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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by 와이와이






사실


요즘 이 몇 달은 사내가 사내 자신을 겁쟁이라고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 자신이 아등바등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동시에 사내 나름의 노력이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은 사내 인생의 목표와 방향성이 한층 희미하게 느껴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한 달 동안이나 방안에 누워서 허송세월하였다. 이전의 그였다면 그런 시간이 아까워 한시라도 사서 고생하는 게 특기였던 것 같았는데, 지금의 그는 그러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사내는 방구석에 웅크린 채로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미워하기도 했다. 사내는 조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그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이 든 분야에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과거의 사내는 불투명한 미래를 열심히 그렸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무슨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반면 현재의 사내는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워 그리기를 망설여 하고 있었다. 사실 사내 또한 자신의 이러한 면면을 잘 아는듯했다. 그는 이렇게 누워 이러한 생각들을 했다. 마치 눈보라 속을 해 메이다 동굴에 들어간 이후 그곳에서 나와 다시 출발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동굴 안에서 가지고 들어간 식량을 모두 먹은 후에도 눈보라가 무서워 나오지 못하고 굴속에서 죽어버린 사람이 방 안에 처박힌 자신이라는 생각마저 했다. 사내는 미래를 생각하지 말자 과거를 생각하지 말자 못 한다고 생각하지 말자를 반복해 머릿속에 되 내였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될 때마다 어제 돼냈었던 것 중에서 머릿속에서 생각하지 말자는 것들만이 선명해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섬뜩 놀라워했다. 사내는 자신의 정신에 병이 들어버린 것이란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 느꼈던 이유는 매일 정신 사납고 수많은 생각을 하며 고통을 느꼈던 그가 사실은 온종일 몇 날 며칠을 평안히 누워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그의 머릿속에서 조금씩 커져가는 종양처럼 변해 그를 괴롭히는 또 하나의 생각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가득 차있었고 그 생각들은 모두 상당한 크기의 종양이 되어 그의 머리를 깨질 듯하게 만들고 있었다. 동시의 그의 몸과 사지는 빨래가 건조되어 널려있는 모양으로 이불 밑에서 힘없이 늘여져 있었다. 움직일 필요가 없었던 몸은 동면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오랜 시간 동안 누워있던 사내의 몸은 100%로 충전이 된 후에도 계속 충전기가 꽂혀있는 핸드폰처럼 매트리스 위에 놓여있었다. 사실 사내는 생각들이 만들어낸 두통 때문에 누워서도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사실은 서서히 몸의 기능을 상실시키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무엇이 사실이고 사실이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이러한 고민이 정말 그에게 필요한 것들인 지에 대해선 아무도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사실 그는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그는 그가 사실은 이전에 생각해왔던 그 자신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사내는 그러한 사실들을 갖고 기뻐했다. 무려 한 달 동안 그가 누워서 깨달은 사실이란 자기 자신이 이전에 생각해왔던 그 자신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과 그 때문에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내는 기뻐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세워진 몸은 머리가 이전과 같지 않음을 깨닫고 실망하여 다시 누워 자빠졌다. 사내는 그 사실도 모르고 자기가 사실을 알아냈다는 기쁨에 취해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고 다음 날이 될 때마다 그가 알아낸 사실은 그의 가슴속 깊이 새겨졌다. 얼마 안 있어 사내는 그의 몸이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 없고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는, 누워만 있을 수 있는 상태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이런 것을 원한 게 아니었다고 눈물을 흘렸지만, 눈물과 상관없이 그의 몸은 방전된 핸드폰 마냥 침대 위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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