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이 주는 삶의 활력
'쿵, 쿵, 쿵.'
엄마가 저를 표현할 때 자주 하던 소리예요.
22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어요.
엄마는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와 있었죠.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비가 내리던 그날, 저 멀리서 어떤 커다란 아가씨가 쿵쿵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답니다.
네, 그게 바로 저였어요.
치킨을 유난히 좋아했던 고등학생 때부터 통통했어요.
야식으로 치킨을 자주 먹었거든요.
대학생이 된 저는 비극적으로 맥주의 맛을 알아버렸고,
치킨에서 치맥으로 한 단계 레벨 업했습니다.
물론 덩달아 살크업도 했죠.
성인이 되고 용돈벌이도 하며 자유시간이 생기니,
치맥과 저는 거의 한 몸이 되었어요.
그때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해야 한다며 부모님을 졸랐습니다.
아빠는 "유학까지 보냈는데 벌써 결혼이냐!"며 펄쩍 뛰셨지만, 엄마는 달랐어요.
“쟤 더 두면 아무도 안채간다.
어릴 땐 통통해도 채갈 남자 있지,
좀만 나이 먹으면 퍼져서 누가 데려가노.
일찍 시켜야 된다!”
엄마의 말에 아빠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죠.
커져만 가는 저의 떡대가 그만큼 걱정되셨던 거예요.
결혼식 날짜를 잡고,
누구나 그렇듯 다이어트에 돌입했습니다.
그룹 PT와 식단관리를 병행했더니
몇 킬로는 금방 빠지더라고요.
하지만 제 머릿속의 이상적인 신부는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은 여리여리한 여자'였어요.
결국 식전까지 총 12kg을 감량했습니다.
그때부터였어요.
체중에 '강박'이 생긴 게.
24살에 아줌마가 되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날씬하고 젊은 아줌마가 되고 싶었던 거예요.
체중이 2kg만 늘어도 덜 먹고, 더 운동했습니다.
요요를 막기 위해 온 신경이 몸무게에 쏠렸죠.
그렇게 식단도 운동도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임신했을 때도, 출산 후에도 강박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이 넘쳐났지만,
그만큼 몸을 두 배로 움직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왕 이렇게 운동 열심히 하는 거, 자격증이라도 따볼까?‘
그게 필라테스와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주 5일 치맥을 즐기던 통통한 저는,
그렇게 필라테스 강사가 되어 있더군요.
물론 지금도 치맥을 좋아합니다.
예전처럼 주 5일은 아니지만 가끔 즐겨요.
괜찮아요. 저는 여전히 '체중 강박'이 있으니까요.
전신거울 앞에서 눈바디 체크를 하고,
체중이 늘었다 싶으면 공복 러닝을 나갑니다.
하루 이틀 음식 양을 조금만 조절하면 또 금방 돌아오죠.
그 강박 덕분에 저는 여전히 몸을 움직입니다.
햇빛을 더 보고, 물을 더 마시고,
건강한 음식을 직접 해 먹어요.
결국 그게 제 삶의 활력이 되었습니다.
강박은 분명 우리를 힘들게 해요.
머리로는 '좀 내려놓자' 하면서도
마음은 쉽게 따라주지 않죠.
하지만 완전히 없애야 할 대상은 아닐지도 몰라요.
어떤 강박을 우리를 조금 더 단정하게, 조금 더 부지런하게, 조금 더 살아있게 만드니까요.
물건 정리에 강박이 있는 사람의 방은 유난히 반짝이고,
몸에 강박이 있는 저는 덕분에 매일 몸을 움직입니다.
그러니, 강박을 미워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건 어쩌면 내가 나를 돌보는 방식일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