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화조 ]
얼마전까지만해도 때아닌 폭설로 산과 들, 그리고 고속도로 위에 엄청 많은 양의 눈이 하얗게 뒤덥혔었는데 불과 한달도 지나지 않은 지금은 한낮의 정오가 지나면 오히려 에어컨을틀지 않으면 더워서 몆시간씩 운전하는 나로서는 차안에서 견디기가 어렵다.
봄을 별로 느끼기도 전에 벌써 여름이 빠르게 질주해 오려고 저 멀리서 대지를 향해 뜨거운 숨을 훅~훅 내뿜는것만 같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계절의 바뀜이 고층건물 승강기 층수가 바뀌듯 훌쩍~훌쩍 너무도 갑작스럽다.
내가 사는 수도권쪽은 아직 아니지만 여기 대구 경상도쪽은 벗꽃이 벌써 지고있다.
아마 이번 주말이 지나면 방안에 오랜시간동안 꽂아 두었던 생화꽃다발마냥 길가에도 꽃나무 가지만 엉성하게 남아있을것이다.
그러나 지금 화물짐을 실으려 트럭을 몰고 합천 가야산으로 들어가는 길 양옆으로는 예쁘고 아름답다는 표현을 넘어 화려하기까지한 벗꽃나무 사이로 달리는 내 앞으로 봄바람이 먼저 앞서가며 꽃잎들을 스치니 우수수~떨어져 춤추듯 하느적 거리며 빠르게 안기듯 차 앞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마치 자연이 나름 열심히 살아가는 나에게 주는 선물인가.. 퍼포먼스를 펼쳐보이는듯한 느낌마저 든다.
해마다 맞고 보내는 봄이고 해마다 보는 벗꽃이지만 볼적마다 더 황흘함을 자아낸다.
내가 떠나온 고향엔 벗나무가 없다.
백두산이 가까운 너무나 높은 고산지대이다보니 꼭 이맘때면 여기서의 벗꽃마냥 내고향엔 분홍빛 진달래가 먼저 봄을 알린다.
그러고 보니 자유를 찾아 목숨걸고 탈북한지도 어느덧 십년을 넘겼다.
엊그제 하나원 문턱을 나선것 같은데 벌써 십년이라니..
그 십여년 세월을 뒤돌아보니 부모,형제 남겨두고 나홀로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에서 미래로 갑자기 던져지듯 온 여기 한국땅에서의 생소했던 나의 삶은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너무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오늘 그동안 바빠서 카톡마저 며칠에 한번 정도로 확인하다가 예전부터 친구추가 되어있던 남북하나재단 알림톡에 정착과정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으면 써보라는 내용의 글이 있어 잠깐 머리도 식힐겸 휴계소에 트럭을 세우고 핸드폰 메모장을 열었다.
에피소드라...
그래. 탈북민 모두가 적어도 한두가지 이상의 에피소드들이 있겠지만 혈혈단신 홀몸으로 이 생소한 한국땅에서 살아온 나한테는 잊지못할 에피소드들이 참 많다.
그중 금방 하나원을 수료하고 몇달 안되였을때의 민망하기도 했고 우스웠던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그날도 지금처럼 따뜻한 봄날이였다.
하나원을 수료하고 내가 다닌 첫 직장은 인천 남동공단의 칼라박스 제조업체였다.
전체 직원이 20명 정도되는 자그마한 회사였는데 남동구 논현동에 살던 내가 직장이 제일 가까운 편이였고 다른 분들은 인천 남구 아니면 멀게는 김포에서 출,퇴근 하시는분들도 계셨다.
주 5일 근무제여서 금요일까지만 일하고 주말은 모두 쉬였다.
하지만 가끔씩 토요일에 종이원단을 비롯해 자재가 들어오는날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사장님은 회사에서 집이 제일 가깝다는 이유로 나한테 전화를 걸어서는 잠깐 나가서 자재를 들여놓고 들어와서 쉬라고 했었다.
나는 첫 직장이고 나름 그 회사에서의 목표도 있고해서 군말없이 그때마다 나가서 자재를 받아놓고 다시 집에 오고는 했었다.
그날도 토요일, 여는때처럼 아침일찍 사장님한테서 전화가 걸려와서 받으니 오전 10시쯤 거래처에서 원단이 들어오니 잠깐 나가서 받아놓으랜다.
나는 바로 작업복을 갈아입고 회사로 나갔다.
차가 들어오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먼저 나가서 창고 문도 열어놓고 전동지게차도 밤새 충분히 충전이 되었는지 확인도 할겸해서 일찍 나갔던것이다.
회사에 도착해서 샷타를 올리고 문을 열어놓은다음 지게차도 확인한 후에 원단 실은 차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나는 마당 한쪽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쌓여있던 폐 나무파렛트들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주변에 지저분하게 널려있던 부러진 널판지들이랑 쓰레기들을 쓸어서 버리려고 창고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온통 수박색으로 차 전체를 도색한 탱크로리 한대가 우리 회사 정문앞에 와서 멈추는 것이다.
나는 의아한 눈길로 차 운전석을 쳐다 보았다.
종이 원단을 탱크로리안에 실어가지고 올수는 없었기때문이였다.
나를 더 놀라게 한것은 운전석에서 내리는 기사가 남자가 아니라 한 삼십대 초 중반쯤 되어보이는 여자였기때문이였다.
젊은 여자가 그렇게 큰 차를 운전한다는것도 놀라웠고
마스크를 쓴 얼굴이지만 바람에 짧은 단발머리를 날리며 담차게 발판을 딛고 뛰여내린 그녀가 나한테로 성큼성큼 다가오며 알릴듯 말듯 고개를 까딱이고는 당황한 얼굴을 하고있는 내 모습에 아무렇지도 않은듯 살짝 눈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내심 더 놀랐다.
그녀는 주위를 이리저리 힐끔거리더니 얼떠름한 표정을 하고있는 나의 눈을 쳐다보며 장갑을 벗고 마스크를 조금 내리면서 묻는것이였다.
" 여기 정화조 어디있어요? "
나는 그때까지 정화조가 뭔지 몰랐었다.
하나원에서조차 정화조가 뭔지 가르쳐주지 않았기때문이다.
후에 안 일이지만 북한에서 《삐또》또는 하수도《망우루》를 한국에서는 정화조라고 부르는것이였다.
나는 그녀의 물음에 갑자기 처음 듣는 단어라 사람이름인줄 알고
" 정..누구라구요? "
하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내가 잘못들은줄로 알았던지 조금 큰 소리로
"아니, 정화조가 어디 있냐구요." 하고 다시 물어보는것이다.
" 으~음, 우리 회사에 정씨성 가진 사람이 누구지? 모르겠는데..요. 아 ~그리구 오늘은 근무 안하는데요."
그랬더니 이번엔 반대로 그녀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빤히 쳐다 보더니 아마도 내가 살짝 청각장애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까보다 훨씬 큰 목소리로 웨치듯 물어보는것이였다.
" 아니, 사람 찾는게 아니구요. 저 차를 보시면 몰라요? 정화조 어디 있냐구요."
나는 그제서야 그녀가 찾는게 사람 이름이 아님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사람 찾는게 아니면 뭐야? 어디 번지수나 동 이름인가? 하며 다시 떠뜸거리며 물었다.
" 정화...동..이요? 여긴 고잔동인데..남동구 고잔동.."
그랬더니 갑자기 그녀가 풉~하며 웃음을 터뜨리는데 귀에 살짝 걸친 마스크가 입김에 날아와 내 발밑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키득~키득 웃다가 내가 마스크를 주워들자 얼른 " 죄송해요~" 하면서 마스크를 내손에서 낚아채듯 가져가더니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서 또 한번 묻는것이였다.
" 혹시 외국분이세요? "
" 뭐라구요? "
(이런 젠장, 내 얼굴 어디를 보구 외국사람이래...얼굴이 쪼매 반반해서 물어보는말에 대꾸해주었더니 아주 그냥 막말하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 외국사람이라뇨..대한민국사람입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아직도 웃음끼 반, 의심 반 가시지 않은 눈빛으로 회사 사무실쪽이랑 열어놓은 창고 안쪽을 기웃,기웃하더니
" 됐구요.혹시 회사에 다른분들 안 계세요?"
라고 하는것이다.
" 없습니다. 오늘 휴일이라 나 혼자 나와있습니다."
나의 말을 들은 그녀는 어쩔수 없다는듯 되돌아서서 가다가 담장 건너편 옆의 회사로 가는것 같았다.
나는 도대체 그녀가 찾는게 뭔지 알수 없어 괜히 첨 보는 여자한테 망신당한 느낌을 떨쳐내지 못한채 폐 파렛트장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열심히 빗자루로 쓸고 퍼내고 하고 있는데 부르릉~하고 차 시동거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가 어느새 차를 몰고 옆 회사 정문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나는 그녀가 찾던 정 뭐라고 한는게 그 회사에 있나부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를 찌르는 악취와 부릉~부릉 하며 트럭엔진 가속폐달 밟는 소리가 나기에 담장 너머를 쳐다보니 좀전에 그녀가 탱크로리 뒤에 달린 두꺼운 호스를 하수도 《삐또》구멍을 열고 오물을 퍼내고 있는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그가 찾던게 바로 저거였구나. 하고 알게 되였고 그녀가 몰고 온 수박색 트럭이 오물처리 트럭임에도 알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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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도로에서 가끔 수박색 탱크로리를 볼때면 그날 내 앞에서 입을 싸쥐고 웃음짓던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직까지도 그녀가 만약 운전대를 잡고 있다면 언젠가 오늘 지금같이 휴계소나 어디 길에서 마주치지 않을까?
혹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날 몰라서 못 알려주어서 미안하다고 커피 한잔 사주면서 이야기해주고 싶은데...
내가 새터민이고 사실 그때는 하나원을 금방 수료하고 나온터라 몰랐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