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6.
월요일. 오늘도 쉬는 날. 어제인가 엊그제인가, 해가 뜨지 않은 새벽에 깨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였으면 그렇게 생각하고도 까먹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여섯시쯤 눈을 떴다. 깨야지, 깨야지 하고 눈을 다시 뜨니 여섯시 반. 침대 위 같은 시련의 반복으로 결국 7시 쯤 겨우 일어났다. 그래도 하늘은 아직 어둑한 상태. 사실 내가 원한 것은 정말 깜깜한 새벽에 책상에 앉아 무언가 할 일을 하고 있는 모습.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일찍 일어나다니, 정말 자신이 기특했다.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 일찍 일어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치과 예약 때문이었다. 사랑니 실밥 빼는 날이었고 예약은 병원 오픈 시간에 맞춰 잡았다. 병원 일을 보고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함께 공부, 현대 백화점에서 엄마를 만나 사기로 했던 옷을 구매, 자주 가던 쌀국수 집에 오랜만에 가서 아점을 해결했다. 거기서 엄마랑은 잠시 안녕,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 학원에서 사오라고 한 삼색 볼펜을 구매한 후 만나기로 한 형을 기다렸다. 형의 개인 사정으로 시간이 떠서 기다리는 동안 인스타그램 키우기와 공부를 더 했다. 인스타그램은 여태 일기에 쓴 적이 없을 것이다. 아직 작은 일이기 때문에. 그냥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짬짬이 드로잉하고 그걸 올리는 계정을 만들었다. 일단 이건 여기까지. 대강 공부했다 싶어 남은 시간 책 구경을 하며 돌아다녔다. 책 구경을 하러 여기 저기 통로를 이동하던 중 누군가 내 앞을 지나가려고 해서 길을 비켰는데, 그 사람이 내 몸 방향에 맞춰 걸어와서 부딪힐 뻔했다. 별 생각 없이 걷는 상태라 누군지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 형이었다. 어?
형과는 어떤 부분에서 서로를 잘 아는 사이다. 몇 없는 친한 형. 눈치가 좋은 건지 이해심이 넓은 건지, 본인의 영역 안에 숨어 있을 때는 조용하지만 그만큼 타인을 생각하는 건가. 단순해보이면서도 복잡한 사람. 그래도 여태 나와의 관계는 별 일 없이 평탄하게 이어져 왔다. 생각해보니 서로 알고 지낸지도 7년, 8년 쯤 되었네. 형과 만나면 많은 이야기 거리, 많은 음식, 많은 음료, 많은 걸음, 많은 담배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오늘은 거기서 담배를 뺐다. 어제 남은 담배를 다 피우고, 굳이 계속 피워야 할까 하는 생각에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형의 아이코스를 두 번 피웠다. 연초 특유의 매력은 없지만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냄새도 안 날뿐더러 재도 날리지 않아, 여러모로 편리한 구석이 많다. 근데 돈을 여기 저기 뿌리듯 쓰고 다녀서 사기도 좀 그렇다. 지금도 담배 생각은 좀 나는데, 그냥 참아봐야지. 아무튼 이야기가 샜다. 다시 돌아와서, 오늘은 동선이 많이 꼬였다. 근 3년 정도 형과 만나면 우리는 종로 일대를 서성이며 항상 거의 똑같은 식당과 카페에 머물렀다. 형은 나와는 달리 입맛이 꽤 까다로워 어지간한 곳은 잘 가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를 가끔씩 하지만 그의 기준을 넘긴 곳은 별로 없다. 오늘은 그런 점에서 꽤 큰 모험을 했지. 카페도 처음 가는 곳으로 갔고, 새로운 메뉴를 선택하는데 동선이 꼬여서 정동 길에 묶여버렸다. 그 마저도 결국 형이 아는 식당으로 가버렸지만, 운영 시간을 확인하지 못하고 한 시간인가 두 시간을 길에서 버린 듯. 의미 없는 걸음과 대화의 연속. 안 그래도 둘 다 저질 체력인데, 컨디션이 떨어지는 동선이었다. 이후로는 그냥 간단하다. 결국 또 다니던 카페에 가서 게임하고 얘기하고.
솔직히 안다. 좋은 형인데, 만나면 항상 그냥 항상 비슷한 컨디션으로 시간 죽이는 기분이다. 물론 그 안정감도 좋지만. 좋은데, 시간이 아쉬운 기분. 아까운 기분. 정으로 만나는 건가. 형이 잘 사주는 것도 고맙지만 부담되는 일. 동등한 관계로 못 있는 느낌이기도. 내가 요즘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나서 그런 건가. 사실 정말 많이 만나고 다니긴 했다. 매주 만났을 거다. 연애를 관둔 뒤에는. 이게 참. 시간, 돈을 아끼고 싶어서 헤어짐을 고민했었는데, 낭비 또한 질량 보존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언가 인가. 아니야. 그냥 내 의지가 박약할 뿐이다. 형과의 만남을 의식해서인지 혼자의 시간에선 부지런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이번 주엔 아무도 안 만나야지. 그냥 집에 있어야지. 아니면 그냥 엄마랑 어디서 뭘 먹고 오던지 해야지. 친구는 만나지 말아야지. 그리고 아침에는 계속 일찍 일어나야지, 밤에는 일찍 자야지. 11시 43분. 1시 전엔 자야하는데. 괜히 자기 아쉬워진다. 지금도 누우면 바로 자버릴 것 같지만. 그냥 욕심이 많아지는 밤. 자다가 눈을 떴을 땐 욕심이 없다. 더 자고 싶은 욕망만 남아있을 뿐. 이게 내 하루 심리 사이클일지도. 괜히 하루가 끝날 때 쯤 조급해지는 마음.
마음은 나로부터 비롯되는 무언가지만, 어쩔 때 보면 나와 떨어진 하나의 대상이다. 이렇게 느끼는 마음을 마음속에서 느끼는 게 이상하지만, 그렇게 인지되는걸. 나는 대상으로서 마음을 바라보며 나의 존재 그 자체를 돌이켜본다. 그냥 말이 현학적인거지 대충 나는 무슨 사람이지, 어떻게 되먹은 거지, 어떻게 프로그래밍이 되어있지, 하는 생각들의 연속이다. 그림을 한참 그릴 때에는 그런 생각들에서 출발해서 어느 감정 선에 도착하는 이상한 경로를 따랐었다. 보통 우울하거나 비참한 감정들. 근데 그거 좀 이상하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어떤 존재지? 하는 물음에 왜 감정이 그렇게 안 좋아지냐고. 지금 생각하면 나는 좀 이상한 사람이다. 일관되지 못한 점이 일관된 사람이다. 타인의 언행불일치를 혐오하면서 언행불일치를 일삼는 사람,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 알면서 모른 채 하는 사람, 잘못해 놓고 후회하는 사람. 다소 자기 혐오적, 부정적여 보이는 서술이지만 나는 이게 객관적이라고 인지한다. 그래서 뭔가 바뀌고자 노력하는 중이고. 아무튼 이 이야기의 다음을 언제 적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 졸립고, 30분이 지났고, 한 시가 되기 전에 몇 가지 일을 더 해놓아야 한다. 바쁘니까, 아쉽지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