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와 미니멀라이프

덜어내는 삶에서 다시 나를 만나다

by 느린꽃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이 두렵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마자 밀려드는 피로, 이유 없이 무겁게 가라앉는 마음,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열감.
마흔아홉의 어느 봄, 내 몸은 작은 신호들을 보냈고, 나는 처음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냥 피곤해서 그래.’
‘하루 이틀 더 자면 나아질 거야.’
‘이 나이쯤 되면 다 그렇다더라.’

하지만 그런 식의 위로는 오래가지 않았다.
잔잔한 물결 같던 변화는 어느새 거센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바쁘게 달리기만 하던 삶에서, 나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이건 ‘갱년기’라는 삶의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었다는 신호라는 것을.


비워야 보이는 것들


갱년기는 몸의 변화만이 아니었다.
그건 삶의 물결이 다시 방향을 바꾸는 일이었고,
무언가를 채우기보다 비우는 법을 배우라는 자연의 요청이었다.

하루는 옷장을 열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이 많은 옷들 앞에서 늘 입을 게 없을까?”
책장에는 읽지 않은 책이 빼곡했고, 주방 서랍에는 쓰지 않는 소스, 일회용품 젓가락들이 넘쳐났다.
텅 빈 마음을 무언가로 채우려 애썼던 지난 시간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날 나는 결심했다.
내 몸이 불편해지고, 마음이 버거워지는 이 시기에
오히려 더 ‘덜어내는 삶’을 살아보자고.
이건 어쩌면 두려움에 짓눌린 내가 스스로를 살리는 작은 시도였다.

미니멀라이프는 거창한 변화가 아니었다.
서랍 하나를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약, 쓰지 않는 펜, 입지 않는 옷,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손에 쥐고 나서야
비로소 내 안의 어떤 감정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물건을 버릴 때마다 마음의 먼지도 함께 쓸려나갔다.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을 구분하는 과정은
곧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나를 위한 공간, 나를 위한 시간


무언가를 덜어낸 자리에 나는 ‘나’를 놓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 해 질 녘의 햇살이 들어오는 식탁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

더는 누구의 눈치도, 세상의 속도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갱년기란 내 몸이 나를 다시 돌보라고 보내는 편지 같았다.
예전에는 가족을 챙기느라, 일을 하느라
내가 아픈지도 몰랐고, 내가 지친 것도 모른 채 버티기만 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오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견뎌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외롭고 고단한 일이었는지도.


다시 나를 사랑하는 연습


덜어낸 삶은 이상하게도 더 풍요로웠다.
그건 외부에서 채워지는 것이 아닌,
내 안에서 피어나는 따뜻함이었다.

갱년기라는 말은
‘지나간 여성’이 아니라
‘다시 나를 만나는 시기’라고 믿고 싶다.

나는 이제 아침에 거울을 볼 때
주름진 내 얼굴을 조금은 다정한 눈으로 바라본다.
힘겹게 하루를 버텨낸 내 어깨를
말없이 쓰다듬어주는 마음이 생겼다.

이따금 숨이 막히는 날엔 그냥 쉰다.
바닥에 누워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조용한 동네를 천천히 걷기도 한다.

이제는 안다.
갱년기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미니멀라이프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작지만 단단한 나의 계절


사계절 중 가장 고요하고 단단한 계절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지금’일지도 모른다.
비워낸 공간만큼 내 안에는 햇살이 들고,
덜어낸 시간만큼 나를 위한 숨결이 채워진다.

이 계절의 나는 서툴고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묵묵히 나를 지켜나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나는 오늘도 내 마음을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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