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운동 가기 싫다.. ”삐빅, 정상입니다!

불편함을 마주하는 용기

by 해랑

필라테스 강사지만,

저도 힘을 빼는 연습이 필요할 때가 많아요.

몸을 단단하게 세우는 건 익숙하지만,

불필요한 곳의 힘을 내려놓는 건 여전히 어려워요.

그래서 가끔 요가 수련을 하러 갑니다.


그날은 제가 가장 피하고 싶은

다리 뒷면을 늘리는 동작을 하고 있었어요.

앞벅지 근육은 딱딱하게 버티며 부들부들 떨리고,

뒷면은 힘을 전혀 못 쓰고 있었죠.

‘으악… 당장 그만하고 싶다. 너무 고통스럽다…’

그 순간, 강사님이 조용히 말했어요.


“불편함을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해요.”


그 말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운동을 하며 느꼈던 ‘힘듦’의 본질이 바로 그거였어요.

“이걸 왜 하고 있지?”싶은

바로 그 불편한 순간 말이에요.



운동은 왜 이렇게 하기 싫을까?


운동이 하기 싫다면요?

삐빅—정상입니다.


운동은 본능에 반하는 행동이거든요.

우리 몸은 ‘편안함 = 생존’이라고 착각해요.

그래서 운동은 단순히 몸의 싸움이 아니라,

‘본능을 거스르는 싸움’이에요.


게다가 세상엔 운동 안 해도 되는 이유가 넘쳐요.

•비 오면 가기 싫고, 더우면 더 싫어요.

•몸이 무겁거나 피곤하면 “오늘은 쉬자”라는 변명이 떠오르죠.

•막상 시작해도 불편함은 계속돼요. 숨이 가빠지고, 몸은 저항합니다.

•특히 약한 부위를 쓸 때는 고통이 더 선명해지죠.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우리가 운동을 미루는 이유는 간단해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안해지고 싶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 불편함을 통과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편한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요즘 저는 마이클 이스터의 『편안함의 습격』을 읽고 있어요.

그 책에 등장하는 심리학자 마크 시어리(Mark Seery) 박사는 인간의 ‘편안함 추구 본능’을 연구했어요.

그는 ‘단련(Toughening)’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죠.


“적당한 시련은 오히려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향상시킨다.”


시어리 박사는 미국 내 2,500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인생에서 겪은 역경의 정도를 조사한 뒤,

얼음물이 담긴 양동이에 손을 넣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실험했어요.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적당한 역경을 겪은 사람들이 오히려 고통을 덜 느꼈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죠.


“위기나 두려움, 위험에 맞서는 경험은 최적의 스트레스와 불편함을 만들어내고,

그 경험이 자존감, 인격형성, 그리고 심리적 회복력을 높여준다.”


즉, 불편한 경험이 쌓이면

그 자체가 정신의 근육이 된다는 거예요.

육체적 운동이 체력을 기르는 것처럼,

불편함을 이겨낸 경험은 마음의 지구력을 키워줍니다.


한 번 불편함을 통과한 사람은

다음번에도 “아, 나 이거 해봤지” 하며

조금 더 담대하게 버틸 수 있거든요.



필라테스 그룹 수업을 하다 보면

유독 기억에 남는 회원이 있어요.

이 분은 신체적으로 아주 뛰어난 분은 아니지만,

얼굴에는 매번 ‘이겨내고 있다’는 표정이 보여요.


운동 중에는 가장 힘들어 보이는데,

수업이 끝나면 누구보다 얼굴이 환해요.


“선생님, 저 땀나는 거 좀 보세요!

50분 만에 붓기까지 다 빠진 것 같아요.

제 얼굴이 예뻐졌어요!”


그분이 웃으며 말할 때마다 느껴요.

불편함을 견딘 사람만이 얻는 자기 확신.

그건 단순한 운동의 성취가 아니라,

“나도 해냈다”는 마음의 단련이에요.


정신의 근육, 그게 바로 ‘단련’이죠.



불편함을 피하지 말고, 아주 작게라도 마주해 보세요.

오늘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고,

러닝머신 대신

쌀쌀한 바깥에서 입김을 내뿜으며 뛰어보세요.

운동 중이라면 한 호흡만 더 이어가 보세요.


그 순간 당신 안에 ‘단련’이 시작돼요.

불편함을 견딜 때마다

우리는 조금 더 강해지고,

조금 더 자유로워집니다.


오늘의 작은 불편함이

내일의 단단한 나를 만들 거예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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