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올해 목표로 1년간 꾸준한 글쓰기를 목표로 달려온 여정이 벌써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달리기였다면 목적지를 찍은 셈이다. 이제 남은 여정은 6개월. 돌아가는 길 뿐이다. 나를 돌아보고 웅이를 생각하며 그리고 우리의 관계들을 되짚어보며 쓴 글들이 벌써 반년치 만큼 쌓였다니 감사할 일이고 앞으로 남은 6개월을 다 채웠을 때의 1년 치의 나와 웅이에 관한 나의 생각의 기록들이 남아있을 것을 생각하면 이 또한 설렐 일이다. 한 주도 쉬지 않고 꾸준히 여기까지 와준 나에게 작은 칭찬의 말소리를 속삭이며 오늘을 글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일본 작가의 두껍지 않은 에세이집을 막 다 읽고서 어젯밤부터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 한참 동안 유명한 베스트셀러였던 책인데 이제야 집어 들게 되었다. 내가 책을 선정하는 절차는 온라인 도서 어플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 맘이 끌리는 대로 ‘이것도 읽어 봐야지’, ‘이것도 재밌겠군’, 하며 맘에 드는 책에 즐겨찾기를 표시해 뒀다가 읽던 한 권이 끝나면 저장해 뒀던 책들을 뒤적이며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뭔가에 끌렸는지 몰라도 갑자기 머릿속에서 ‘펑’ 하고 뇌 한구석에 박혀 있던 희미했던 책 제목이 그냥 떠올랐다. 책 읽기 너무 늦은 시간은 아닌지 시계를 살펴보고 웅이도 한번 살펴본다.
소파에 고양이처럼 널브러져 디자인에 집중하고 있는 웅이가 보인다. 빨래를 소파에 널어놓은 것 마냥 같은 자세로 앉은 것도 누운 것도 아닌 자세로 소파에 늘어져 있는 모습이다. 불편하게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특히 웅이 본인에게는) 굉장히 편해 보이는 자세라서 볼 때마다 신비스럽다. 나는 따라 하려야 따라 할 수 없는 그 자세로 웅이는 소파에 자리 잡고 한 동안 디자인에 집중을 아주 잘한다. 그리고 그런 웅이의 모습이 아직도 나는 익숙하지 않아 귀엽게 바라본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시간은 밤 11시. 새벽이 오기 한 밤중의 이 고요함이 더없이 좋고 온전히 책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어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첫 페이지를 넘겨본다.
나는 책을 고를 때 목차 페이지를 항상 먼저 유심히 살핀다. 책의 목차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었다.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
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다수의 추천의 글이 쓰여있다. 책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 부분을 읽지 않고 넘기지만 이번에는 정성스러울만치 꼼꼼하게 글자들을 훑어본다.
의사들은 정도의 경중이 있을 뿐 언제나 일정 부분 남의 삶과 죽음에 관여한다. 이 글도 다른 의사들이 통상적으로 쓴 글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기록이지만 이토록 깊고 아픈 의사의 글은 본 적이 없다. 의학은 기본적으로 철저한 과학이다. 자신만의 비방이나 수술적 경험을 함부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걸고 적용하지 못한다. 기초과학의 교과서적인 원칙에 근거하여, 이중맹점연구를 바탕으로 한 수많은 임상증례가 정확히 수식화되어 통계학적인 의의를 가져야 그 치료법은 합류할 수 있다. 이렇게 고도로 정제된 자연과학의 일부인 의학은 매우 특징적으로 인문학적인 특성을 가진다. 임상의학에서의 환자 치료는 과학이라는 학문적 영역과 인간관계를 핵으로 돌아가는 철학의 본질에 접근한다. 본 저자와 같이 완전한 인문학적인 토양에서 학문적 토대를 이루고 난 후에 응용과학의 제일 첨병에 서 있는 임상의학, 그것도 외과계 의학을 전공하는 이러한 의사들을 만들어 보고자 한국에서는 의과대학을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로 전환해 보았으나 그 정책의 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며 “의료계에서의 합병증”만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대부분의 의과대학들이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를 포기하고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본 책을 저자를 정말 만나고 싶다. 같은 동료 외과계 의사이지 생각의 바닥조차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성숙된 정신세계를 가진 이 사람과 같이 수술을 하면서 얼마나 수술을 잘하는지 보고도 싶고 저녁 늦게 당직실에서 매운 겨자가 듬뿍 뿌려진 샌드위치를 먹으며 세상 얘기를 하고 싶다. 그러기에 너무 늦은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정말 멋있는 신경외과 의사다.
‘숨결이 바람 될 때’ 中 추천의 글 이국종(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외과교수)
책을 읽기 전 내가 앞으로 한 장 한 장 넘겨진 글자들을 쓴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를 그 무엇보다 굵고 깊게 안내해 주는 추천사였다. 영화의 결말을 알고서 영화를 보기 시작하는 것 마냥 책의 저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서 책을 읽으려니 마음 한편이 허하게 뭔가 벌써부터 가슴이 뭉클해진다.
추천사를 마치고 본문으로 들어가 책을 읽기 시작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게 집중을 했나 보다. 웅이가 한 번은 ‘뭐해요?’라고 여전히 소파에 널브러진 채 내게 질문을 건네온다. 나는 짧게 ‘책 봐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서 웅이는 아무 말이 없고 나도 아무 말이 없이 우리는 다시 각자 해오던 일에 마저 집중한다. 웅이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책을 읽는다.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하고 우리들이 일궈낸 이 안정감을 주는 공간에 웅이와 나만 존재하지만 이것만으로 아주 충만하다.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내 손에 쥐어진 책에서 느껴지는 슬픔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둘의 숨결은 안정적이고 이곳은 평화롭다.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웅이는 어느새 내 곁의 침대로 잠을 자러 왔다. ‘이제 자요’라는 웅이의 말에 나는 책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나는 좀 더 책 보다 잘게요. 먼저 자요’라는 말을 건넨다. 그리고서 나는 다시 책에 집중을 한다. ‘잘 자요’라는 말을 건네려 옆의 웅이를 다시 돌아보니 이미 꿈나라에 가있는 듯싶다.
소파에서는 널다만 빨랫감처럼 잘도 늘어져 있는 웅이는 잠 잘 때도 역시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는다. 오늘은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처럼 역동적인 자세로 자려나보다. 침대로 온 지 십 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잠이 든 웅이의 새끈 새끈 규칙적인 숨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숨소리가 파도처럼 내 귓가로 휙 들어왔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다시 같은 속도와 고요함을 안고 귓가로 들어온다. 웅이의 숨결이 이렇게 내 곁에서 가까이 그리고 안정적으로 울린다는 사실에 오늘도 감사하며 행복감에 잠깐 젖어본다.
우리들이 함께 나누는 하루하루의 숨결들이 어느샌가 바람이 될 때까지 이러한 순간들이 많이 피어나기를. 화려하지 않고 아무도 몰라주지만 나는 알고 웅이도 알고 있는 우리들만의 시간. 가장 단순하지만 무엇보다 가득 차 있는 시간. 저물기 전 가장 붉게 빛나는 노을 같이 따뜻하고 아늑한 시간들이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웅이와 나의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기를.
그리고 이런 날들이 주어지는 게 당연하다 여기지 않기를 맘속 깊이 새기며- 다시 눈가를 책 속으로 옮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