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9.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이 다 되어 돌아왔다. 세 시간도 채 자지 못한 상태로 나갔다. 신촌에서 하루 반나절을 보냈다. 오늘의 메인 퀘스트는 두 가지. 첫째, 셋업 구매. 둘째, 사랑니 발치. 전에 친구와 샀다가 재질이 별로인 것 같아 바로 다음 날 환불했다. 오늘은 재질에 신경 써서 오래 입을 수 있는 퀄리티의 제품을 사는 것이 목표였다. 신촌 현대백화점 남성복층을 한 바퀴 돌고 마에스트로 매장으로 들어갔다. 직원은 서비스 면에서도, 안목 면에서도 노련함을 뽐내는 사람이었다. 생각보다 거금을 지불하게 되었지만 돈을 허투루 쓴 기분은 아니다. 오히려 괜찮은 것 잘 구매한 기분이고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일을 시작해도 바로 적극적인 저축을 하는 것은 무리로 보이지만...) 옷의 간단한 수선이 이루어질 동안 백화점 식당가에 있는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옷을 찾고 치과 예약 전 잠시 시간이 비어 엄마의 은행 업무 보는 데 따라가 시간을 보냈다. 매우 피로한 상태여서 투썸에서 커피를 마신 후 바로 치과로 직행.
사랑니 발치에 프라이드가 있는 병원에 갔다. 기네스 기록이 있다나. 병원에서 자랑하는 발치 사랑니 개수를 방증하듯 대기 환자가 매우 많았다. 여태 가본 개인 치과 중 대기인원이 가장 많은 느낌. 덕분에 14시 30분 예약이었지만 발치는 한 시간 후에나 할 수 있었다. 나의 사랑니는 극악의 난이도. 뿌리는 휠대로 휘어있었고 신경과도 근접했다. 사랑니 발치 선수라고, 5분이면 뽑는다고 하시는 선생님. 그 명성이 거짓된 것은 아니었다. 과연 빠르고 능숙한 실력이었다. 문외한인 환자도 그의 수술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히 올림픽이 연상되는 상태가 될 것이다. 나의 극악 사랑니도 발치에 5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순조로운 흐름으로 사랑니를 조각내고 제거했다. 드릴로 쪼개고 벤치로 뽑아내는 순간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선생은 프로인데 반해 나는 초보 환자였다. 마취했기에 아프지 않음에도 두개골을 감싸는 진동은 다시 느끼고 싶은 게 아니었다. 머리에서 뼈를 뽑아내는 느낌. 사랑니의 뿌리가 휘어 잘 나오지 않는 게 느껴졌다. 결국 더 부셔내고 뽑아냈다. 영혼도 함께 뽑혀나가는 기분.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가 뽑힐 때 꼽혀있던 땅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빨이 사라진 자리에 지혈제를 넣고 거즈를 물었다. 볼엔 냉찜질 팩을 붙인 상태다. 발치 후 약 네 시간을 이러고 있어야 하니까, 앞으로 두 시간만 더 이러고 있음 되겠지. 턱도 많이 부은 느낌. 불편하네. 다행인건 얼굴에 살이 없어서인지 잘 이전 사랑니 발치 때 별로 붓지 않았다는 점. 이제 더 이상 사랑니 걱정할 필요가 없기에 후련하기도.
할 일 리스트를 짜고 실행한 지 며칠이 되었다. 가능한 실천하려 하고 어려울 땐 유연하게 수정하며 시간을 보낸다. 물론 다 끝내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에는 문제점을 생각해 따로 적고 이후 잘 보이는 곳에 두어 별생각 없이 읽히도록 한다. 그러면 무의식적으로 문제 해결 방법이 머리에 새겨지는 느낌이 든다.
친애하는 형이 있다. 여태 만났던 거의 대부분의 형들은 머저리 꼰대들. 나처럼 그런 이들을 혐오하는 형이다. 친구 같은, 마음이 여린, 게으르기도 한, 예민한, 감각이 있는, 깔끔한, 개인주의적인, 내향적인 호방함을 갖춘 사람. 재밌는 사람이다. 약 한 달 동안 연락이 잘 안 되었다. 잠수. 연락 두절인 상태임에도 나는 형의 컨디션이 좋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별 일은 없겠지만 아마 마음의 문제겠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타개해야 할 경우와 마음이나 의지가 꺾였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경우 중 더 힘든 것은 후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전자를 격하하는 건 아니다. 그것도 물론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의지가 꺾이면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되돌아오지 못하는 케이스들이 있다. 나는 형이 다시 전진하길 바란다. 30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