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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집사 Jun 17. 2024

Ep21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돌아가고 싶은 사람

진짜 좋은 배우자에 관해



진짜 좋은 배우자의 1번은 ‘같이 있을 때 편안한 사람’이에요. 어떤 상황이 와도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 그게 제일 좋은 겁니다. 혹시 ‘안전기지’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그 사람의 얼굴만 봐도 긴장이 풀릴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중받는다는 감정을 느낄 때 우린 ‘아 이제 집에 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요. ‘내가 나여도 괜찮다.’는 안정감을 주는 거죠. 요즘 시대에는 이 느낌이 참 중요해요. 많은 돈과 성공, 좋은 집과 차. 그런 거창한 것들로 우리가 사고 싶었던 것이 결국 ‘내 편’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좋은 집을 가진 사람도 물론 좋지만, 그보다 편안한 집이 되어 줄 사람을 1번으로 만나세요. 힘든 날이면 다음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돌아가고 싶은 사람을요.


by 오은영 박사




요가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평범할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하루였다. 마무리를 하려고 들어간 센터에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왠지 그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도 가끔씩 수다 떨던 헬스장의 회원 아주머님과 기분 좋게 수다 중이었다. 그 짧은 찰나에 속으로 이 남자가 바로 웅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이 남자, 여기와 본 적 있나?' , '아니 이 회원님과 아는 사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우리는 처음 본 사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눈인사를 가볍게 했다. 내가 마무리 정리를 하고 센터 직원과 인사를 하고 함께 헬스장을 빠져나오기 전까지 웅이는 나를 개의치 않고, 헬스장의 그 vip 고객 아주머님과 계속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저 아주머님과 아는 사이예요?”

센터를 함께 걸어 나오며 건넨 나의 질문에 웅이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농도로 툭 내뱉는다.


“아니요, 오늘 처음 봤어요.”


밥집도 카페도 아닌 내가 근무하는 곳에 찾아와 처음 보는 헬스장의 vip 고객 아주머니와 잘도 수다를 떨도 있던- 마치 나를 보러 와서 내가 일 마치기를 기다렸다기보다는 동네 아줌마와 수다 떨러 마실 나온 사람 마냥 낯선 공간에 잘도 녹아있던 남자.




전화 통화 너머 목소리만 바람처럼 존재하던 웅이를 나는 이렇게 처음으로 실체 세상에서 마주했다. 오래도록 간직했지만 잠시 잊어버리고 살았던 퍼즐 조각을 다시 찾은 것 마냥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던 그날의 온도.


가을이었고 해가 다 저물어 하늘은 까맸지만 도시의 불빛들은 여전히 활기 넘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실체 마주한 웅이와 함께 걸었던 그날의 공기는 설렘, 긴장 그리고 왠지 모를 편안함과 함께 뒤엉켜 기분 좋게 내 맘 속을 간지럼 펴 주고 있었다.


세월은 감쪽 같이 흘러 벌써 5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첫 만남의 웅이는 지금까지도 한결같은 모습이다. 같은 또래의 친구들을 마주할 때도, 나이 차이가 좀 난다 하는 형들과도 그리고 한참 인생 대 선배이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도 소꿉친구들과 수다 떨듯이 대화를 잘도 나눈다.


얼마 전에도 한국에서 걸려온 친할머니님과 주거니 받거니 꽤 오랜 시간 동안 통화를 나누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는가 한편 일 관련해 전화가 온 아는 형과의 통화에서는 잘 듣고 있다가 별안간 '그건 형이 알아서 알아보셔야죠.'라는 말을 툭 내뱉곤 한다. 그 형님이란 사람은 업계에서 인지도가 꽤 있고 사회적으로 '잘 난' 사람인지라 주변 후배들이 우러러보기도 하고 다가가기 편한 분은 아니다. 그런데도 웅이의 의사표현은 거침없이 명확해서 듣고 있던 그 형님이란 분도 헛웃음을 짓고 말아 버리는 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서는 문제였던 문제의 농도는 한풀 기세가 꺾이고 대화의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편안해진다.



웅이가 지닌 새로운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감각과 나이 불문 한결 같이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은 낯선 것들에 대한 흡수가 느린 나와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이제는 '능력'이라 칭송하고 싶을 정도이다. 나는 그리고 웅이의 주변 사람들은 왜 웅이를 좋아라 할까? 그리고 할머님은 나이도 한참 어리고 인생 경험도 덜한 웅이에게 왜 전화를 걸어 본인의 인생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실까?  


나는 가만히 앉아 곰곰이 곱씹어본다. 그리고서는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 웃길 정도로 거침없는 웅이의 솔직함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솔직하다는 것은 때에 따라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SNS에서 보이는 것들이 꽤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솔직함은 한 사람의 진실됨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데 웅이는 그것을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한 번도 잃지 않고 잘 장착하며 살아오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브런치 글 'Ep 05 인생의 배터리가 떨어져 갈 때'에서 쓴 글이 생각한다.



인생의 바닥 끝을 봤다고 생각했을 때, 힘겨움이 주체가 되지 않는 순간이 왔을 때 내 곁에 조용히 서서 정직하고 슬픈 눈으로 나를 곧이 바라보고 있을 웅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것이다. 사실 그는 그렇게 침착하지도 반듯하지도 않은 고양이 같은 남자지만 내가 힘들 땐 옆에 있어줄 거라는 확신이 있다. 대단한 위로를 해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존재는 내게 힘이 될 것이다.


브런치 글 'Ep 05 인생의 배터리가 떨어져 갈 때'



인생의 정말 힘든 시기가 닥쳤을 때 대단한 위로가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웅이의 존재는 내게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알 수 없는 근거 없는 나의 자신감. 그 당시에는 이러한 감정에 대해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없었지만 오은영 박사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이제는 정의 내려볼 수 있겠다. 웅이는 내가 힘든 날이면 다음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돌아가고 싶은 사람' 이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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