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dy- Deep End
책 속의 야심 넘치고 앞날이 아주 기대되는 신경외과 의사인 폴이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육체적으로 점점 쇠약해져 간다. 기존에 그렸던 미래는 실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마주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는 죽음의 그림자가 와닿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답게 행동했다. 몸은 따라주지 않을지 언정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들을 아내와 가족들과 해내간다.
암을 선고받고,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실치 않은 상태인 주인공 폴과 아내는 그들이 예전부터 바라왔던 ‘아기’를 가질 것인지에 고민하고 대화를 나눈다.
어느 날 밤, 옆에 누워 있던 루시가 물었다.
“여보, 가장 무섭거나 슬픈 일이 뭐야?”
“당신 하고 헤어지는 거.”
나는 아기가 생기면 우리 가족에게 큰 기쁨이 되리라는 걸 알았다. 게다가 내가 죽은 뒤 루시에게 남편도 아기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최종적인 결정은 루시가 내려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그녀 혼자 아기를 키워야 할 텐데, 내 병이 악화되면 나까지 돌보느라 더 힘들 것이었다.
“아기가 생기면 우리가 제대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루시가 물었다.
아기와 헤어져야 한다면 죽음이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
“그렇다 해도 아기는 멋진 선물 아니겠어?” 내가 말했다. 루시와 나는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 느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中
위의 구절을 여러 번 읽어 보았다. 서로를 향한 애정과 배려가 얼마나 깊은지 레몬즙을 짜놓은 것 마냥 싱싱하고 새콤하다. 그렇지만 내용을 곱씹다 보면 끝맛이 씁쓸하다 못해 애절해져 차마 삼키질 못하고 눈물이 흘러 나온다. ‘아기’를 가지는 축복 같고 신성한 일과 대조되게 이미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폴은 ‘아기를 가지는 것’에 본인 없이 아내가 아기를 혼자 키워가야 할 미래를 그려본다. 본인이 더 아파졌을 경우 자신의 몸과 포함해 아기까지 돌보게 될지 모를 아내의 상황을 생각한다. 그렇기에 결정을 넘기는 게 아니라 결정은 아내가 하는 게 옳다고 고집을 부린다. 반면 폴의 아내는 아기로 인해 얼마 남지도 않을 남편의 시간을 걱정한다. 아기를 보고 나서 죽음이 더 고통스러워질까 봐 우려한다. 이 대화에서는 본인만을 생각한 각자의 이기적인 미래는 없다. 대신 상대방을 생각하는 미래- 어떻게 하면 더 상대방이 덜 힘들 수 있고 그나마 더 좋은 상황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심들만이 묻어 나온다.
‘부부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요?’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세상의 얼마나 많은 부부관계가 이와 같이 죽음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이 닥쳤을 때 서로 다투지 않고 슬픔에만 빠져있지 않고 폴 부부와 같은 대화를 침착하게 나눌 수 있을까 싶다. 인생의 가장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대화를 부부가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은 존경심이 들었다.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고, 태어남과 동시에 인생에서 100% 확실하게 그리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보장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사고나 병으로 혹은 노화에 따른 자연사로 죽음이 도래할지 장담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살지만 결국엔 누구에게라도 죽음은 닥친다는 것만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웅이에게 예전에 던진 ‘내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아?’ 란 질문은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경우이지만 반대로 상대방이 이 세상에서 먼저 사라진다면? 인생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상황이 왔을 때 나는 그 상황을 어떻게 마주하고 대처해 갈 것인가. 슬픔과 비극이란 구덩이에 빠지는 길 대신 좀 더 성숙하게 대처해 볼 수 있을까.
[숨결이 바람 될 때] 책은 그 바람직한 대처법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남편이 숨을 거두기 몇 주 전, 함께 침대에 누워서 내가 그에게 물었다. “이렇게 내가 당신 가슴에 머리를 대고 있어도 숨 쉴 수 있어?”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이게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폴과 내가 서로의 삶에 깊은 의미가 될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中 by 폴의 아내
P.S. 책을 읽고 난 후 며칠이 지나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들어 웅이에게 물어본다.
나: 웅아, 웅이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야?
나름 진지한 척 고민을 하던 웅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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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 움… 웅집사(나) 화났을 때? 아니면 게임하다 들켰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