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문주 Apr 01. 2024

과거여행 1. 네눈의 들보보다 내 눈의 티가 더 아프다

주방 창문.... 그 아픈 기억

누군가 내게 

"언제 마음이 가장 아팠나요?"

라고 물으면 그 많은 기억들 중에서 나는 주방 창문이 생각난다.

시간 순서로 적지 않아 독자들은 짐작만 할 뿐, 무슨 일인데?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래도 나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쓰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독자를 배려하지 않고 써보려 한다.


아들이 유난히 여동생을 미워해서 작은 아이를 오피스텔로 피신을 시켰다. 딸아이가 중3, 2학기가 막 시작된 9월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하겠지만 미국에서 돌아온 후 한 달 후의 일이다. 

하필 이사를 온 집은 21층이었고, 하필 딸아이의 방이 베란다가 있는 통창의 방이어서 나는 그 아이가 뛰어내릴까 봐 늘 마음을 졸였다.

의존적이었던 나는 시골에 사는 80살의 친정엄마를  모시고 와서 상황을 설명했고, 늘 정답만 얘기했던 엄마는 

"여기서 서영이가 어떻게 사니? 오피스텔이 있으면 내보내라. 열일곱이면 혼자 실컷 산다."

엄마랑 나는 집에서 10분 거리의 이제 막 문을 연 신축 오피스텔에 계약을 했고, 그날 저녁 딸의 짐을 옮겼다.

남편은 이런 나의 결정에 뜨악했지만 너무나 좋아하는 딸을 보고 이삿짐을 도왔다.


그날부터 나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하루는 본가에서 잠을 자고 하루는 오피스텔에서 잠을 잤다.

그렇게 내 딸은 중3, 9월부터 고2, 2월까지  오피스텔 생활을 했다. 

그런데 남편의 지방 발령으로 우리는 아파트만 밀집해 있는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남편은 이제 아들도 많이 좋아졌으니, 합치자고 했지만 딸은 완강했다.

결국 빚을 얻어 집에서 3분 거리의 같은 단지에 33평 아파트를 전세를 얻어 딸을 이사시켰다. 


중고 소파도 들여놓았지만 33평은 너무나 휑했다.

집이 넓어서 좋아할 줄 알았는데, 딸은 너무 불안해했다. 방이 많아서 누군가 집에 있는 것 같고 무섭다고 토로했다. 어떤 날은 천장에 피가 묻어있다고 밤 12시에 전화를 걸었다.(아들이 내 핸드폰으로 딸을 늘 차단 해놔서 남편이 알려주었다. 이 야기는 추후에 하자.) 

가보니 이전에 그 집에서 살던 부부가 부부싸움을 거칠게 했는지 천장에 초콜릿이 튀어있었다. 화장실 문에 핏자국도 있고. 딸아이가 놀랄 만도 했다.

그래도 딸아이는 적응을 했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도 사귀었다.

아들의 강박과 조울증은 좋아지다 나빠지다를 반복했는데, 그즈음 큰 사건이 터지고 아들은 결국 병원에 가기 시작했다. (이 야기는 다음에 하는 걸로 하자)

본가와 딸네 집에서 하루씩 잠을 자는 건 여전히 이어졌고 나는 기간제 알바를 하다가 아들의 협박으로 그만두고 시간제 알바를 하고 있었다.

아들은 약을 먹는 데도 가끔씩 딸 집을 못 가게 했다.

'오늘은 너무 불안하다. 엄마가 집에 있으면 좋겠다.'가 이유였고, 자폐스펙트럼의 아이라서 말이 통하지가 않았다. 

그렇게 이틀에 한 번 가던 딸 집을 삼일에 한 번, 일주일에 주말에만 한 번으로 가다가 아들은 이제 아예 딸 집에를 가지 말라고 횡포를 부렸다.

딸은 고2 2학기에 내신 수학을 망친 후로 극도로 불안정해졌다. 물론 내가 저녁에 밥을 주러 가서 얼굴을 보긴 하지만 딸이 원한 건 밤에 엄마랑 같이 있는 것이었다.

사실 초등4학년 때 시작한 아들의 불안증 때문에 난 늘 아들 옆에 붙어있었고, 두 살 터울의 딸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혼자 잠을 자곤 했다. 

사춘기는 과거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당시 딸은 과거에 시달렸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 고3이 된다는 두려움과 사춘기의 뇌가 합쳐서 우울로 치달았다. 코로나19도 한 몫했다. 딸은 겨울방학 내내 방에 틀어박혀 학원도 가지 않고 공부도 안 하고 잠만 잤다.

그러다 내가 아들이 잠든 틈을 타 몰래 딸의 집에 가면 딸은 내 옆에 누워서

"너무 좋다. 근데 걔 깨면 어떡해? 빨리 집에 가."

하며 나를 걱정했다.


우리 집 거실 주방창에서 얼굴을 내밀면 딸 집의 거실 베란다가 보인다.

나는 싱크대에 올라가 창으로 얼굴을 내밀고 딸의 방에 불이 꺼져있는지 켜져 있는지 바라본다. 

딸은 불안하면 불을 켜놓고 잠을 자는데, 그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가끔은 깜깜한 창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창에서 떨어질까 봐, 아니 어쩌면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싱크대에 주저앉기도 했다. 

그리고 아들 방에 귀를 대고 아들이 자는지... 한참을 앉아있는다. 아들이 잠이 든 것 같으면 현관문을 살짝 여는데, 몇 번을 들키기도 했다.

독자들은 물을 것이다. 왜요? 뭐가 문젠대요? 아들에게 설명을 하면 되잖아요? 부모의 기가 너무 약한 것 아닌가요?

그럴 수 있다. 내가 시간 순으로 글을 쓰지 않았으니까.


지금도 나는 주방창을 바라보면 숨이 잘 안 쉬어진다. 그 1년여의 세월. 고3딸의 마음을 알면서도 가서 안아주지 못하고, 함께 잠을 자지 못했던... 고3의 불안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했던 딸의 마음이 느껴진다.


어쩌면 남의 눈엔 티끌처럼 보일지 모르는 상처지만 난 참 아팠다. 

  

작가의 이전글 현재 1. 쉰넷,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불안한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