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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다 Sep 11. 2021

나는 닭다리가 싫다고, 얼마나 더 말해야 합니까

님아, 그 다리를 건네지 마오

금요일은 치킨데이다.

남편은  순간을 위해 저녁밥도 새 모이처럼 먹고 가벼운 위장으로 치느님을 영접한다. 나는 치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뭐든 같이 먹고 싶어 하는 남편을 위해 옆에 앉아 몇 조각 거들었다.

TV는 보는 둥 마는 둥 한참 치킨 삼매경이던 남편이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나기라도 한 듯 놀란 햄스터처럼 고개를 들고는 하나 남은 닭다리를 건네며 말했다.


여보, 여보도 닭다리 하나 먹어.


유감스럽게도 나는 닭다리를 싫어한다. 이 말에 열 명 중 열 명은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미끄덩한 식감과 기름진 맛이 싫다. 같은 이유로 날개도 싫다. 그보다는  퍽퍽하고 양념이 배지 않아 닭고기 본연의 맛이 나는 담백한 닭가슴살 쪽이 내 취향이다. 그런데 이런 내 입맛을 남편도 잘 알고 있으면서 또 또 또 닭다리를 먹으라며 내민다. 

이 무슨 고약한 취미란 말인가.


"아니야 오빠가 먹어."

"나는 벌써 먹었어. 이건 여보 하나 먹어."

"안 먹는다니까. 나 닭다리 싫어하는 거 알잖아."

그런데도 남편은 굴하지 않고 하나 먹어보라며 끈질기게 권하고 이쯤 되면 나는 슬슬 짜증이 난다.

"싫어 싫다고. 내가 언제 닭다리 먹는 거 봤어?"

이제는 적반하장으로 남편도 나에게 짜증을 낸다.

"왜 짜증을 내? 좋은 거니까 먹으라는데?!"


안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걸 나에게 양보하는 남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껏 같이 치킨을 먹은 세월이 십 년이 넘는데  그 시간 동안 내가 남편에게 '나는 닭가슴살만 좋아한다. 닭다리는 정말 정말 싫어한다'는 말을 과연 몇 번이나 했을까. 대충 어림잡아도 600번이다.


무려 600번을 나는 닭다리가 싫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자기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치킨을 먹을  때마다  꾸준히 다리를  내미는 것은 진정 사랑인가 아니면 이기 (利己) 인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놈의 닭다리 때문에 기분 좋게 시작한 치킨 타임이 서로의 얼굴을 양념만큼이나 벌겋게 붉히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남편은 나를 생각해서 하는 배려라지만 정작 그 배려의 주가 내가 아닌 남편이라는 것을 설명하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나를 너무너무 아껴주지만 그 방식의 기준이 자기인 사람.  마음이 불편한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나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지는 사람.

어쩌겠는가. 다소 자기중심적이지만 그것이 나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모르지 않으니 불편함을 감수하는 건 내 몫으로 두는 수밖에.

한편으로는 또 그런 생각도 한다. 몇 번쯤은  적당히 받을 만도 하건만 끝끝내 닭다리를, 남편의 사랑을 거부하고야 마는 나의 고집도 문제는 문제라고.


이기적인 사랑꾼과 고집불통은 이렇게 산다. 앞으로도 변하는 건 없을 것 같다. 닭다리를 사이에 둔 창과 방패 같은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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