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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그리워

과거보다 더 행복한 현재 만들기

by 유진

올해 거의 모든 학교가 개학식을 했을 것이다. 나도 오늘 개학식을 하고 학교에 다녀왔다.


나는 2학년 9반이었는데, 사실 나의 1학년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인간관계로 정말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고, 반에서 있는 친구들에게는 언젠가부터 내가 끼지 못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뒤쫓아만 다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2학년이 얼른 되기만을 바랐다. 반배정도 친구가 2명이나 붙어서 나쁘지 않았기에.


2학년 때는 1학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나를 사랑해 주는 소중한 친구들이 생겼고, 전보다 더 반 아이들을 신경 써주시는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났고, 과목별 담당 선생님들도 하나같이 다 좋으신 분들이었고, 2학년 중에서는 가장 말이 없지만 가장 있기 마음이 편한 반이었다.

그렇게 2학년 9반과 함께 한 날들이 하루, 이틀 늘어날수록 나는 더욱더 행복해졌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흔히들 말하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학기 말이 다가오고 모든 시험이 끝나고 나서 몇 주를 지내다 보니 겨우 깨달았다. 이제 정말 우리 반과 함께할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나는 당장이라도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가지 마라고 얘기해주고 싶은데 시간은 언제나 그랬듯 흘러갔다.




어느새 방학식이 다가오고,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방학이 끝나고 만나자고 했다. 겨우 소중함을 깨달았으면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라서 그런지 2월에 아직 일주일이 남았으니까 인사를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월에는 새로 바꾼 학원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2월이 다가왔다. 막상 개학할 날이 다가오니 싫었다. 우리 반이 싫었던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싫었던 게 아니라, 이번에 일주일을 나가고 나면 정말로 2학년 9반과의 추억이 끝나는구나 싶어 개학식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랐었다.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랐는데, 결국에는 개학날인 2월 3일이 되어버렸고 거의 한 달 만에 2학년 9반을 만나게 되었다.

2학년 9반은 정말 똑같았다. 모든 학생들과, 모든 분위기가 당장이라도 어제 만난 것 같이 어색하지 않았다.

마침 개학날에 하늘은 우리에게 마지막 추억을 만들라는 듯 눈을 소복이 쌓여 주었다. 밖은 영하로 그렇게 오들오들 떨면서 왔는데, 교실에는 반아이들의 온기로 따뜻했다.


그렇게 하루 같던 5일이 지나고, 정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 했다. 이제 인사를 하지 않고, 진심을 전하지 않고, 고마움을 전하지 않으면 영원히 전하지 못했다. 근데도 난 또 안 했다. 진심도, 고마움도 전하지 않고 어색한 인사만 하고 부랴부랴 마지막의 2학년 9반의 종업식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싶다. 친하지 않은 애들한테도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는 쉽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부끄러워서 그 한마디를 하지 못 하고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을까 싶다. 고맙다고, 덕분에 많이 행복했다고 질리도록 말해주고 싶었는데. 항상 난 이렇게 후회만 반복한다.


오늘 개학을 하고, 처음으로 배정된 3학년 2반을 들어가 보았다. 작년보다 아이들도 누구랑 친해져야 할지도 감이 잘 잡히지 않고, 그저 시끄러운 우리 반이 싫고, 반배정도 망했다. 어떻게 1년을 보내야 할까 눈앞이 캄캄하다.


좋아하는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 적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떠나는데 당연히 힘들고 슬프지. 근데 그런 시간이 지나야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는 거야. 당장은 떠올릴 때 아파할지 몰라도 그리움이란 건 행복했던 기억 때문에 생기는 거니까.


아직 많이 그립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2학년 9반이 떠드는 모습과, 1년이 다 되어가도 수업시간에 그렇게 조용하던 우리 반이 너무 많이 그립다. 눈을 뜨면 아직도 우리 반이 앞에서 생생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갤러리에는 아직도 그날의 냄새가 가득한데 이젠 직접 맡을 수 없다.


너무 보고 싶어 미치겠다. 자꾸만 그리워서 눈물이 난다. 우리 반이 좋은 반인 걸 그때도 알았는데, 이런 건 항상 과거가 돼서야 만 깨닫는 내가 너무 밉다.


과거가 그렇게 행복해서 자꾸만 그립다면 과거보다 더 행복한 미래를 만들면 된다는데, 그렇게 안될 것 같다. 과거에는 그만큼의 행복들이 다 달라서 그 그리움은 다른 걸로 채울 수 없을 것 같다.


보고 싶다. 후회된다. 너무 그립다.


많이 사랑하고, 고맙고, 미안하고, 아낀다 2학년 9반아!

나중에 웃으면서 만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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