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1.

by 와이와이

2021.11.21.


오늘부터 가능한 매일 30분간 글을 쓸 생각이다. 일기일 수도 있고. 아직 잘은 모르겠다. 글이 중요하단 얘기를 많이 듣긴 했는데 이게 무슨 효과가 있을지. 또 그 전에 일기를 매일 썼던 적도 줄곧 있었다. 기억을 돌이키면 학부 휴학을 했을 때나 작년 브런치 카페에서 일했을 때 등. 지금의 나는 작년과 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책상에 앉아 있다. 같은 집, 같은 책상이지만 나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져 많은 변화를 하고 있다. 외적으로 보았을 때 남들은 크게 못 느낄 수 있겠지만 나이를 먹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피부가 상하고 머리도 빠지고 있다. 당연히 탈모는 아니다.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모두 머리숱이 많았기에. 그런데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2:8 가르마를 타는 지점이 꽤 많이 없어져버렸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가르마를 5:5로 타게 되고 있다. 옛날엔 이상해보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타는 게 또 괜찮아 보인다. 글을 쓴지 5분이 지났다. 금방인 것 같은데 나머지 25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아직 일어나서 밥을 먹지 않았다. 커피만 마시고 있다. 요즘 레츠비에 꽂혀 있다. 이거 진짜 맛있다. 믹스커피는 비빌 수 없는, 조금 더 윗 차원의 느낌이랄까. 쓸데없는 얘기가 길다. 글이 쓰기 어색하다는 의미겠지. 아까 얘기로 다시 돌아와서, 이제 나는 또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곧 아동 미술학원 교육을 한 달간 듣게 된다. 그리고 12월 말부터 수업에 들어가 학원의 선생으로서,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년은 나이 서른.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 더욱 더 인생을 돌아볼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수동적으로, 생각 없이 살다가 재수할 때부터 대학원 2학기까지 약 7년간 능동적으로 살려 노력해왔다. 미술 작가가 되기 위해서. 아직도 나는 나의 재능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재능이 결국 순수미술 작가가 되기에는 어딘지 부족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회화보다는 드로잉에 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학부 1학년, 어떤 교수의 수업을 듣던 때가 생각난다. 되게 웃긴 일이 있었는데(나만 웃길지도.) 짧은 시간 내 모델의 포즈가 바뀌고 그걸 따라가며 크로키를 했던 수업이었다. 중간 중간 선생에게 한명 씩 불려가 짧은 상담 겸 크로키 평가를 들었다. 나는 같은 종류의 선들만 이용해 그림을 그렸고, 다양한 선이 없다는 것을 선생은 크게 강조하였다. 마치 선의 종류가 여러 가지 있는 것이 (무조건) 좋다는 것처럼. 나는 그 말이 편견에 가득 차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마치 그림에 답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태도가 웃겼다. 대학 수업이 신입생들에게 했던 일들이 그림에는 정해진 답이 없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었는데, 선생의 태도는 오히려 입시 때의 그것과 더 가깝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후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회화와 드로잉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시설이 낙후되어있던 실기실에서 겨울에는 벌벌 떨고 여름에는 땀을 한 바가지씩 쏟아내면서 그림을 그렸다. 크로기, 1일 1 수채화, 아크릴, 유화 등 회화 내에서 재료에 구애받지 않으려고 의식하였고 교양시간엔 몰래 작은 드로잉북에 라인 드로잉을 하였다. 집에선 지금 이 책상에 앉아 교양시간에 쓰고 남은 이면지들 뒷면에 드로잉을 하였다. 나의 드로잉은 족히 1000장은 될 것이다. 이런 시간을 보내며 나는 나의 강점이 붓의 터치보다 펜의 라인에 있다고 느꼈다. 결국 가장 완성도 있는 그림은 같은 두께, 같은 강도의 선으로 그린 드로잉과 그것으로 만든 수채화였다. 신입생 시절 나를 다그친 선생은 틀린 거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사실 나의 20대에는 자신의 생각을 정도 이상으로 강요하던 사람이 수북했다. 가스라이팅에 미친 새끼, 꼰대, 군기를 이상하게 유지하는 새끼, 겉멋 사투리를 유창하게 쓰던 새끼 등 별의 별 이상한 놈들을 많이 만났다. 이상하게 한 놈, 한 놈 아무리 넘어가도 이상한 놈들은 무슨 게임의 빌런마냥 계속 튀어나왔다. 나는 사람을 잘 믿는 성향을 갖고 있었고, 그 성향은 그 새끼들로 하여금 나를 더 괴롭혔다. 대학원에 가니 그런 사람들이 사라졌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모두 서로의 간격을 유지한 채 관계를 맺었다. 서로 간 적정 거리가 생기니 타인에 대한 작은 호불호는 있어도 최소한의 존중이 기본적으로 세팅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얘기를 나누면 부분적으로라도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서로를 괴롭게 하지 않는 거리에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상태. 그런 관계의 유형이 지금의 나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상처받고 우울하고 타인이 어려웠지만 대학원에서 그런 관계를 맺는 방법을 익힌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혼자로서 나는 아직 참 부족하기 그지없지만. 앞으로의 미래가 갑갑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기고만장해져 있었던 학부시절엔 흐릿흐릿한 미래가 두렵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전시를 보았기 때문이다. 책도 참 많이 읽었네. 대학원 중 길을 잃기 시작한 나는 한 미친 새끼 때문에 정신이 나갔었고 약 2년간 우울하게 살았다. 내가 서있었던 단단했던 돌다리가 밑으로 숭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앞은 컴컴하고 여태 쥐고 가져왔던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 사이 여자 친구도 나를 떠났다. 나는 여태 우울하기만 했어서 모은 돈도 없었고 그림도 1년간 안 그렸다. 그림을 닦달하셨던 대학원 선생님은 돌아가셨다. 나는 내 손으로 자퇴했다. 30분이 다 되었네. 글을 쓰니 지금은 오히려 더 뭔가 복잡하고 정신없는 기분이다. 내일 마저 더 써봐야지. 안녕.

작가의 이전글핀 라이트 바깥의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