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4.

by 와이와이

2021.12.4.


하이.

전 여자 친구랑 매일 이러고 인사했었다. 열흘 있으면 5주년인데. 괜히 생각나네. 걔 목소리는 내 귀에 붙었다. 시간의 힘이겠지. 아무튼. 지나간 시간이고 한 때 나의 시간을 빛내준 사람이 되었다. 나의 20대는 며칠 남지 않았다. 결과적으론 실패한 10년이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일본의 사라진 10년, 20년 하는 말들이 떠오르네. 다행인 점은 전 여자 친구 말고도 이 시간을 빛내준 사람들이 더 있다는 것. 그 기억들이 시각적, 청각적 파편이 되어 내 안에서 표류한다. 좋기도 싫기도 한 일들이 점점 좋은 기분으로 남아 몇 페이지에 적힌 듯.

오늘은 함께 교육받는 사람들과 회식을 했다. 내일인가 다음 주인가 다시 4단계로 돌아간다는데, 타이밍이 어떻게 잘 맞았다. 회식의 후기를 간추리면 두 가지다. 첫째, 사람은 단번에 판단하면 안 된다는 점. 둘째, 즐거웠다.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유와 모두 나이와 살아온 이력이 다르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며 얘기했다. 사랑니 때문에 술은 먹지 않았다. 첫 인상에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졌지만 막상 가까이 있으니 그렇지 않았다. 상남자일 것 같다고 생각한 사람은 오히려 섬세한 면이 많았고, 숫기 없어 보이는 사람은 타인에게 다가서는데 거침없었고 쾌활했다. 이런 저런 편견의 오류가 회식 자리를 즐겁게 한 큰 이유였다고 느껴졌다. 앞으로 아이를 대하는 생활을 할 텐데, 비슷할 것 같다. 이럴 것 같은 아이가 저럴 것이고, 저럴 것 같은 아이가 이럴 거겠지. 괜히 반성하게 된다.

오늘부터 담배를 다시 피웠다. 네 까치를 태웠다. 4일인가 5일 동안 안 피워서 그런지 담배 역한 냄새가 확 다가왔다. 사랑니 부위도 얼얼하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머리도 조금 띵 하고 아프네. 그럴 수 있지. 그냥 저냥 점점 다시 돌아가는 기분. 어디로 돌아가는지는 몰라도 안정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붓기는 정말 많이 빠졌다. 월요일 쯤 되면 거의 다 가라앉을 것 같다. 대신 노란 멍이 크게 졌다. 이렇게 큰 멍이 얼굴에 지다니. 별 일이 다 있구나 싶다. 옛날에 전 여자 친구랑 신촌 현대백화점 지하 1층에서 밖으로 나가는 통로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가 틈에 신발끈이 껴서 넘어진 기억이 난다. 그 때도 그랬다. 별 일이 다 있구나.

오늘은 쓸 얘기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기처럼 무슨 일, 무슨 일이 있었다고 써버리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일과 내일 모레는 쉰다. 이틀을 쉬는 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미술관에 있을 때에는 주 6일을 일해서 쉬는 날에 대한 큰 기쁨은 없었는데, 하루 더 쉬는 건 전혀 다른 일이라고 느껴진다. 길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아낌없이 시간을 쓰겠다는 다짐이 행복한 흥얼거림과 함께 마음에 일렁인다. 무엇보다 그림이 그리고 싶다. 내가 하던 거, 편안하게. 보고 싶었던 영화도 시청하고 싶다. 이것저것 목록에 쓰다 보니 해야 할 일들이 꽤 많아졌다. 게으름피울 시간은 없을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서 방금 어떤 짤을 보았다. 영어로 써진 만화 형식의 그림인데, 대충 이런 메시지다. 피곤할 때마다 푸쉬업을 하나씩 해라. 그럼 너는 몸짱이 될 것이다. 이런 거 좋다. 그 짤을 보고 푸쉬업 열 개를 바로 했다. 열 두 개인가. 이런 습관, 집에서라도 들이면 훨씬 건강한 일상이 될 것 같다. 사람이 되게 웃기다. 직업이 없고 막막할 때에는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도 좋지 않았는데, 일이 생기니 쉬는 날이 소중하고 일상에 활력이 돋는 느낌이다. 월요일에는 엄마랑 또 백화점을 갈 것 같은데, 그 날은 엄마랑 쌀국수를 먹고 싶다. 엄마랑 먹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연애를 또 오래 하는 바람에 엄마랑 하는 외출 횟수가 거의 없었다. 여러 가지 생각해봤을 때 당분간은 연애를 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 참에 엄마랑 이것저것 해봐야지.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좀 걷고 맛있는 거 먹고 그런 거. 사실 담배도 계속 피워야할 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진짜 조금만 독하게 마음먹으면 안 피우는 것도 가능해보인다. 과연...

두 가지 마음이 있다. 일상이 다시 생겨 행복한 마음, 한 편에 미뤄둔 그림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림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전 연애가 계속 떠오른다. 힘들 때 그렸던 그림들이 가슴에 남고 그 시간을 함께 메꾸어 준 게 그녀였다. 그녀는 나에게 사랑과 영감, 지식과 행복을 끊임없이 주었다. 걔는 내가 자신에게 해준 게 많다고 했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받은 것 밖에 없다.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훨씬 별로인 사람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혼자 된 게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분명 나는 그녀가 보고 싶다. 나중에 친구로서 만나게 되더라도 그 땐 옛날보다 나은 사람이 돼서 걔가 나랑 사귄 걸 후회하지 않게 해주고 싶다.

12시가 넘어간 심야 시간이 좋다. 고요함이 감싼다. 내가 느껴보지 못해 언젠가 만끽하고 싶은 고요함이 있는데, 그건 새벽의 고요함이다. 물론 밤을 수없이 새서 그 시간에 깨있었던 적도 많았지만, 일찍 일어나 맞이하는 새벽의 색은 또 다를 것이다. 내일, 정말 빡세고 힘들게 살아서 빨리 자버리고, 새벽에 일어나보도록 노력해봐야지. 교육받을 때, 선생님이 정말 많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작은 세 번의 성공. 작은 세 번의 성공을 하면 사람의 태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나는 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겨서 무엇을 시도해도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뉘앙스 같다. 좋다. 나라고 뭐 안 될까. 혹여나 내일 모래 새벽에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다시 하면 되지. 오늘은 글이 길게 뽑혔네. 30분 끝.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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