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싸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여름의 끝무렵이라 더위도 한 물 갔고 습도도 높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금방 가을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사내는 터벅터벅 걸어갔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갈 생각이었다. 버스 역 쪽에 거의 다 왔을 무렵 그는 근처의 음습한 골목에 들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매우 오랜 기간 매일매일 적지 않은 양의 담배를 피워왔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고 생각했던 것은 옛날이고 지금은 오히려 태연히 담배를 피운다. 이거라도 피워야 스트레스를 덜 받지 하면서. 사실 그는 금연 시도도 꾸준히 해왔던 것이다. 몇 번의 금연이 실패한 후 그는 세상에서 억지로 막거나 변화시키는 거는 불가능하다고 확신해버렸다. 사실 그런 것이 가능하고 불가능하고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그의 능력 밖의 일이었지만 단지 그렇게 믿어버림으로써 살면서 판단해야 할 생각 중 한 가지를 일찍 끝내버릴 수 있었고 또한 무언가를 위한 노력을 안 할 변명을 자기 타협적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담배가 줄어드는 모습과 자신이 뱉어내는 연기를 바라보면서 허무함과 허탈함을 동시에 느꼈다. 언젠가 담배를 자신만만하게 어깨 피고 피웠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슬프게도 잘 안다. 그냥 세상은 아무 의미 없고 그럼으로써 자신도 큰 의미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그는 자신의 꿈을 믿었지만 지금은 그냥 하게 되었으니 하는 꼴이라고 생각하면서 담배를 들이마시고는 연기를 뱉었다.
이윽고 그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졌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지에 관한 그의 소신 같은 건 이미 사라진 이후였다. 그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 무엇도 그에게 기운을 차려 행동하게 만들지 못할 것 같다. 그는 이전의 우울함 또한 잊어버렸는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자기 비하 같은 건 너무 많이 해버렸다고 생각한 듯 아무리 자기를 업신여기고 비하해보았자 나에게 돌아오는 건 그다지 없다는 심정이기도 하였다. 그는 지루함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아무것도 없어졌다고 느끼는 지금의 순간이 그 자체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엇도 그를 급하게 만들지 않았고 그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그는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는 그의 인생에 대해 어느 정도 무덤덤 해지고 무감각해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욕심 같은 것들이 사라지니 부담도 없어졌다. 부담이 없어지니 평소 느끼던 책임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듯했다. 그는 그가 느끼는 바람과 혼연일체 되는 것 같았다. 그냥 그런 것이었다. 기쁘기 위해 무얼 하는 것도 아니고 슬프기 위한 것도 더욱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냥 살아있는 것뿐이니, 내가 태어나는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던져졌기 때문에, 나는 나의 존재 자체로 만족하며 사리라.
생각해보면 나는 그다지 욕심이 뛰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욕심은 어딘가 부족했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으면 이렇게 저렇게 회피하는 게 다반사였다. 나는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부분에서만 열심히 살았고, 나는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다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다방면으로 나를 분석하고 쪼개어 자기 계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필요가 없다면 나의 노력을 가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냥 그런 사람. 별 볼일 없는 사람이고 딱히 볼일도 없는 사람이다. 나의 가치. 나의 가치는 누가 정해주나. 나는 이런 생각 따위를 하는 모양새를 보니 딱히 가치 있지도 않은 것 같다. 나의 이런 말들 또한 사실 자기 비하인가? 그럴지도 모르지. 어쩌라고. 어쩌라고!
나는 좋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은가.? 나의 인생의 목표, 비전은 무엇이지? 나는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사는가? 나는 나는 나의 인생 목표.
그는 생각하기를 잠시 머뭇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