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05_하루에 한번 일기쓰기

우울할 땐, 정제탄수화물

by 꼬당

간혹, 우울과 불안이 평소보다 훨씬 크게 밀려올 때가 있다. 나는 원래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그 ‘간혹’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질 때가 있다.

그럴 땐 고민하지 않고 정제 탄수화물을 먹어 우울을 잠재운다.


누가 보면 스트레스성 폭식 같겠지만 나는 배달음식을 되도록 멀리하는 편이다. 평소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시켜먹는다.

오늘이 그 ‘한 번’이었을 뿐이다.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은 이후, 내 일상은 무너졌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고 기상 시간이 늦어지니 식사 루틴도 함께 망가졌다. 배는 고픈데 밥을 차릴 힘은 없고 결국 자극적인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배를 채우고 나면 또 앉아서 유튜브를 보거나 일을 하다가 나의 하루는 새벽 5~6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초반엔 정말 나 자신과 내 주변 환경을 다 내려놓은 상태였다. 일이 바빠서, 차려먹을 시간이 없어서, 설거지를 안해서 등등 다양한 합리화 속에 배달음식 주문은 멈추지 않았다. 플라스틱 재활용 비닐에는 배달 용기들이 빠르게 쌓여갔고 높은 칼로리에 비해 움직임은 없으니 살도 꾸준히 늘어갔다.


회사에 다닐 땐 ‘6시 이후 금식’이라는 나만의 규칙이 있었다. 간헐적 단식도 오랫동안 지켜왔다.하지만 배달음식은 그 모든 규칙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밤 11시에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시켜 먹고 소화시킨다고 새벽까지 깨어 있고… 악순환이었다.


그렇게 뒤틀린 하루를 두 달쯤 반복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



그 후, 조금씩 나를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배달음식은 주 1회 이하로 줄였고 기상 시간은 무조건 오전 8시~9시, 식사는 4시간 간격으로 하루 3번.

식사 루틴은 아직 들쑥날쑥하지만 기상과 음식 조절은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배달음식 횟수를 줄이자 더 큰 우울과 불안이 몰려왔다. 그리고 입이 심심했다.

2달 동안 매일같이 자극적인 탄수화물에 의존하던 몸이 이제는 주 1회, 혹은 달에 한두 번 정도만 자극을 받게 되자 금단 증상처럼 감정이 휘청거렸다.


그래도 엉망이 된 나를 바로잡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와 미지근한 물을 하루 종일 마셨다. 입이 심심하면 물을 마시고 우울하면 커피를 마셨다. 화장실도 정말 많이 갔다. 물과 아메리카노, 이뇨작용의 끝판왕. 정말 참다 참다 도저히 우울함을 감당하지 못하겠을 때.


그제서야, 일주일 만에 배달앱을 켠다.


아직 식사 루틴은 여전히 들쑥날쑥하지만 이제는 ‘나 자신’으로서의 기준이 어느 정도 세워진 것 같다.

내가 나로서,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내야 하니까. 호르몬의 노예로 살 순 없잖아. (이건 우스갯소리지만, 꽤 진심이기도 하다.) 식사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것도, 밥을 먹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그 뒤에 설거지를 하는 것도… 사실 다 귀찮고, 미루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를 챙기고 보살펴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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