지고 있는지 묻자 찍어둔 사진을 얼른 보여준다.

맙소사. 책들이 주제도 어렵고 너무 두껍다.


"너 이틀 동안 이걸 다 읽을 수 있겠어?"

"아니요ㅠㅠ"


어쩐다. 고민이 된다.

이 녀석의 책을 읽는 속도로는 지금부터 쉬지 않고 밤을 새워서 읽어도 다섯 권은 무리다. 그러면 하루에 한 권씩, 딱 두 권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읽어보자고 할까. 그게 선생이 해야 할 대답이겠지.


"○○야."

"네."

"너 그냥 숙제하지 마."

"... 네?"


아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잘못 들었나 싶은 건지 내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는 건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학생이 숙제를 당연히 해야지.

그런데 ○○야,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방학 숙제 한 번 안 하는 거 그렇게 큰 일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남은 이틀 그냥 푹 쉬다가 학교 가.

대신에 2학기에 공부 더 열심히 하면 돼 알았지?"


나를 빤히 보던 아이가 하, 하고 바람 빠진 소리를 내더니 피식 웃는다. 알았다던가 어떻게 그러냐던가 하는 대답은 않고 웃기만 한다.




집에 돌아와 이 얘길 들은 남편이 '그래도 선생이라는 사람이 학생한테 그렇게 말하면 되느냐, 학부모가 항의 전화라도 하면 어떡할 거냐, 이건 너가 잘못했다' 하며 걱정을 한다.

그래 학부모가 화가 날 수도 있겠다. 그럼 바짝 엎드려서 사과드려야지 별수 있나.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를 졸업해서 사회에 나가 직급이 올라갈수록.

또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부양할 가족이 늘어날수록 아이의 손에 떨어지는 숙제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그 숙제들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울 거고 하기 싫다고 내팽개치거나 미루고 미루다 얼렁뚱땅  몇 자 휘갈기는 식으로 대충 처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이가 앞으로 해야 할 그 많은 숙제들을 생각하면 그깟 방학 숙제 한 번 빼먹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일까. 지금이 아니면 이런 가볍고 귀여운 반항을 앞으로 또 언제 할 수 있냔 말이다.




나는 어른이 된 아이가 어느 날 사는 게 지친다 느껴질 때, 오늘의 일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숙제하지 말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는 게 작은 위로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응원과 위로를 보낸다.


가끔은 질거려도 괜찮아.

적당히 쉬엄쉬엄 해도 괜찮아.

모든 일에 있는 힘을 다 쏟아붓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정말 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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