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1.

by 와이와이

2021.12.31.


마지막 날. 21년도 끝나네. 19년도에 대학원 입학할 때만 해도 21년도에 대해 상상한 나의 모습은 지금과는 달랐다. 전 여자 친구는 벌이가 좋다. 피곤한 눈으로 일어나 인스타 스토리를 봤는데,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놓은 이미지를 발견했다. 과연 돈이 꽤나 있어야 생각해볼 법한 것들이었다. 나의 21년 마지막 아침은 열등감으로 젖어 시작한다.

저녁이 되면 이런 글, 저런 글 적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침엔 영 그게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 밤의 예민함이 아침까지 이어지는 느낌이다. 아마 불안감,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오늘의 계획에선 공부의 양을 상당히 늘려놓았다. 아마 여태까지 방학 때 본 것보다 더 볼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불안감이 이유겠지. 다만 아침시간을 최대한 부지런하게 이용하는 게 목표다. 계속 앉아서 목록을 하나씩 줄이고 밤에는 일찍 쉬는 걸 목표로. 일찍 쉰다는 게 놀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빨리 자고 싶어서. 방학 때 수면 패턴을 좀 굳혀놓고 싶었는데, 잘 안 되었던 것 같다. 남은 방학 동안에라도 잘 만들어 놓아야지.

‘전 여자 친구는 진작 잘 번지 오래 되었는데, 나는 그것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버는 일로 인제서야 시작하다니.’란 생각이 얼마나 멍청한지 잘 알면서도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나는 확실히 자존감이 높지 않다. 자존감이 높을 때에는 타인의 인정이 뒷받침 될 때인 것 같다. 그게 문제다. 내가 나를 온전히 알아주지 못하는 점이 나의 한계다. 자존감을 올리는 법에 대해 고민해봐야 하겠는걸? 이건 적어놓아야겠다. 작은 성공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자존감이 올라간다는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커버린 건가.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이 마음의 6.5할은 차지하고 있는 것만 같은 아침이다. 오늘을 부지런하게 산다면 마음이 좀 나아질까. 그러길 기도하는 마음이다. 9분.

오늘은 계획을 잘잘 해내고 있다. 우선 계획의 틀이 마음에 든다. 중요한 것들을 우선순위로 앞에 집어넣어 집중력 있을 시간에 몰입해서 보았다. 중간마다 글쓰기나 운동같이 숨 돌릴 활동도 넣어 계획을 지키면서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오전에는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한 게 큰 효과를 보았다. 뿌듯함, 성취감도 생기도. 방학 중 가장 보람찬 순간이 아닐까 싶다.

여러 곳에 돈을 쓰고 카드빚이 생겼다. 외로 학자금대출이 있고 대학원 때 깼던 주택청약도 다시 신청해야 한다. 월급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하면 적은 돈의 투자를 해야 할지, 혹은 적금을 들 지도 새롭게 생긴 고민이다. 간단히 말해 돈이 들 곳이 많다는 거다. 반면 나는 확실히 여자를 좋아한다. 여자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넘친다. 계속 카톡 주고받는, 친구 이상으로 시간과 마음을 들일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엔 장애물이 두 가지. 첫 번째, 내 할 일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 두 번째, 앞서 언급한대로 돈 들어갈 곳이 많다는 점. 가장 급한 건 빌린 돈부터 갚는 거다. 밖으로 세는 구멍을 막고 모아야 한다. 늦은 취업이기에 모아 놓은 돈도 꽤 적다. 이런 와중에 연애를 하고 싶다느니, 미술에 미련이 남았느니 하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다. 어느 새인가부터 되게 와닿는 말이 ‘네 주제를 알라.’다. 이게 얼핏 비꼬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 메타인지를 하란 얘기다. 내가 나를 멀리서 보았을 때, 나는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너무 많은 것들에 소홀했던 것 같다. 쓸데없는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기도 했고. 차라리 그 시간에 식당에서 직원으로 일했어도 지금보단 괜찮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욕구를 줄여야 한다. 그냥 하고 싶은걸 계속 생각하기엔 나이가 적지 않고 돈이 없다. 차라리 일을 하면서 다른 돈 벌 수 있는 능력을 마련하는 게 낫다. 그래서 부업을 생각하고 있는 거고. (이것도 근데 학원에 얼마나 적응하는지에 따라 진도가 달라질 것 같다.) 혹시 모른다. 일 시작하면 적성에 맞을지, 다른 일들에 한 눈 팔 정신이 없을지. 방학 시간이 길게 주어지면서 갑작스럽게 붕 떠버린 상황 때문에 더 연애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떠오르는지. 솔직히 나도 안다. 연애에 꼴아 박을 시간과 돈, 정성이 부족하단 걸. 물론 자연스럽게 생기는 인연이야 걷어 찰 생각은 없다. 하지만 굳이 만드는 건 멍청한 상황이라는 것. 학생 때에는 연애를 할 수 있는 진입 문턱이 낮았는데, 결혼하는 친구들이 생기는 나이가 되니 내가 얼마나 뭐 없는지, 문턱에 못 미치는지 보이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드는 낮이다.

11시 22분. 11월 22일이 동생 생일인데, 공교롭게도. 한 시간도 채 안 남았다. 나의 서른! 이제 서른이네. 정말 서른은 절대 안 올 줄 알았다. 내가 생각한 20대 후반도 아니었고 서른을 맞이하는 모습도 아니다. 그렇게 서른은 찾아왔다. 오히려 나의 감정과 상관없이 무덤덤하게 찾아왔다. 서른이 되는 게 싫으니까 오늘은 그냥 금요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그게 또 잘 안 된다. 막 너무 싫다, 이런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그냥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든다. 30대를 생각하니 여태까지 인생에 대해 생각했던 관점이 변하는 기분이다. 20대 때에는 하고 싶은 것을 찾고 매달리는 것만이 답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뀌었다. 차선책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나중에 또 바뀔지 모르겠지만. 남의 인생을 따라 할 수 없는 게 내 삶인 것 같다. 가능한 자신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맞추어 살아가면 그게 알맞은 게 아닐까.

지금 생각나는 내년의 목표. 퇴원률 낮추기, 학원 수업 적응하기, 부모님 만족도 올리고 유지하기, 효율적으로 일하기, 우선순위로 계획표 짜기, 빚 갚기, 주택청약, 좋은 금융 상품 알아보고 하나는 꼭 해보기, 푼돈이라도 꾸준히 모으기, 품위유지, 꾸준히 조금이라도 운동하기, 부업 공부하기, 책 꾸준히 보기, 그림 계속 그리기, 소중한 사람들에게 베풀기, 멘탈 단단해지기,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기, 게을러지지 말기, 영화도 간간히 보기,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예쁜 말 쓰기, 일기 꾸준히 쓰기, 공부 꾸준히 하기.

대충 생각나는 것들이다. 정말 많네. 요약하면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기다. 단순한 것 같은데 참 어렵다. 말이 쉬운 걸지도.

감정에 휩싸여서 내년 이야기를 하는 건 그만. 오늘은 계획을 참 잘 지켰다. 사실 할 게 참 많아서 가능할까 싶었는데, 완수했다. 거의 완벽. 대단하게 나를 꽉 잡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조금씩만 참고 했을 뿐인데 됐다. 신기하기도, 뿌듯하기도. 이 넉넉한 밤중에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쓰는 시간이 참 행복하다. 28살, 29살은 진흙탕 안에서 빠지지 않는 발을 옮기는 기분이었다. 30살엔 힘들어도 앞으로 나간다는 느낌을 체감하는 한 해가 되었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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