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을 돌아보니 나에게 유난히도 혹독한 평가를 내렸던 건 내게 정서적인 학대를 했던 내 엄마도 아니오, 결국 나였다. 어릴 적 엄마의 하대를 피하고자 뇌가 굳어지기도 이전에 나는 자신을 스스로 단련하는 법을 익힌 듯한데. 말이 좋아 단련법이지 실상은 예측 불가한 엄마의 비난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엄마에게서 보살핌과 관심을 못 받고 좌절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엄마보다 더 졸렬한 방법으로 나 자신을 공포에 몰아넣고 괴롭히는 걸 익힌 것이다. 방임과 학대가 아이의 머릿속에 심어 놓는 이런 자기 파괴적 생각의 사슬은 마치 암세포와 같아서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머릿속을 다 쑤시고 다니면서 모든 판단과 사고에 그 독을 전파시킨다.
세상의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진 규칙을 어기거나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게 되면 그에 합당한 결과도 따라온다는 것. 정상적인 환경에서 보살핌 아래 실수의 반복을 통해 자연스레 습득하는 사고방식이다. 나에겐 이런 것을 습득할 기회가 있었을 리 없다. 내가 어렸을 적 맛 본 가장 쓰디쓴 좌절은 나르시시스트 엄마에게 외면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나를 왜 외면하고 짐짝 취급하는지는 엄마 본인에게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지 어린 내가 세상의 규칙을 어기고 이런 이유 때문이 전혀 아니었다. 어린아이는 본인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한에서 계속 실수를 반복하며 세상의 규칙을 익혀야 하는 것이지 생후 1일부터 부모의 입장을 다 헤아려주며 스스로 커가는 그런 환상 속 동물이 아니다. 하지만 엄마에게 아무런 뾰족한 답을 듣지 못한 채 계속 냉대에 시달리기만 하니 어린 나는 나의 행실에 어떠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고 개선되지 않으면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보살핌 조차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지배당했다.
그런 가정에서 나고 자란 5살 남짓 어린 내가 어찌 정상적인 가정에선 아이는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 자란다는 걸 알 수 있겠는가? 수십 년을 그런 가정에서 커오고 상식 밖의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과 계속 더 엮이고 나니 그런 정상적이고 화목한 가정의 사람 자체를 먼발치에서도 볼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심각한 정서적 불안과 결핍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었고 그들의 리그가 바로 내 정신적 고향이라 여기는 바람에 이 지독한 굴레는 부서질 줄을 몰랐다.
존재에 어떠한 물리적인 가치를 매길 필요조차도 없는 갓난아이 시절부터 무조건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부모에게서 다짐받는 것. 그것이 나 삶엔 없었기에 나는 어떤 가치를 지녔고 얼마만큼의 가치 개선을 일궈야 이 땅 위에 존재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갇혀서 내 자신을 스스로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내 존재의 가치를 계산을 안 해도 그냥 살아지는 그런 평안한 삶.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삶을 전혀 모른다. 내 삶의 전부를 엄마가 박아 놓은 이 암덩어리 같은 불안을 다 뽑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반대의 삶을 실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걸음걸이 하나하나를 내디딜 때마다 잘못하면 엄마의 가시 돋친 비난에 평생 안주 거리로 씹히며 박제될 거란 두려움 속에 덜덜 떨며 자라온 내게 그런 나이브한 사고가 가능하긴 한 걸까.
솔직히 완벽하게 모든 것을 뒤로하고 깨끗하게 새로 삶을 시작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걸 안다. 내 머리와 몸이 그 시절 모든 걸 기억을 하는 이상 말이다. 큰 기대를 걸진 않지만 어찌할 수 없음에 씁쓸함이 남는 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