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연정의 말을 들은 연정의 엄마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성큼성큼 연정에게 다가와 연정의 왼쪽 뺨을 쳤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놀라 달려와 연정의 엄마를 말렸다.
"이러면 안 돼요. 아무리 그래도 애를 때리면 안 되죠.."
"이거 안 놔요?! 확 잘라버리기 전에 놔요!"
"연정아, 얼른 죄송하다고 해. 얼른..!"
연정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싫어요.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연정아..!"
"야, 김연정!!!"
연정의 엄마는 연정을 한 대 더 때리려는 듯 손을 올렸다. 그런 연정의 엄마를 도우미 아주머니는 황급히 말렸다. 연정의 엄마는 마구 소리를 질렀다.
"너 그럴 거면 내 집에서 나가! 너 같은 년은 나가서 개고생을 꼭 해봐야 정신 차린다니까!!"
"알겠어요, 나갈게요.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지금 이러지도 않았을 테니까 내가 문제인 거죠?"
"그래! 네가 태어나고 나서부터 난 되는 일이 없었어!"
연정은 방으로 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동안 열심히 모아 온 돈들도 챙겼고, 옷도 챙겼다. 나가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집에는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마음으로.
한창 밖이 시끄럽다가 연정의 엄마는 집 밖으로 나갔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짐을 싸고 있는 연정에게 왔다.
"연정아, 이러면 안 돼. 엄마가 많이 속상하셔서 그랬을 거야. 응? 우리 연정이 이런 애 아니잖아."
"저 이런 애 맞았을지도 몰라요. 아니, 이런 애 아니었더라도 제 엄마가 절 이렇게 만들었어요."
"연정아.. 이러지 마. 아줌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연정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갔다. 하늘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연정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학교 앞 놀이터로 향했다.
어느새 거리에도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고 가로등에까지 불이 켜졌다. 전에는 그래도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 몇몇이 뛰놀고 있었지만 이제 놀이터에는 연정밖에 남지 않았다. 연정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보았다. 엄마, 아빠, 도우미 아주머니, 혜유.. 생각해 보면 연정에게 휴대폰이란 정말 연락할 도구였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남들은 전부 다 하는 SNS조차 연정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어? 연정아!"
그때, 멀리서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든 혜유가 연정을 보고 반갑게 웃으며 달려왔다.
"여기서 뭐 해? 네가 이 시간에 놀이터를 다 나오고.."
"그냥.."
혜유는 연정의 표정을 살피고 나서 곧바로 연정의 옆에 놓여 있는 큰 가방을 보았다.
"가출.. 한 거야?"
".. 응."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가출까지 다 하고.. 갈 곳은 있어?"
"딱히. 그냥 막무가내로 나온 거라."
"지금이라도 집에 들어가 보는 건.. 역시 무리겠지?"
"나 이제 집에 안 들어갈 거야. 죽어도 여기에서 죽어."
"무슨 죽는다는 얘기까지 다 하고.."
혜유는 연정의 옆에 앉았다. 혜유는 한참을 연정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갈 곳 아무 데도 없어? 친척 집이라던가, 친구라던가.."
"그런 거 없어. 친척도, 친구도.."
".. 내 집이라도 올래? 집에 언니밖에 없긴 해. 나중에 부모님 오시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네 집을 어떻게 가.."
"왜? 나는 괜찮은데. 넌 내 친구잖아."
연정은 바닥만 바라보며 손을 만지작 거렸다. 혜유는 입술을 삐죽 내밀다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전화를 마치고 연정에게 말했다.
"언니도 너 오면 좋을 것 같대. 같이 가자."
"... 못 갈 것 같아."
"왜? 집에 들어가려고?"
"그건 아니지만.."
"그럼 그냥 같이 가자. 그게 나도 마음 편할 것 같아."
혜유는 연정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연정은 혜유의 집으로 가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혜유의 집에 도착하고, 신발장 앞에는 혜선이 서 있었다.
"네가 연정이야?"
"네.. 맞아요."
"반갑다, 연정아. 나는 혜유 언니, 혜선. 우리 집에 얼마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 부탁해."
".. 저도요."
혜유는 연정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연정은 혜유의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부터 빼곡히 찍어 온 가족사진들이 벽 이곳저곳에 걸려 있었다. 연정은 말없이 사진들을 만졌다.
"연정아 배고프지는 않아? 밥은 먹었어?"
".. 괜찮아."
그 순간 연정의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혜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라면 끓여 올게."
"정말 괜찮은데.."
"우리는 성장기라서 항상 잘 먹어야 해. 기다려!"
혜유는 방을 나갔다. 연정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혜유의 가족사진은 항상 웃는 모습이었다. 가식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연정도 그런 가족을 원했다. 남들은 다 행복하게 유년기를 보내는 게 다수였지만 연정은 그중에서도 소수에 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