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유난히 추웠던 엄마의 계절, 겨울
‘남자는 떠나기 전 나무를 해 다 놓고, 여자는 떠나기 전에 장을 담근다.’는 옛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남겨질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처럼, 떠나가는 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해 놓고 간다는 그 말을.
아빠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가족들 곁을 떠나기 몇 해 전, 아빠는 셋방살이를 끝내고 처음으로 마련해 지내오던 집을 수리하자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 형편에도 집수리 결정하신 건, 당신이 떠나고 남겨질 아내와 딸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마치 당신이 남기고 가는 마지막 선물처럼.
수리가 시작되고 몇 달이 지난 뒤, 집은 어느새 최신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뻥 뚫려 있던 마루는 잠금장치가 달린 창문과 출입문이 있는 거실이 되었고, 부엌엔 가스레인지가 설치돼 편하게 요리할 수 있었다. 또 기름보일러로 인해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난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따뜻한 물도 원할 때마다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힘들게 나무를 해다 연기를 마시며 불을 때지 않아도 됐다. 양변기와 샤워 시설이 갖춰진 욕실도 생겼다. 난 무엇보다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 게 좋았다. 밤에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면, 너무 무서워 참고 자거나 언니들에게 함께 가 달라는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아빠의 바람처럼, 수리된 집은 여자들만 살아도 안전하게 바뀌었고 아빠의 어린 자식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이 갖춰졌다. 하지만 아빠는 그 집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이따금 계단에 앉아 햇볕을 쐬다, 가을이 시작되던 어느 날에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그리고 엄마 또한 새로운 시설의 편리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아빠 몫까지 홀로 일하던 엄마는 아빠가 떠난 후에도 그 자리를 메우느라 바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빠가 떠나던 해에는 유난히 농사가 잘되어서 할 일은 산더미였다.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받아들일 새도 없이 가을이라는 계절을 치열하게 보냈다.
그렇게 추수를 마무리하고, 엄마는 아빠와 시작했던 농사일을 완전히 접었다. 더 이상 일꾼을 얻어 일하는 것도 힘들고 농사로는 생활비와 아빠의 병원비로 생긴 빚을 갚기가 힘들어서였다.
그러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방직 공장에 취직하셨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심한 텃세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엄마는 다른 공장에 취직하셨다. 그곳은 미니 족발을 만드는 식품 공장이었는데, 다행히 그곳엔 좋은 분들이 참 많았다. 어린 내 기억에도 모두가 친절하게 기억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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