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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편지 - 마지막 인사

여름밤

by 여름밤의 테드
마지막 인사


커튼콜이 끝나고 객석의 불이 켜졌습니다.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음악은 사라지고, 일상의 빛이 무대를 비추고 있습니다. 막이 내려온 순간, 묘한 허전함이 밀려옵니다. 마치 오랜 친구와 작별하는 것처럼, 가슴 한켠에 묵직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상치 못한 마지막 장면은, 완벽한 엔딩 대신, 약간의 숙제를 남긴 채 막을 내렸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아쉬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허탈함이 마음속을 맴돕니다.



하지만 그 아쉬움 속에서도, 빛나는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함께 웃었던 순간들, 서로를 지지하며 나눴던 따뜻한 말들, 힘든 시간을 함께 극복했던 감동적인 순간들. 그 기억들은 마치 별처럼, 밤하늘을 수놓으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아름다웠던 시간들. 그 시간들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마지막은 예상치 못했지만, 그것이 전체 이야기를 퇴색시키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 아쉬움은 더욱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내는 촉매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아쉬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희미해지겠지만, 함께 했던 아름다운 순간들은 영원히 가슴속에 남아 따스한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가슴에 품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것입니다.




테드님, 안녕하세요!

새해가 밝았는데 그간 잘 지내셨죠? 전 이게 마지막 편지라는 것도 미처 생각을 못했던지라 조금 당황하기도 했어요.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지금은 눈이 시리도록 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지만 또 이러다가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오지는 않을까 싶어요. 저는 오늘 공주로 짧게 여행을 가는데 기차안에서 편지를 작성하고 있어요. 날씨가 맑아서 참 다행이에요!



테드님께서 연초부터 많이 힘드셨다고 하니 멀리서나마 고생하셨다는 말을 건네봅니다. 최근에 책에서 인생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는 구절을 읽었어요.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있대요. 하루가 시작하기전부터 그 날이 벅차고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릴때도 있지만 어찌저찌 하루가 또 흘러가죠. 저도 요새 바빠서 계속 야근중인데 몸이 지치니 마음도 덩달아 지치더라구요.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면 마음의 통증도 끝나있을거라고 믿고있는 요즘이에요. 사람사는게 다 비슷한거겠죠? 저도 테드님의 편지를 퇴근한 뒤에 읽었는데 하루끝에서 큰 위로를 받았답니다. 종이에 적힌 텍스트가 주는 힘이 이렇게나 크다는걸 요근래 느끼고 있거든요.



그나저나 러브레터를 영화관에서 첫 눈으로 보셨다니 너무 부러워요. 꽉 찬 화면으로 러브레터를 볼 수 있다니..! 재개봉 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도무지 시간이 나지가 않아 못보고 있어요. 그전에 영화상영이 끝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네요.

저는 고등학생때 인터넷으로 러브레터를 다운받아서 처음 봤었어요. 그 당시에는 사랑이야기가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그저 화면에 꽉 차는 아름다운 겨울풍경이 눈에 어른거렸어요. 딱 제가 생각하는 겨울풍경 그 자체였어요. 그래서 나중에 러브레터 촬영지인 오타루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기도 했었죠. (그래서 삿포로쪽으로 겨울여행을 하고 왔었는데 너무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다 성인이 되고 매년 겨울이 찾아오면 러브레터를 보고 또 보는데 볼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더라구요. 너무 신기해요. 러브레터에 담긴 사랑이야기도, 가족이야기도 잔잔하게 계속 마음 한구석에 머물더라구요. 떠나간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영화가 그저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테드님이 지금 상황이 러브레터와 비슷하다고 해주셨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더라구요. 전 테드님의 다정한 말씀에 항상 큰 위로를 받고 있거든요. 편지로 느껴지는 진심어린 위로와 따뜻한 말씀에 저또한 더 좋은 사람이 되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어요.



테드님께서 홀로움이라는 부분을 인상깊게 읽으셨다니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혼자 집에 있으면 외롭다고 여길 순간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도 혼자 집에 있다보면 마음이 쓸쓸한 순간들이 간혹 있었거든요. 이제는 그 감정을 잘 갈고 닦아 홀로움의 시간을

보낸다면 앞으로 테드님의 혼자 있는 시간은 더욱 빛을 내지않을까 싶어요. 지금도 충분히 멋진 분이지만 더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테드님께서 마지막에 해주신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해드리려고 해요. 먼저 첫 번째로 저에게 있어 완벽한 하루를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저의 완벽한 하루는 하나로 정의내릴수가 없더라구요.

집을 떠나 낯선 여행지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아름다운 풍경을 본 뒤에 저녁에 맥주 한 잔하고 자면 그것도 완벽한 하루 중 하나이구요. 미세먼지가 없고 하늘이 예쁜 날에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은 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완벽한 하루이고 가족들과 함께 근교로 놀러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완벽한 하루더라구요! 저 하루들의 공통점은 소소한 행복이 아닐까싶어요. 거창하지 않아도 저런 하루들이 모이고 모이면 인생의 행복이 되리라 믿고있어요.

저의 완벽한 하루는 이런 종류인데 테드님이 생각하는 완벽한 하루는 어떤 하루일까요? 테드님의 완벽한 하루는 어떠할지 정말 궁금해져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믿는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편인지 물어봐주셨는데요. 전 그럴 경우에 그 기대가 꺾이지 않게 부응하려고 더 노력하는 편이에요..! 생각해보면 약간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긴 해요. 심하게 남의 눈치를 보거나 모든걸 맞춰주려고 하는 것은 아닌데 대신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애쓰는 편은 맞는 것 같거든요. 모든 사람이 나를 다 좋아할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걸 인정하기가 참 어렵더라구요. 10개를 잘해줘도 1개를 못하게 되면 상대가 저에 대해 실망하는게 인간관계이기도 하잖아요.



저는 제 성향 탓도 있겠지만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인간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거의 없더라구요. 회사에서나,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저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던 사람을 아직 만난적이 없어서 인가봐요.

대신 저는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타입이다보니 솔직한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부럽고 매력있더라구요. 또 이상하게도 저는 가까운 사람들한테는 싫다, 좋다를 어느정도 잘 이야기 하는데 애매하게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더 솔직해지지 못해요. 저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제가 이런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못한가봐요. 제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또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중이기는 하지만 타고난 성정을 바꾸기가 참 힘드네요.



테드님은 어떠실까요? 저에게 있어 테드님의 첫인상은 다양한 경험도 많이 해보셨을 것 같고 나만의 취향도 확실하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편지를 나누며 생각한 것은 그런것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에게 공감하고 위로해주시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시다고 생각했어요. 편지로 써주신 여러 이야기에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더라도 편지 속 내용을 떠올리며 잘 버텨보려고 해요.



사실 편지를 연장할지 많은 고민을 했어요. 편지가 많지는 않아도 그래도 여러 번 오가면서 나름 내적친밀감도 쌓이고 편지를 통해 조금 더 솔직하게 많은 말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거든요. 익명이기에 분명 가능한 일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마음은 테드님께 제안을 해서 편지를 연장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2월이 되갈수록 더 바빠질 저를 생각하니 편지내용이 부실해질까봐 미리 걱정이 되더라구요. (전 걱정인간입니다..!) 그것 또한 예의가 아니니 혼자 많은 고민을 했어요.

확실한건 테드님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도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오히려 편지를 쓰면서 제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되기도 했어요. 반복되는 일상 속에 테드님의 편지가 도착하는 하루는 조금 더 특별해진 것은 분명하더라구요. 이런 경험을 언제, 어디서 해볼까요? 편지를 주고받은 내용만으로 서로에 대해 어렴풋하게 알고있지만 제 감정에 대해 더 솔직해지고 일상을 공유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테드님도 저와의 편지가 좋은 기억이 되셨으면 너무나도 좋겠어요.



편지를 쓰다보니 어느새 공주에 도착해가네요. 바깥에는 드문드문 눈이 쌓여있어요. 이번주는 참 많이 추웠죠! 테드님도 평일의 스트레스를 바깥으로 털어내시고 좋은 감정만 가득한 주말이 되시길 바랄게요. 어딘가에서 스쳐지나갈수도 있고 또 온라인에서 마주칠 수 있겠지만 언제나 마음속으로 제 편지친구 테드님을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깊어가는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올테니 우리 조금 더 힘내봐요.

오늘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할게요. 좋은 기억만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번에 주실 테드님의 편지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게요! 독감이 요새 극성인데 건강 잘 챙기세요.




25. 01. 13, 여름밤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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