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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번째 편지 - 죽음

테드

by 여름밤의 테드
죽음


차가운 바람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앙상한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습니다. 겨울은 모든 것을 잠재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계절입니다. 낙엽은 흙으로 돌아가고, 풀은 뿌리만 남긴 채 잠들고, 심지어 강물조차 얼어붙어 고요함 속에 갇힙니다. 모든 것이 잊혀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 계절에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깨닫곤 합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는 마침표 같습니다. 소중했던 기억들, 따뜻했던 감정들, 삶의 모든 흔적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과 같이, 하나씩 사라지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기억’이라는 작은 불씨가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한, 우리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억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쉽게 꺼질 수 있지만, 한 줄기 바람이 되어 다른 이의 마음에 닿아 다시 밝게 타오를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 친구의 밝은 웃음소리, 사랑하는 사람의 다정한 눈빛… 이 모든 기억들은 삶의 겨울에도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는 햇살과 같습니다. 그 기억들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사랑받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줍니다.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겨울을 넘어 영원의 봄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그 길은 우리가 남긴 발자취가 아니라, 우리가 나누었던 사랑과 따뜻함,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맺었던 소중한 유대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죽음 너머의 영원한 생명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히 느껴집니다.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고, 서로의 존재를 삶의 흔적으로 담아내는 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작은 친절과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하며,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통해 우리를 잊혀지지 않게 하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는 삶의 방향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꽃들은 마치 겨울을 이겨낸 봄꽃처럼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고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향기를 남길 것입니다.




여름밤님 안녕하세요!

이제는 메일을 통해서 인사 드리는 것도 조금씩은 익숙해지는 기분이 드네요. 항상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여름밤님의 편지를 받고 시작했던 이번 주는 정말 좋은 느낌이 가득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이번 한 주도 잘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어요.



가벼운 이야기부터 담아보려고 합니다. 지난 편지에서, 새로운 운동으로 발레를 시작할 결심을 하신 여름밤님의 다짐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작게 미소를 짓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소통한 여름밤님의 이미지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여름밤님의 첫 편지에서는 3개월의 고민 끝에 킥복싱을 시작했다고 하셨던게 떠오르는데요. 당시에는 상당히 활동적이시고, 도전적인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하지만 저희의 편지가 쌓여 올라갈 수록, 처음 들었던 생각과는 약간 다를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즈음해서 발레로 노선을 변경하셨다는 말에, 너무 어울려! 라고 말해버렸어요. 아직 알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발레와는 좋은 사이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어요.



그리고 저와 같이, 하나의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좋지만 다양하게 경험하고 그 속에서 여러가지를 배우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말하고보니, 그간 서로가 살아왔던 삶의 방향이 뒤바뀐 느낌도 드네요. 당장 이전의 편지들에서, 저는 다양성을 여름밤님은 깊이를 선택했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던게 떠오르네요. 역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게 우리네 삶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오늘도 제게 가벼운 통찰과 웃음을 선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서, 여름밤님의 생일이 여름 방학 중이었다는 사실에 저 역시 깊은 동질감을 느꼈답니다. 편지에서 말씀주신바와 같이, 저도 어릴 때는 방학 때 생일 인게 조금은 아쉽긴 했어요. 다만, 당시에는 친구들을 불러 생일파티를 할 여건이 여러모로 안되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차라리 다행인가 싶기도 했답니다. 그렇다보니 생일이 어느 순간부터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던 순간도 있었어요. 그래도 요즘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잘 챙겨주기 시작하면서, 인생에서 나름 특별한 날로 자리 잡아가고 있긴 하답니다. 여름밤은 어떠신가요? 생일축하를 받기 어려워지는 나날들이 길어지면서 어느 순간 체념하고 무던해졌던 제 어린 시절의 모습과 같이, 여름밤님도 삶에서 비슷하게 무뎌지거나 자연스럽게 포기했던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해요. 더불어 여름밤님의 생일이 언제인지도 궁금하네요! 그 때가 되면, 저도 여름밤님이 제게 해주신것과 같이 맞춰서 편지를 써드리고 싶어요. 물론 세상에서 가장 큰 케익 사진과 함께요.



이제 조금은 진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담아 보려고 합니다. 이전에 말씀주신 '미키17'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여름밤님의 이야기를 보고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제 삶을 관통하는 가장 큰 두 가지 키워드가 있어요. 바로 '죽음' 과 '감사' 입니다. 저도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는 평범함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름밤님과 같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심지어 긴 여행을 다녀오기 이전에는 타나토포비아라고 죽음 공포증에 가까울 정도로 죽음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기피하기도 했어요. 자신과 주변인의 죽음만 생각해도 너무 빨리 뛰는 심장과 불안함에 머리가 새하얘지는 경험을 해본적도 있어요. 거기다, 어쩌다보니 장례식을 갈 일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제가 처음으로 장례식을 홀로 다녀온 것은 작년이 처음이었어요. 그 만큼 죽음에서 동떨어져 있으려고 노력 아닌 노력을 하고 살았던 과거가 있었답니다.



그러던 제가 거의 2년 동안 세상을 돌아다니며, 죽음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생각할 계기들이 생기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특히, 인도 바라나시에서 보게 된 장례식과 아르띠 뿌자라는 의식, 그리고 세계 각국의 정말 많은 종교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삶의 유한함과 동시에 반영구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55_바라나시7-2.jpg 뿌자 의식의 일부

혹시, 종교가 있으시다면 실례가 되는 말 일수도 있겠으나 지극히 제 개인적은 의견으로 생각해주시면 감사드릴게요. 저는 앞서 언급한 다양한 종교속에서의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보며, 죽음 이후의 세상은 없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죽음 이후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유한함은 명확한 것이 분명한 이 생을 지속해 나가야하는 이유가 있는가 하는 고민도 동시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제가 찾아낸 저만의 답은 '유대' 라는 것이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오타쿠였던만큼 유명한 만화 대사를 빌리자면, "사람이 진짜 죽는 순간은 바로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 라는 말이 제 생각을 정확하게 관통한다고 믿어요.

26187005_1408554695920322_5934663918440939520_n.jpg 닥터 히루루크의 명대사

흔히 사람을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표현하는 이유와 비슷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무리 많은 부를 쌓고, 깊은 지식을 담더라도 혼자만 있다면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 의미가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마니까요. 첨언이 조금 길었네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유대가 어째서 죽음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느냐하는 것에 말씀드릴까해요. 삶에서 나의 유지를 이어 받거나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제 정신은 죽지 않고 그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어느 문화와 공동체를 보더라도 가족에 대한 가치와 서로를 돕고 살아야 한다는 공헌감에 대한 가치가 꾸준히 살아남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믿고 의지하며,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다른 이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며, 그들의 정신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작은 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반영구적으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겠다 하는 생각에까지 이를 수 있었어요.



여전히 저는 죽음이 두렵고, 친구들에게는 우스갯소리로 구글이 500살까지 살게 해준다고 하니 나는 꽉 채워서 그 때까지 살겠다고 할만큼 장수에 대한 열망도 있답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저처럼 단순히 죽음을 마냥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조금 더 세상을 넓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재로써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언제 떠나도 아주 약간의 후회만 남겨둔 채 갈 수 있게 말이에요.



진지한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다보니, 글이 또 무거워지는 느낌이 드네요. 사실 제 이런 생각을 제가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해본 적이 없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여름밤님과는 이런 제 속 깊이 담겨 있던 생각 마저도 꺼내어 이 곳에 옮겨낼 수 있다는게 정말 엄청나다고 느껴요. 분명 여름밤님이 가지신 선한 영향력 덕분에, 제가 조금 더 진심으로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게 아닌가 하는 믿음이 생겨요. 어쩌면 지난 편지에서 말씀하셨던 바텐더의 진짜 분위기를 텐더하게 만드는 기술은 여름밤님이 가지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마저 드네요.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조금은 분위기를 바꿔서 편안하게 편지를 마무리 해보려고 합니다. 외로움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외로움이면, 무거운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실수도 있을것 같은데요. 약간은 방향을 바꿔서, 혹시 여름밤님은 스스로가 자유롭다는 생각하는 편이 아니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지금까지 주고 받은 글들로 미루어봤을 때, 제가 조금은 더 자유로운 성향에 가깝다고 느끼실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조금 더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그 만큼 외로움을 덜 느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대학생 때 제가 외로움을 느낄 때 중 하나는 무엇하나 마음대로 안될때, 무언가 의지할 곳 하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답니다. 그렇기에,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부정적인 속성에서 벗어나있거나, 또는 쉬이 벗어날 능력을 가진 진정한 자유를 가진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외로움을 상대적으로 덜 느낀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감히 여름밤님을 어떤 사람이라고 판단할 순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저희가 쌓아올려온 시간 속에서 느꼈던 부분은 내면이 단단해지기 위해 끝 없이 노력하는 사람, 그 속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도망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기에, 외로움을 느끼기 어려운 환경에 있어서라는 부분도 있겠지만 본디의 기질이나 성정이 외로움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갖춘 채 살아갈 수 있는 재능을 가진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그런 성향이신지 또는 그렇게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오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크로스핏 대회 결과를 말씀드리려고 해요. 제가 참여한 대회는 돈만 내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세계대회에요. 자신이 운동하는 박스(체육관)에서 심판 자격증을 딴 분이 공통의 과제를 측정해주는 방식으로 기록을 경쟁하는 구조랍니다. 물론 본선을 나갈 실력은 전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왔는지 스스로를 진단하기에는 최고의 장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어요. 중간에 손목을 다쳐서 원하는 결과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그 만큼 너무 힘들었거든요. 중간 중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이 편지에 당당하게 열심히 했노라 남기고 싶어서 끝까지 할 수 있었던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 제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처음 편지를 주고 받았던게, 눈보라가 내리처던 매서운 겨울이었는데 어느덧 온기가 차오르는 봄내음 가득한 계절로 옷을 갈아입는게 느껴지네요. 하나의 계절을 함께 보내며, 조금은 더 친해진듯한 느낌이 드는 여름밤님이 있어 이번주 역시 편하게 한 주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늘 감사드리며, 다음 편지에도 다양한 내용으로 찾아뵙도록 할게요!




25. 03. 16, 테드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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