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열세 번째 편지 - 시간

여름밤

by 여름밤의 테드
시간


어느 날 문득, 창밖을 바라보며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봄의 따스한 햇살이 여름의 뜨거운 열기로 변하고, 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겨울의 차가운 눈으로 이어지는 그 순간들.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그 속에서 우리의 삶도 함께 변해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웃음소리, 청춘의 열정과 설렘, 중년의 성숙함과 안정, 그리고 노년의 지혜와 평온함. 우리의 인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색깔로 물들어갑니다. 그 색깔들은 때로는 밝고 화사하지만, 때로는 어둡고 무겁기도 합니다. 그 모든 색깔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기도 하고, 빼앗아가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주기도 하고, 그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시간의 속도에 압도되어 혼란스럽고 두렵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경험들이 모여 우리가 누구인지를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그 경험들을 통해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러니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변해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변하지 않으면 좋을 것들이 변하지 않도록 지켜내고, 변해야 마땅한데 변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 변할 수 있도록 다그치며 매 순간을 진심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시간이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가 아닐까요?




테드님, 안녕하세요. 여름밤이에요. 잘지내셨나요?

평일에는 업무에 치이고 퇴근 후에는 짧게나마 영어공부하랴, 독서모임 책 읽으랴 다소 정신없는 하루들을 보냈어요. 아팠던 이후로 음식이나 음주도 최대한 조심하면서 건강관리에 애쓰고 있는 요즘이에요. (심지어 커피까지 안마시고 있어요!) 제가 호되게 당하긴 했나봐요. 그런 의미에서 테드님과 동생분 이름이 너무 멋져요. 이름따라 간다는 말이 있듯이 그래서 더 건강한 삶을 살고 계신지도 모르겠어요. 테드님의 3월은 어떠하실지 궁금하네요. 3월도 건강해요 저희!



생일은 이미 지났지만 너무나도 축하드려요. 마침 제가 편지를 보낸 날이 테드님의 생일이었다니 진심으로 놀랐어요.. 그렇게 좋은 날인줄 미리 알았다면 케이크 사진이라도 함께 보내드렸을텐데 말이에요. 맛있는 케이크는 드신거죠? 생일을 행복하게 보내신 것 같아 덩달아 기분이 좋아요. 테드님의 생일 이야기에 문득 어릴때 기억이 떠올랐어요. 제 생일은 여름인지라 여름방학과 생일이 겹쳐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제대로 하지못해 서운했었거든요. 테드님 생일도 2월이면 겨울방학이셨을텐데 어떠셨나요? 그때의 저는 괜히 어린 마음에 생일과 방학이 겹치는 것에 대해 억울한 마음이 컸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방학과 생일은 최고인데 말이에요.

그 중 대학교때의 방학은 저에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다고 지난 편지때 말씀드렸었는데 다른 선택을 한 것 뿐, 정답을 고른 것은 아니라는 테드님의 말에 큰 위안을 얻었어요. 저는 마냥 그때의 제가 한 선택에 대해 후회를 했는데 테드님이 이야기 해주신 내용을 따라 생각해보니 그때여서 가능한 경험들을 했겠구나 싶더라구요. 테드님도 그 상황 속에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고 저도 그랬던거겠죠? 자기전에 누워서 어느덧 까마득해진 그 시절의 저를 추억하며 그리운 마음이 들었어요.



테드님이 보내주신 영상링크도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영상 중반부쯤을 볼때는 내 삶이 얼마 안남은 것 같다는 생각과 부모님, 친구 등과 함께 보낼 남은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게 느껴져 슬퍼지기도 했는데요, 영상을 다 보고난 후에는 하루하루를 정말로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더라도 현재 제 삶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을테니깐요. 삶의 끝에 가서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제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했구요.



최근 봉준호 감독의 ‘미키17’ 영화가 개봉했길래 보고 왔는데 죽음에 대해서 또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어요. 혹시나 안보셨을 수 있으니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자세한 스토리는 말하지 않을게요! 다만 영화소개에도 쓰여있듯이 주인공 미키는 반복적으로 죽는 설정인데 죽음과 사랑에 대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더라구요. 죽는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많은 생각과 고민을 떠안고 살지만 죽게되면 이러한 것들이 뚝 끊기게 되는거잖아요? 제 삶이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좋을만큼 불만족스럽지도 않아 죽음이 많이 무섭기는 해요. 다들 그런 마음일까요? 아직 못해본 것도 너무 많아서 인가봐요.



그래서 저는 조만간 발레를 한 번 배워볼 생각이에요.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지 싶으시죠..? 한 운동을 너무 진득하게 못하는 편이어서 많이 민망하기도 해요. 제가 이전에 보냈던 편지 중에 킥복싱을 시작한다고 지나가듯이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해보니까 저와 잘 안맞는 운동이더라구요,,

운동 자체는 재미있긴한데 제 성향이랑은 조금 안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빠르게 다른 운동으로 갈아타볼 예정이에요. 이전부터 계속 발레를 배워보고 싶었던지라 한 번 도전해보려고 해요. 유연함이라고는 1도 없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다리를 찢을수도 있지않을까요!.. 아득하긴 하지만 한 번 해보려구요! 하나의 운동을 오래 하시는 테드님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심지어 크로스핏 대회까지 준비하시다니.. 크로스핏 대회에서 부디 좋은 결과가 있으시길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대회에 나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어떠실지도 궁금하기도 해요. 이것저것 얕게 운동을 경험하고 빠져나오는 저와는 다르시다보니 더 대단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불안을 이기는 철학의 완독 정말 축하드려요. 잊지않고 책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구절도 함께 써주셨는데 어쩐지 지금 마음에 더 와닿더라구요. 테드님 덕분에 그 책이 다시 생각나 스토아 철학에 관한 다른 책을 더 읽어보려고 해요. 불안을 이기는 철학을 읽을 당시의 저는 순간순간 불안함이 상당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왜 불안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나요. 시간이 정말 약인가봐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구요! 테드님의 말씀처럼 이전의 저는 저에게 기회와 시간을 주지 않았어요.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찾아가고 이것저것 기회가 닿으면 해보고 있지만 취업준비~취업초기는 제게 슬펐던 기간이라 그런지 전혀 그런게 없었거든요. 이때의 이야기는 조금 더 정돈이 된다면 말씀드릴게요!



테드님의 집 한 켠의 바가 정말 멋져서 감탄했어요. 술을 잘 알지못하는 저이기에 자신의 취향으로 가득 담긴 술병들을 세워둔 걸 보면 정말 멋있어 보이더라구요. 추천해주신 미도리사워는 아주 예전에 한 번 먹어봤던 기억이 나요! 준벅 칵테일도 찾아보니 상큼하니 너무 맛있어보여요. 두 개 다 다음번에 바에 놀러가게 된다면 한 번 먹어봐야 겠어요. 제가 최근에 읽은 에세이책의 내용 중 마침 바텐더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어서 더 반갑게 느껴졌어요. 작가는 바텐더를 바를 텐더(tender)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긴 테이블에 늘어앉은 사람들이 잔술을 기울일 때 그 마음을 뭉근하게 풀어주어 바의 분위기에 슬며시 녹아들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칭하더라구요. 저는 바를 자주 가본 편은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영화에서 봐도 그렇고 테드님 말씀도 그렇듯이 혼자 바에 앉아 술을 기울이는 것이 어쩐지 진정한 어른같이도 느껴지고 고독해보이기도 해요.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앉아있을까 생각도 되구요. 저도 술맛을 조금 더 알게된다면 언젠가 홀로 바에 앉아 외로운 시간을 즐기게 될 날이 올지 궁금해지기도 해요.



그리고 테드님께서 제가 처음부터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는지 물어봐주셔서 이 부분에 대해 곰곰히 다시 생각해봤어요. 제가 진짜 외로움을 잘 안타는게 맞는지요..! 결론은 저는 외로움을 원래 타지 않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고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는 환경이어서 그랬다. 라고 구구절절 정정합니다! 어릴때는 본가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친구와 함께 자취했었거든요. 그리고 독립한 지금은 여동생과 살고 있어서 생각해보니 제가 오로지 혼자만 살았던 적이 없어요. 누군가가 옆에 항상 있었기 때문에 딱히 외롭다는 생각을 못한게 아닐까 싶어요. 저도 만약 제가 혼자 산다면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어요. 누구보다 외로움에 몸부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섣불리 저런 말을 한 것에 대해 머쓱하긴 하지만 정정을 하겠습니다!



밤이 늦어 오늘 편지는 이쯤에서 마무리를 해볼게요. 첨부해드리는 사진은 제가 오늘 읽은 책중에서 좋았던 부분이에요.

unnamed (1).jpg

이것도 저희가 이야기 나눈 시간과 관련되어 있더라구요. 제가 보내드린 구절의 뒤에서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변해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변하지 않으면 좋을 것들이 변하지 않도록 지켜내고, 변해야 마땅한데 변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 변할 수 있도록 다그치자고. 지금도 흘러가고 있을 테드님의 시간이 제 편지를 읽으시는 동안 조금이나마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그럼 다음 편지에서 날씨만큼 더 따뜻한 내용을 가지고 찾아뵐게요!




25. 03. 09, 여름밤으로부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