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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집사 Jul 16. 2024

Ep 25 무엇이 장기적인 관계를 만들까?

우리 커플을 보고 있노라면 웅이를 바라보는 내 ‘눈에서 하트가 보인다’라는 표현을 종종 듣는다. 이게 처음 한 번, 두 번 들을 때는 그러려니 넘겼는데 점점 듣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정말 이렇게 내 표정에서 다 드러난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



웅이라는 사람과 맺어진 우리들의 인연과 우리들이 함께 겪어온 과거,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이 사람과 수십 년을 함께 할 거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사실 잘 실감이 나질 않는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운동하다 말고 잠시 한숨 돌릴 때, 아무 생각 없이 카페에 혼자 앉아 아직 따뜻하고 풍성한 우유 거품이 채 가라앉지 않은 마차라테를 양손에 움켜쥐고 멍 때릴 때-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나에 대해 그리고 내가 현재 있는 위치에 대해. 물론 나에 대해 생각하면 저절로 따라오는 생각의 연장선에는 항상 웅이가 있다. 웅이와의 관계는 앞으로도 순항으로 잘 흘러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어째서 웅이였을까? 과거의 썸남들과 지나간 전 남자 친구들은 아니고 왜 하필 웅이였을까? 나와 웅이의 가족, 친구들이 알고 있는 웅이만의 매력이나 인품이 있겠지만 그것들을 구구절절 나열하는 건 웅이의 자랑만 늘어놓는 겪이니 생략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 본다. '무엇이 웅이와 장기적인 관계를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어느 순간 MBTI라는 게 한국 사회에서 유행이 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처음 만날 때 통성명처럼 서로 상대방의 MBTI를 묻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는 사회가 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MBTI와 관련한 다양한 심리 테스트와 성격에 따른 특징들을 재밌게 표현한 다양한 자료들이 쏟아진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MBTI는 재밌는 성격유형 검사라고 생각하고 나 역시 테스트를 해봤지만 맹신론자는 아니다. 사람의 성격을 16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 한계가 있을뿐더러, 예를 들어 내가 T라고 말하는 순간 나에게는 T 유형이 지닌 모든 특성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 마냥 프레임이 씌워진다. 정작 나는 F의 특성이 혼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소설가 김용하 씨도 유퀴즈에 나와 그런 말을 했다. MBTI는 본인 스스로가 생각하는 본인을 테스트하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E (외향적)와 I (내향적)를 구분하는 재밌는 표현이 있어 얘기하자면, '바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갈 때 사람들을 만나기 전보다 에너지가 더 생겼다면 E, 반대로 에너지가 소모되어 집에 들어간다면 I.'라는 분류이다.



나는 가끔씩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갈 때 기분 좋은 뿌듯함과 동시에 피곤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럴 때 나는 에너지가 소모되었다고 느낀다. 왜일까? , 왜 만남은 즐겁지만 그럼에도 피곤함을 느끼고 지쳤을까? 하는 의문점이 드는 데 이것에 대한 정답을 나름 머리를 굴려 생각해 보면, 단연 체력이 약하다는 게 첫 번째 수면 위로 올라오는 이유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어딘가 모르게 이 만남에서 기가 빨리거나 불편함을 심리적, 육체적으로 느낀 부분이 있었나 하는 의문을 두 번째 이유로 꼽아본다.


그 어떤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나는 웅이와 함께 있을 때만큼의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런 편안함 덕에 우리의 관계가 장기간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깊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웅이와는 단순히 몇 시간이 아닌 몇 년째 장기간으로 함께하고 있는데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다는 건 결국 ‘체력이 약해서’ 란 이유는 단순 방어막 같은 핑계일 수도 있겠다. 인간관계의 만남이 피곤하고 지친다고 느끼는 이유를 ‘체력이 약해서’라는 이유를 가져다 붙이기에는 웅이와 함께한 시간에 대조해 봤을 때 이미 내 체력은 0 (zero)가 아닌 - (minus) 상태여야 할 테니 말이다.


여기서 내가 느끼는 편안함이란 단순히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편안하다는 것은 돌려 말해 불편하지 않다는 것인데, 웅이는 나를 불편하지 않게 해 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 나름대로 자유롭게 자기 방식대로 내 옆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행동들이 나를 전혀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물론 그 행동들 속에는 최소한 나를 배려하고 생각하는 행동들도 섞여 들어가 있겠지만 그것은 힘줘서 돌을 굴려야 하는 억지스러운 행동이 아닌 본인의 자유의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물과 같은 자연스러운 흐름들이다. 그래서 그 편안함 덕에 나는 웅이 앞에서 100% 정말로 나다울 수 있다.


사실 동거를 하는 커플과 함께 사는 부부관계는 오랜 시간 함께 붙어지내 보며 서로에게 상대가 편한 사람인지를 알아갈 기회가 있지만 친구나 타인은 그렇지 않다. 단순 몇 시간의 카페 수다, 몇 번의 밥 한 끼의 시간으로서는 이 사람과 내가 오랜 시간 있어도 서로에게 편한 사람인지를 알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피곤함은 정말 체력이 근본적인 이유인지, 아니면 그 이면에 존재하는 더 깊은 다른 이유인지에 대한 것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지내왔다.


그런데  얼마 전 멀리 한국에서 미국까지 보러 와준 친구와 일주일 가량을 함께 있어보면서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만남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단순히 체력이 부족해 피곤해지는 건지 아니면 내 몸과 정신이 편안하지 않아서 피곤해지는 건지 나름 디테일하게 느껴볼 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웅이와 가족이 아닌 친구와 일주일 이상 계속 붙어 지내며 눈뜨고 하루 일과를 보내는 것을 해봤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일정을 잘 무사히 소화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를 까마득히 잊을 만큼 친구와의 일주일은 무탈하게, 나아가 소중한 추억들을 새겨주고 지나갔다.


우리 부부보다 부지런한 친구 Y는 우리와 함께 지내는 동안 내내 우리보다 일찍 일어났지만 항상 노트북을 가지고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혼자서 운동을 다녀오기도 하고 아침도 배고프면 알아서 챙겨 먹기도 했으며, 먹지 않은 날은 자연스럽게 함께 먹기도 했다. 웅이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집은 그녀에게는 낯선 환경이었겠지만  그 모습이 어색하기는커녕 너무도 잘 녹아있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느껴진 날도  있었다. 예정에 없던 웅이 친구들의 방문에도 불편해하는 내색 없이 넘어가주었고 졸리면 알아서 씻고 먼저 잠자리에 들던 날도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어색함이 없는 나날들이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똑 부러지게 말해주었고, 먹고 싶었던 것도 야무지게 알아서 고르고 (물론 아주 다양한 옵션 지를 미리 알아보고 온 덕에), 스케줄 일정도 알차게 짜와서 나와 웅이도 아직 구경 못해본 장소들도 함께 둘러볼 수 있었다.


연인이나 가족이 아닌 친구와 일주일 가량을 하루 종일 붙어 지내는 건 인생에서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경험일뿐더러 이 모든 과정들이 서로에게 소소한 서운함과 과한 부담감 없이 잘 흘러갔다는 것에 (물론 나의 기준에서- 그녀에게도 같은 경험이었길 바라지만) 감사함을 넘어 놀랍기까지 할 지경이다.



친구 Y는 무사히 미국 여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공항에 갔고, 그날 밤 웅이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내게 물었다.


“어땠어? 이렇게 친구랑 일주일 정도 함께 지내보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웅아, 내가 사람들 만나고 오면 가끔씩 피곤하다고 했잖아. 그런데 신기하게 Y한테서는 그런 걸 못 느꼈어. 뭔가 오히려 웅이랑 비슷함이 있더라고. 그녀는 분명 그녀다움이 있고 그것을 우리를 의식해서 바꾸려 하는 억지스러움이 없어. 그래서 나 역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더욱 나답게 행동할 수 있었고. Y의 이런 점들이 웅이랑 정말 비슷한 거 같아. 그래서 오랜 시간 같이 있어도 편했고. 족욕을 야무지게 했으니 발은 안 씻어도 된다는 말은 아직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하지만 말이야, ”


이번 친구의 방문으로 연인이든 친구든 정신적, 육체적 체력을 소모하는 만남은 단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어느 정도 정리를 내려볼 수 있었다. 장기적인 관계는 분명 개개인의 자기다움 (솔직함, 진실성)에서 묻어 나오고 그 안에 상대방을 향한 따뜻한 배려가 살짝궁 뒷받침되어 준다면야 금상첨화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인간관계의 피곤함은 단순 체력 때문이 아니라는 인생 깨달음을 느끼게 해 준 웅이와 소중한 친구 Y에게 다시한번 깊은 애정을 담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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