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깊게, 그리고 아름답게 살아보기로 했다
버킷리스트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조금 낯설었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써보라는 말에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봤다.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해야만 했던 일들’로 가득했던 지난 시간들.
아이를 키우고, 교실을 지키고, 가족을 챙기느라
정작 나 자신은 버킷리스트조차 떠올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조용히 피어오르던 마음의 목소리가 나를 흔들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도 돼."
그 목소리를 따라 조심스레 적어 내려간 나만의 리스트.
그것은 욕심이 아니라 오래도록 미뤄두었던 ‘나를 향한 약속’이었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준다.
고요한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에 컴퓨터를 켜서
어제의 감정 한 조각, 지나간 기억 하나를 꺼내 쓴다.
그 속엔 어설픈 문장도, 울퉁불퉁한 마음도 있지만
그것이 모이고 쌓이면 결국 하나의 ‘나’가 된다.
‘매일 쓰겠다’는 다짐은 단순히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다.
살아온 날들을 곱씹고, 놓쳐버린 감정들을 건져 올리는
하루 한 끼의 따뜻한 마음 밥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들이 모여 책 한 권이 된다면
그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당신도 괜찮아요.”라고,
나의 문장들이 말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거울 앞에 서면 늘 마음이 먼저 움츠러든다.
한때 단단했던 나의 몸은 어느새 말랑말랑해졌고,
바지 위로 살짝 올라온 뱃살이 시선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시작했다.
‘날씬해져야지’라는 결심보다,
‘내 몸을 사랑해줘야지’라는 다짐으로.
주 4일, 가까운 뒷산이라도 걷는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흐를 때면, 마음까지 가벼워진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무거워질수록
나는 나를 더 단단히 붙잡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언젠가는, 거울 앞에 선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참 예쁘다. 뱃살 없이도, 마음 가득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당당할 것이다.
아울렛 여성복 매장의 마네킹 앞을 지날 때
문득 나도 저 옷을 입고 당당히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체형이 바뀌고 살이 찌니
예쁘다는 감정보다는 ‘맞는 옷을 찾기’ 바빴다.
그때 알았다.
옷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를 지탱하는 몸이 중요하다는 것을.
복지센터에서의 운동은 내 몸을 다시 짓는 과정이다.
댄스곡에 맞춰 신나게 다이어트 댄스를 추고,
무릎을 굽히고 천천히 일어설 때,
나는 내 삶을 다시 조율하고 있다.
옷장 속 오래 묵은 원피스도
어느 날 갑자기 고급스럽게 어울리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나는 웃으며 생각하겠지.
‘내가 나를 사랑하니까, 모든 옷이 나를 사랑해주네.’
카페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면
가끔은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선생님도 아닌
오롯이 ‘나’라는 사람이 된다.
그런 시간들을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들고 싶다.
익숙한 동네의 골목길이든,
조용한 시골 마을이든,
그곳에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마음에 남는 풍경을 손끝으로 그려본다.
어반스케치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내가 멈추어 바라본 시간이고,
놓치고 싶지 않았던 감정의 기록이다.
언젠가는 그 작은 노트들을 모아
작품 전시회를 열고 싶다.
비록 대단한 화가는 아니어도,
그림 하나하나에 담긴 삶의 조각들이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유럽.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먼 곳으로 떠오른다.
돌길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작은 골목마다 펼쳐지는 역사,
그리고 그곳을 거니는 나.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커피를 마시고,
거리의 악사 곁에서 사진을 찍고,
하루의 끝에 작은 호텔 창문을 열고 노을을 바라보는 순간.
그 여정을 브런치 스토리에 남기고 싶다.
사진 속의 풍경과 함께,
그날의 공기, 냄새, 감정을 문장으로 기록하고 싶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나도 가보고 싶어요, 당신이 다녀온 그 마음의 여행지에.”
이 모든 것들은 단번에 이루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매일 하나씩, 조금씩 살아내다 보면
그 길 끝에서 분명히 더 따뜻하고 충만한 나를 만나게 될 거란 걸.
늦게 핀 꽃이 더 깊은 향을 품듯이,
지금부터의 나도 그렇게 피어날 것이다.
덜 화려하더라도, 더 나답게.
그게 내가 꿈꾸는 인생의 마지막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