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의 계절, 소녀와 여인의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피어간다.
내 나이 쉰.
사계절로 치면 초가을쯤 왔을까.
아니면 늦여름의 끝자락일까.
아직 완전히 익지 않은 햇살과, 서늘한 바람이 공존하는 그 사이.
나는 지금 그런 시간 속에 서 있다.
큰아이에게 나는 초가을의 엄마다.
스무 살이 된 딸은 세상을 향해 발을 뻗고,
나는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살며시 바람막이가 되어준다.
고등학생이 된 둘째에겐
조금은 단단해진, 그러나 여전히 따뜻한
9월의 볕 같은 엄마이고 싶다.
그런데 막내, 열 살 아이 앞에 서면
나는 다시 여름이 된다.
아이의 웃음 한 조각에 내가 먼저 웃고,
손을 잡고 달리기라도 하면
이상하게도 내 심장도 따라 뛴다.
그 아이가 있어 내 계절은
완전히 가을로 넘어가지 못한 채,
아직은 여름의 열기를 품고 있다.
종종 나도 모르게 멍하니 앉아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하며, 어떤 나로 나이 들어가야 할까.
누군가는 쉰이 되면 다 정리되고 평온할 거라 했지만,
나는 지금 사춘기 소녀처럼 흔들리고 있다.
감정은 예민하고, 하고 싶은 일은 넘쳐나고,
또 어떤 날은 모든 게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글을 쓰고 싶다가도 금세 지치고,
운동을 하려다 이불 속으로 도망가고,
하루에 백 가지의 생각을 쏟아내다가
결국엔 “그냥 잘 살자”로 정리한다.
남들이 보기엔 ‘중년의 여인’이라지만
내 마음속엔 아직도 여고생 시절의 나,
그 솔직하고 날카롭고 빛나던 내가 살아 있다.
어쩌면 나는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자라나는 중인지 모른다.
그러다가도 다시, 나는 나를 다잡는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자.”
소박하지만 가장 단단한 다짐이다.
멀리 있는 꿈보다 오늘 할 일을 해내고,
거창한 성취보다 작은 기쁨을 곱게 안는다.
아이의 책가방을 준비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막내의 수다를 웃으며 듣고,
텅 빈 거실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나를 쉬게 하는 것.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지탱한다.
그리고 그 틈 사이사이
나는 꿈을 적는다.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천천히 나를 돌보고, 아무도 모르게 여행을 꿈꾼다.
나이 들수록 삶은 정리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
해야 할 일은 줄었지만,
하고 싶은 일은 많아진다.
삶을 꼭 쥐기보다
조금 느슨히 잡고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어떤 날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나의 삶이 사계절 중 어디쯤일까,
그것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때론 한 사람 안에도 여러 계절이 공존한다.
나는 큰아이 앞에선 가을이 되고,
막내 앞에선 여름이 되고,
스스로를 바라볼 땐
그저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건 계절이 아니라,
그 계절을 어떻게 살아내느냐다.
오늘도 나는 조금 흔들리며
조금 설레며 하루를 걷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느 계절에 서 있든,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나로 충분하다.
쉰이라는 숫자에 갇히지 않고,
마음속 여고생과 중년의 내가 함께 웃으며
앞으로의 날들을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때의 나는 참 아름다웠다.
조금 불안했고, 많이 고민했지만
매일을 성실하게 피워냈던
늦여름의, 초가을의, 나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