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이 순간을 위해 저녁밥도 새 모이처럼 먹고 가벼운 위장으로 치느님을 영접한다. 나는 치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뭐든 같이 먹고 싶어 하는 남편을 위해 옆에 앉아 몇 조각 거들었다.
TV는 보는 둥 마는 둥 한참 치킨 삼매경이던 남편이갑자기 정신이 번쩍 나기라도 한 듯놀란 햄스터처럼 고개를 들고는 하나 남은 닭다리를 건네며 말했다.
여보, 여보도 닭다리 하나 먹어.
유감스럽게도 나는 닭다리를 싫어한다. 이 말에 열 명 중 열 명은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미끄덩한 식감과 기름진 맛이 싫다. 같은 이유로 닭날개도 싫다. 그보다는퍽퍽하고양념이 배지 않아 닭고기 본연의 맛이 나는 담백한 닭가슴살 쪽이 내 취향이다.그런데이런 내 입맛을 남편도 잘 알고 있으면서 또 또 또 닭다리를 먹으라며 내민다.
이 무슨 고약한 취미란 말인가.
"아니야 오빠가더 먹어."
"나는 벌써 먹었어. 이건 여보 하나 먹어."
"안 먹는다니까. 나 닭다리 싫어하는 거 알잖아."
그런데도 남편은 굴하지 않고 하나 먹어보라며 끈질기게 권하고이쯤 되면 나는 슬슬 짜증이 난다.
"싫어 싫다고. 내가 언제 닭다리 먹는 거 봤어?"
이제는 적반하장으로 남편도 나에게 짜증을 낸다.
"왜 짜증을 내? 좋은 거니까 먹으라는데?!"
안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걸 나에게 양보하는 남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껏 같이 치킨을 먹은 세월이 십 년이 넘는데 그 시간 동안 내가 남편에게 '나는 닭가슴살만 좋아한다. 닭다리는 정말 정말 싫어한다'는 말을 과연 몇 번이나 했을까.대충어림잡아도 600번이다.
무려 600번을 나는 닭다리가 싫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자기가 좋아한다는 이유로치킨을 먹을 때마다 꾸준히 닭다리를 내미는 것은 진정 사랑인가 아니면 이기(利己)인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놈의 닭다리 때문에 기분 좋게 시작한 치킨 타임이 서로의 얼굴을 양념만큼이나 벌겋게 붉히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남편은 나를 생각해서 하는 배려라지만 정작 그 배려의 주가 내가 아닌 남편이라는 것을 설명하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남편은처음 만났을 때부터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나를 너무너무 아껴주지만 그 방식의 기준이 자기인사람.내 마음이 불편한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나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지는 사람.
어쩌겠는가. 다소 자기중심적이지만 그것이 나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모르지 않으니 불편함을 감수하는 건 내 몫으로 두는 수밖에.
한편으로는 또 그런 생각도 한다. 몇 번쯤은적당히 받을 만도 하건만 끝끝내 닭다리를, 남편의 사랑을거부하고야 마는 나의 고집도 문제는 문제라고.
이기적인 사랑꾼과 고집불통은 이렇게 산다. 앞으로도 변하는 건 없을 것 같다. 닭다리를 사이에 둔 창과 방패 같은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