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워 침대맡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 침대를 보니 내가 누웠던 흔적이 생생히 남아있었다. 강아지가 누웠다가 떠난 자리가 따뜻한 것처럼 내가 누웠던 자리에도 온기가 남아있었다. 정신 차리기 위해 억지로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질을 했다. 그러곤 책상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매만지고 있었다. 어느새인가 의자의 냉기가 사라진 게 느껴졌다. 침대를 뒤돌아보니 나의 흔적이 남은 채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아니 이미 식은 것처럼 보였다. 한동안 같은 자리에만 있었더니 몸이 뻐근했다. 마침 오늘은 날씨가 맑은 것 같아 외출하기로 했다. 별로 갈 곳도 없고, 밖에서 무언가 할 거리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집에만 있었다가는 제정신이 아니게 될 것 같았다. 다시 욕실에 들어가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밖 온도에 맞춰 옷의 구색을 갖추었다. 나는 그날그날의 옷을 입을 때 나만의 방식이 있었다. 우선 바깥 온도를 체크한 후 그에 맞춰 어떤 종류의 옷을 입을지 결정한다. 그리고 의상 전체의 색을 고려한다. 너무 춥지 않게, 너무 덥지 않게, 너무 색이 많지 않게, 색 조합이 나쁘지 않게 고민하면 그 날 입을 옷이 대강 정해진다. 나에게 세부는 그 이후의 문제인 것 같다. 아무튼, 오랜만의 외출이었지만 이러한 나의 방식은 여전히 내 몸에 남아있어 어렵지 않게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오늘은 상의와 신발, 가방을 모두 검정으로 맞추고 청바지를 입어 포인트로 삼았다. 이런 식의 코디는 특별히 입을 옷이 생각나지 않을 때 정말 좋은 방식이었다. 종종 ‘너무 이런 식으로 입고 다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지만 그러다가도 어느샌가 옷에 골치를 싸매는 게 지겨워져 그냥 입어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어차피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다. 사람의 타인에 대한 호기심도 금방 꺼져버리는 불씨 같다. 어차피 어느 정도 이상의 관계가 아닌 한 그들은 타인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집 밖으로 나섰다. 밖은 집안보다 체감 온도가 낮았고 오히려 그래서 더 외출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고 햇살이 피부에 닿았다. 집 안의 공기와 빛이 정적이고 느리다면 밖의 공기와 빛은 동적이고 활기찼다. 안과 밖의 다름이 너무 뚜렷하게 다가오자 나는 순간적으로 온몸이 활짝 피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도 얼마 안 있어 피곤함에 잠식되어 버렸다. 너무 오랫동안 집안에만 틀어박혀서인지 나의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팔다리가 금세 지쳤다. 다리에 젖산이 폭설이 내린 것 마냥 쌓였고 몸에선 마른 땀이 나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의 외출은 집 앞 5분 거리에서 끝났다. 나는 다시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극심한 슬픔과 외로움에 잠겼다. 바지를 벗고 책상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차가왔다. 아침보다 더 차갑게 식어있었다. 너무 춥고 힘들어 얼른 씻고 다시 누웠다. 이불을 감싸고 돌아누워 벽을 봤다. 차가운 벽. 벽은 나를 위로해주는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벽에게 기대할 것이 없어진 나는 벽으로부터 돌아누웠다. 서늘한 공기가 방을 감쌓고 나는 방안에 고여있는 공기를 바라보았다. 방은 그대로인데 나만 바뀌었구나. 나는 한숨과 탄식이 섞인 듯한 생각을 했다. 내가 뭔데 슬픔과 외로움을 느껴. 내가 뭐라고. 평소 같았으면 자기비하로 이어질 수순인 이러한 생각은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왜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지? 이상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지겹도록 누워있었지만 무언가 새로워 보이는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계속 펼쳐보고 싶은 욕구가 순식간에 끓어 넘쳤다. 오늘은 오 분이었지만 내일은 조금 더 오래 나가보자. 옷은 신경 쓰지 말고 나의 상태에만 집중하고 다시 나가보자. 나의 마음은 오래간만에 이상하게 불타올랐고 큰 부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잠을 청하고 내일을 맞이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마음 한 켠에서는 나의 오래간만인 의지에 대한 의심이 존재했다. 그리고 의심을 의식하니 점점 의심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도리라는 생각으로 나의 결정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여기에서부터 좌절하면 나는 앞으로 아무것도 못 해낼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기에 집 밖 5분 이상의 외출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나의 한심함을 안다.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런 생각들을 하는 나는 자신에게 증오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곤 다시 생각해버렸다. 이게 다 외출했기 때문이다. 집 밖에 나가지 않았으면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고 평소처럼 누워있었을 텐데. 갑자기 후회되었다. 누워있지 못한 그간의 20분이 너무 아쉬웠다. 나는 마음이 다시 외출하지 않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자신의 결정을 번복한다는 일로 혼자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나의 머릿속이 다시 정신 사납게 복잡해지고 있다는 게 싫었고 이제 다 포기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먹는 순간 나는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침대와 이불은 이미 따뜻해져 있었고, 익숙해진 포근함에 취해있는 것은 무서울 일도 없을뿐더러 너무나 편해서 영원히 여기에 잠들고 싶었다.
그날 밤 꿈을 해 메이던 그는 원인 모를 사인으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