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에는 온기가 있다

by 조민규

우리에게 인내란 무엇일까?


코미디 쇼에 나오는 한 캐릭터는 가슴속에 늘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품 속에 있는 그 사직서를 꺼내고 싶지만, 현실적인 생활비의 부담으로 자신의 마음을 꾹 삼킨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정문에는 ‘백 년을 딛고 천년을 날아라 ‘라는 문구가 적힌 입석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학업에 지쳐가는 학생들은 매일 등교를 하며 그 문구를 스쳐 지나간다. 생각해 보면, 남녀노소, 직업, 연령에 관계없이 우리 사회에는 저마다의 ‘인내’가 있다. 그리고 저마다의 인내에는 저마다의 이유도 있다.


우리는 왜 인내하는 것일까? 삶에서 인내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인내하고 있는 걸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단번에 요약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인내가 필수적인 것이라면, 한 번쯤 이 주제를 고려해 보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을까.


patience의 어원


(라틴어). (구 프랑스어) (영어)

‘pati’—> ‘patient’—> ‘patientia’—> pacience—> ‘patience‘


pati : (고통을) 겪다, 참아내다

patientia : 시련, 인내

pacience : (차분히) 견디어내다, 허용하다


‘patience’에는 인간의 품위가 담겨있다 上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인내를 뜻하는 ‘patience’와 환자를 뜻하는 ‘patient’는 비슷한 성격의 의미를 공유하고 있다. 환자에게는 병마라는 고통이 따르고 고통에는 인내라는 진통제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두 단어는 서로 같은 어원을 공유하고 있으며 나아가 인내를 뜻하는 ‘patientia’ 또한 ‘시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사실들은 인간에게 오래전부터 고통과 시련들이 존재해 왔고 그럴 때마다 인내가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느 한 시점, 정확히 (구) 프랑스어의 영향을 받는 시점에서 의미에 작은 변화가 생기게 된다. ‘인내’라는 딱딱한 단어에 ‘차분한’이라는 형용사가 살며시 붙여진 것이다. 큰 변화는 결코 아니었다. 의미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 작은 변화에서 우리는 단어의 의미가 아닌 그 단어를 바라보는 옛사람들의 변화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patience’에는 인간의 품위가 담겨있다. 下


작은 수술로 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한 적이 있다. 퇴원 전 날, 몸에 달려있는 배액관을 빼는 간단한 시술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아플 거예요’라는 무뚝뚝한 예고와 함께 핀셋으로 몸에 박혀있는 배액관을 잡고 지그시 눌렀다. 아플 것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예상 밖의 고통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침구의 난간을 잡고 다리와 허리를 들며 고통을 온몸으로 뿌리치려 했다. 그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그 모습이 안쓰러운지 눈을 돌리셨다. 고통에 일그러진 자식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셨던 거다. 이러한 나의 작은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 고통은 외부로 표현될수록 우리의 정돈된 모습들을 하나둘씩 풀어헤치고 어지럽힌다. 그렇다면, 다큐에서 보게 되는 말기암 환자들, 경련을 일으키는 응급환자들은 몇 개의 모습들을 잃어 왔을까. 감내해야 할 고통이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약탈자’가 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작자는 ‘인내’ 앞에 붙은 ‘차분함’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궁극적으로 고통이 우리에게서 앗아가는 것은 신체적 건강 뿐만이 아닌 우리가 오래도록 유지해 왔던 인간적 ‘품위’이다. 그러므로 ‘차분히 인내한다는 것’은 고통을 허용하되 그 고통에게 개인의품위와 존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내의 어원에는 고통이나 시련을 받아들인다는 ‘의연함’과 그 속에서 품위를 잃지 않겠다는 인간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금품이나 재산을 약탈당하고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수 있을까? 그와 같이, 고통이나 시련을 차분하고 의연하게 견뎌낼 수 있는 사람도 몇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옛사람들이 인내에 담은 ‘차분함’이란 뜻에는 그러기를 바라는 그들의 희망이 담겨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만약 그렇다면, 나도 그들의 희망을 빌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서도 늘 차분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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