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 한 장의 자유
요즘 이사 견적을 알아보고 있어요.
작년에는 5톤도 못 채워서 왔는데, 이번엔 7톤이래요.
이사 기사님의 말에 저는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요즘 애 있는 집은 이 정도는 많은 것도 아니에요.
저 아랫집은 5톤이 두 대 왔다니까요? “
불과 1년 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 사이에 제가 2톤을 더 모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깜짝 놀랐어요.
옷을 정리하려고 헌 옷 수거함 앞에 갔더니,
이미 꽉 차서 입을 토하고 있는 상태였어요.
사람들은(저 포함) 이렇게도 많이 비워내는데
짐은 왜 계속, 진짜 끝도 없이 늘어날까요?
“언젠가 입을지도...”
“언젠가 쓸지도 모르지...”
참 아이러니 하게도
막상 버리고 나면 ‘필요한 걸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찝찝함보다
먼저 찾아오는 건 시원한 가벼움이에요.
그 ‘언젠가’가 우리의 집을, 그리고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무겁게 만들고 있었던 거겠죠.
요즘 다시 읽고 있는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에는
이런 문장이 나와요.
“가구를 끌고 다니는 삶은
덫을 허리띠에 단단히 묶고
인간이 운명이 걸린 험준한 땅을 건너는 것과 같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하죠.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다면
출입문이나 웬만한 옹이구멍도 빠져나갈 수 있다”
숲에 살며 요즘 말로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소로는
우리는 이미 너무 과하게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 집에 가도 의자 세 개는 있다고 말하면서요.
짐이 많을수록 삶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가벼울수록 자유롭다는 걸 짚어냈어요.
필라테스를 가르치다 보면
기구 위에서는 잘하시는 분이라도
비슷한 자세를 매트에서 시키면 어려워합니다.
기구는 우리를 도와주고, 받쳐주며 몸을 더 편하게 만들어주지요.
말하자면 기구는 ‘좋은 가구’ 예요.
있으면 편하고, 삶의 질도 올라가죠.
하지만,
기구가 너무 많은 걸 대신해 주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내 몸으로 서는 힘”을 잃기 시작해요.
매트는 다릅니다.
매트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아요.
기댈 곳도, 잡을 곳도, 스프링도 없죠.
그 대신 묻습니다.
“온전히 네 몸으로만 한번 해볼래?”
그리고 그 순간이 바로
몸속에 쌓아두었던 ‘힘의 잡동사니’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때예요.
불필요한 긴장,
과한 보상 패턴,
쓰지 않아야 할 근육에 힘이 몰리는 버릇,
‘안 쓰는 척’하며 밀어두었던 약한 부분들.
매트는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놓게 만들어요.
처음엔 내 본질적인 몸을 바라보는 게 불편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맞춰 힘을 찾다 보면
오히려 몸이 더 가볍고 더 편해지지요.
물건을 버리고 나면 찾아오는 시원한 가벼움처럼요.
말하자면 몸의 미니멀리즘이 일어나는 자리죠.
이삿짐이 7톤이 되든 10톤이 되든
우리가 비우고 또 비운다면
가장 본질적인 것만 남게 될 겁니다.
집에서는 필요한 것만 남기도록 하고
몸에서는 필요한 힘만 남기도록 해야겠지요.
그리고 매트 위에서는
기구 없이도
타인의 손길 없이도
내 몸 하나로 중심을 잡아내는
단단한 ‘나’만 남습니다.
매트 한 장만 있어도
충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몸도, 마음도, 짐도
가벼울수록 더 멀리,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당신이 짐을 비워낸다면
끝까지 남기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